패러딘 부인의 재판 (The.Paradine.Case.1947.1080p.BluRay.REMUX.AVC.DTS-HD.MA.2.0-FGT)

자막자료실

패러딘 부인의 재판 (The.Paradine.Case.1947.1080p.BluRay.REMUX.AVC.DTS-HD.MA.2.0-FGT)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007915
    줄거리 : 안소니 킨은 남편을 살해한 죄로 재판을 받게 되는 안나 패러다인의 변호를 맡게 되는데, 안나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혹시 안나가 패러다인 대령의 시종인 안드레 라투어와 관계를 가졌을까 질투를 하게 된다. 안소니는 안드레가 대령을 죽인 것처럼 재판을 유도해서 안나의 무죄를 밝히려고 하는데...

c9af13408a61970a7dbb2690d663ea36_1496887803_2568.jpg

 

기존 2CD 합치고 싱크 수정했습니다.

 

히치콕 감독 작품입니다.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Comments

17 실룩이
프레임레이트도 같은 23.976Fps인데 SiNNERS릴과 좀 다르네요.
뒤로 137904 ms 늦추니 잘 맞네요^^ 영화 제목이 예전 일반파일로 소장시에는
<패러딘 부인의 사랑>이었지요
41 나무꾼선배
네... 제목을 또 봐꿨네요.
GIVE 3 MP 30 데블
재밌을것 같네요.
파일 구하러 돌아다녀봐야겠습니다 
41 나무꾼선배
히치콕 초기 작품이라 재미는...
29 불량아이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31 Cinephile
수고하셨습니다~
34 진트
고전이군요  수고많으셨네유 
S 컷과송
2020. 2. 26. 재감상

단평 : 남성들은 시각을 잃었다.


흥미로운 두 가진 전제로부터 시작해야겠다. 하나는 본편의 앞뒤 작품으로 대사와 직업으로
프로이드를 언급하는 <스펠바운드>와 <로프> 사이에 <오명>과 더불어 위치한 작품으로
전쟁 중 <라이프보트> 이후에 아직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40년대말 영화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전쟁과 프로이드라는 외적 맥락이 작품 내부의 감상을 일정 정도 고정시킨다.

둘은 출연진인 배우의 나이다. 우선 주인공 변호사인 킨(그레고릭 펙)은 1916년생 31세,
그의 부인 게이(앤 토드)는 1907년생 40세, 판사 토미(찰스 로튼)은 1899년생 48세,
판사의 부인 소피(에셀 배리모어)는 1879년생 68세, 패러딘 부인(알리다 발리)과
그녀가 사랑한 안드레 라투어(루이 주르당), 게이의 친구 주디(조안 테즐)까지 3명은
모두 1921년생 26세이다. 이같은 영화외적 통계로부터의 착안점은 부부 관계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나이가 기이하게도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는 점인데, 이는 기존의
히치콕 작품 속 남녀 배우진들의 나이차를 고려한다면 다소 배반되는 기이한 사실이다.

직설하자면, 본편이 누가 살인을 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 속 남성들이 거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지점에 있다. 판사든 변호사든 시종 안드레는 모두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진심 밖에 머물거나 죽고, 오직 킨 변호사만 봉합과 복귀의 보수성을 위해 살아남을 수 있다.
애당초 사건의 시초인 살해당한 패러딘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시각 장애인으로 지정된다.
여기에 그가 안드레 라투어와 전쟁 참여로 인해 시각 상실을 겪었다는 사실이 겹쳐진다.

이쯤에서 본편은 윌리암 와일러의 1946년작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의 그늘에 놓이게된다.
일종의 사회적 응원물로서 전후 영국 및 미국의 남성들이 가진 심리적 상실감과 공황에 대해
윌리암 와일러가 좀 더 직접적인 가족 드라마를 지향했다면 히치콕은 그 이면에서 오히려
남성들을 프로이드적 유아로 설정하고, 모성적 우월함으로 무장한 여성에게 압도당해야하는
존재로서 그들을 좌표화한다. 이를 재판 드라마로 장르화되는 표면의 아버지의 법이라는
프로이드에 대한 반발인가는 의문이지만, 이 지점에서 히치콕은 페미니즘으로 다시 읽힌다.

하지만, 이같은 맥락에서도 여성이란 존재가 과연 본편에서 기의로서 안착했는가는 기실 의문이다.
그녀를 '사랑'이라는 기표로 지정할 때 그녀들은 오히려 고정되고 무화된다.
무엇보다 표피적으로 그녀들 모두가 직업이 없는 인물로 설정되고, 경제와 지위에서 모두
남성 의존적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녀를 주체화할 수 있는 기의가 특정 실체화될 수
없는 관념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녀들에게도 그다지 허용적이지 않다. 결국 최종적인
귀착점으로서 본편의 위치는 표면적인 보수적 유지를 걷어내면 일회적 치유에 불과하다.
남성들이 모두 시각을 잃었다면 여성들 역시 과연 어떤 시각을 내재하고 있는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