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사나이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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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사나이들이 돌아왔다

뮤지컬로 다시 보는 ‘영웅본색’ / 홍콩 누아르 영화의 원조 / 진정한 우정·가족애 담아 / 삶의 본질적인 가치 강조 / LED패널 1000여장 설치 / 무대 전체를 스크린으로 / 총격신 등 화려하게 재현
홍콩 누아르 영화 걸작을 초대형 LED 영상으로 꾸민 무대에 다시 올린 뮤지컬 ‘영웅본색’.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영웅본색’은 80, 90년대 우리나라에 범람했던 홍콩 누아르(범죄물) 영화의 원조이자 정점이다. 선글라스에 롱코트 자락을 휘날리면서 성냥개비를 씹으며 빗발치는 총알에 아랑곳하지 않고 슬로 모션으로 적진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주윤발과 총상을 입은 채 공중전화부스에서 부인과 마지막 통화를 하는 장국영은 그 시대 청춘 심장에 깊은 낙인을 찍었다.

그 ‘영웅본색’이 뮤지컬계 흥행보증 수표로 통하는 ‘왕용범 작·연출, 이성준 작곡’ 콤비의 창작 뮤지컬로 돌아왔다. 줄거리는 원작인 ‘영웅본색’(1986)과 ‘영웅본색2’(1988)를 적절하게 섞었다.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갱단 중간 보스 ‘송자호’와 그의 의리 있는 친구 ‘마크’, 그리고 정의로운 경찰이 되려는 자호 동생 ‘송자걸’이 주인공이다. 악역은 자호를 배신한 대가로 갱 조직을 장악한 ‘아성’.

동생을 위해서라도 자호는 감옥 출소 후 암흑세계를 떠나 새 출발을 하려 하나 인과응보를 따르는 복수의 법칙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공교롭게 아성을 수사하던 자걸이 위기에 처하자 자호는 마크와 함께 동생을 구하려 다시 전장에 뛰어든다. 마크는 살길을 마다하고 의리를 지키다 죽으며 자호는 악인을 처단하고 다시 법 앞에 심판을 구한다.

왕년의 ‘영웅본색’이 왜 이 시대 다시 소환됐을까. ‘의리’를 강조하는 작품이지만 ‘우리가 남인가’식의 ‘의리’는 청산해야 할 ‘적폐’에 포섭되는 문제가 많았고 ‘만인의 정의’가 강조되는 시대다. 제작사 측은 “진정한 우정, 가족애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중화권 진출을 노린 포석일 수도 있다.

여하튼 왕종범 연출 작품의 DNA는 장대한 무대다. 전작 ‘벤허’에선 적절한 영상투사 효과로 실감 나는 노예선 장면을 만들어냈고, 실물 크기의 전차 모형 투입으로 박진감 넘치는 전차전을 구현했다. 그는 이번 무대에선 차원이 다른 영상으로 만든 무대를 선보였다. 다른 뮤지컬에선 부분적으로나 쓰이던 LED 패널 1000여장을 투입해 무대 전체를 거대한 스크린으로 만들었다. 초고화질 영상을 뿜어내는 LED 패널로 만든 대형 아치가 3개, 뒤편 배경으로 1개 세워지고 천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내려오는 이동형까지 총 7개가 설치됐다. 그 면적이 무려 500㎡에 달하는데, 이는 국내 아이맥스관에서도 가장 큰 CGV천호 아이맥스관 화면(461.89㎡)보다도 큰 규모다.

압도적인 무대가 만들어내는 영상은 화려하다. 세계적 미항(美港)인 홍콩의 불야성과 빗방울이 떨어지는 밤거리,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푸른 하늘 등은 홍콩 관광청 홍보영상을 방불케 한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화물선 부두, 위조지폐 작업장, 거대한 불상이 내려다보는 사찰 등 무대는 한순간에 무제한으로 확장되며 그 속에서 배우들은 전혀 위화감 없이 마치 영화처럼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친다. 너무 영화 같은 뮤지컬이어서 당혹스러울 정도다.

왕 연출은 홍콩 누아르 역사에서 손꼽히는 원작 명장면을 무대에 다시 충실히 재현하는 것도 소홀하지 않았다. 마크가 친구 복수를 위해 혼자 식당에 들어가 쌍권총 신공을 선보이거나, 위험에 빠진 송씨 형제를 돕기 위해 모터보트를 되돌려 기관총을 갈겨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귀에 착 달라붙는 노래를 만들어온 작곡가 이성준도 제 몫을 했다. ‘영웅본색’하면 떠오르는 건 장국영의 노래 ‘당년정’과 ‘분향미래일자’다. 명곡이나 이미 한 세대 전 노래여서 당대 음악 감성과는 거리가 있는 두 곡을 이성준은 현대적 감각으로 뮤지컬 무대에 어울리는 노래로 되살렸다. 풍성한 클래식 선율과 록, 팝 등 대중적인 선율을 함께 써서 만든 다채로운 극으로 극 중 각 캐릭터를 위한 무대를 선보였다.

출연진은 유준상·임태경·민우혁이 송자호 역, 한지상·박영수·이장우가 송자걸 역, 최대철·박민성이 마크 역을 맡는다. 지난 11일 공연에선 유준상과 박영수, 박민성이 원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충분한 좋은 연기와 배우간 호흡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해 뮤지컬 ‘벤허’에서 ‘메살라’를 맡아 좋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준 박민성과 역시 ‘벤허’에서 ‘빌라도’로 출연해 존재감 있는 연기로 객석 인기를 끈 이정수가 자걸의 경찰 상관인 ‘호반장’으로 무대에 올라 인상적인 노래와 연기로 객석에서 큰 박수를 받았다.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3월 22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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