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故김성재 동생 김성욱 “유력 용의자, 권력자 친척이라 들어…미흡한 초동수사 납득할 수 없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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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故김성재 동생 김성욱 “유력 용의자, 권력자 친척이라 들어…미흡한 초동수사 납득할 수 없었다” (인터뷰) …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5일 서울 성수동 페르커팩토리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른쪽 구석에 고 김성재가 신었던 신발이 놓여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5일 서울 성수동 페르커팩토리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른쪽 구석에 고 김성재가 신었던 신발이 놓여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1990년대 가요계를 달궜던 불세출의 스타 듀스. 그중에서도 멤버 김성재는 타고난 유연함과 스타일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불렸다. 하지만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4년째 되는 지금에도 팬들과 대중의 뇌리와 가슴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의 마지막이 너무나 허망했기 때문이다. 故 김성재는 듀스 해체 이후 솔로로 돌아와 낸 첫 신곡 ‘말하자면’의 컴백 무대를 마친 바로 다음 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중은 혼란에 빠졌고 많은 매체들은 다양한 추측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故 김성재의 사건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에서 그 사망과정의 미스터리를 밝히겠다고 나서면서 부터다. ‘그알’ 제작진은 5개월간의 추적을 통해 당시와는 달라진 과학적 추론방식을 동원한 방송분을 완성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ㄱ씨 측이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지난 3일 ‘그알’ 방송분이 결방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이 상황에 의문을 가진 많은 누리꾼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그알’의 방송과 진실규명의 청원을 올렸고 14일까지 동의한 누리꾼의 숫자는 10만명을 넘겼다.

고인의 의문스런 죽음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자는 움직임의 제일 앞 선에는 사람은 그의 동생 김성욱씨다. 그는 ‘그알’의 결방 결정이 나자마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15일 ‘스포츠경향’은 그를 만나 ‘그알’ 결방과 관련한 심경 그리고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 당시의 미스터리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이하 김성욱씨와의 일문일답.

- ‘그알’의 결방결정을 들었던 심정은 어땠나?

“오히려 결방되는 게 나았을 지 모르겠다. 결방이 되면서 지금과 같은 사회문제로 더 크게 부각됐다. 젊은 분들은 TV를 잘 보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결방이 되고나니 이 사건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것 같다. 사실 하나의 이슈가 사회현상이 되려면 굉장히 어려운데, 상대측에서 소송을 걸어오면서 오히려 이슈를 만들어줬다.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팬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청와대 청원 20만명을 모아보려 한다.”

- SNS에도 가처분신청 인용에 대한 비판과 상대측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5일 서울 성수동 페르커팩토리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5일 서울 성수동 페르커팩토리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당연히 상대측 관계자가 들어와서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라고 쓴 것이다.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자인한 모양새가 아닌가 생각한다. 방송을 보고 나서 그 용의자가 자신이 아닌지를 판단하는 거지, 방송을 보기도 전에 큰 일 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심증을 굳혀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법원 인용문에서도 ‘지상파가 특성상 파급력이 높아 정정보도가 나가도 명예훼손을 당한다’고 하는데 그건 이미 우리가 1996년부터 당해왔던 것이다. 자살, 마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대측에서 밀어붙여 여전히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많다. 한 사람의 오해를 바꾸기도 어려운데 도대체 형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전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 지 알 수도 없다. 이제 와 공소시효도 끝났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처벌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김성재라는 사람을 다시 조명해달라는 게 내가 목소리를 내는 목적이다.”

-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등의 독려도 많이 하고 있다.

“20만명의 동의를 받는다면 책임자가 답변을 한다는데 어떤 분이 나설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 지도 궁금하다. 처벌이 안 된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까지 동의를 해준 10만명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보이지 않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 목소리가 미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결국 큰 코 다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그알’의 취재를 언제 알게 됐나.

“팬 중에서 집념의 사나이가 있다. 무역회사를 다니는 친구인데 탐정 또는 기자같은 기질이 다분해서 자료를 찾고 합법적인 선에서 모은 것을 가지고 ‘그알’ 배정훈PD에게 계속 요청을 했던 것 같다. SBS는 그 이후 취재를 나선 것이다. 사실 24년의 시간 동안 많은 방송이 형을 다뤘지만 이렇게 취재나 르포의 형식으로 과학적으로 푸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거의 흥미위주 아니면 유가족인 우리의 감정을 토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알’이 취재에 들어가면서 형의 부검자료도 처음 보게 됐다. 이를 통해 초동수사의 난맥상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 ‘그알’ 제작진과 법원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제작진에게는 합법적인 선에서 방송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줬으면 한다. 법원에는 다양한 정치이슈에 대한 ‘그알’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은 다 받아들이지 않았으면서, 이번 사건을 인용한 이유를 묻고 싶다. 수사기관의 문제가 있다면 그런 잘못을 바로 고쳐 재발방지를 고민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무작정 방송을 막는다는 건 유치하고 추잡한 일이다. 사회개혁까지는 아니지만 이번 일이 다양한 사회 의혹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유가족으로서 故 김성재 사건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

“초동수사에 관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 맥주병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뚜껑을 돌려따는 맥주가 처음 나와, 형은 그것를 모으면서 꽤나 좋아했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이 마시다 남은 맥주를 버렸다고 했다. 내용물도 확인하고, 누가 입을 댔는지 정도는 확인해야지 않나. 그 이후 단순 사망으로 판단해 버렸다고 했다. 가수가 공인은 아니지만 당시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었고 전날의 무대가 멋져 그 열기를 간직한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져 충격이 컸다. 그런 인사가 죽었는데 현장보존이 안 됐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CCTV 역시 일주일 후에 확인했다는데 이런 부분도 납득할 수 없었다.”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5일 서울 성수동 페르커팩토리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고 김성재가 신었던 신발을 선보였다. 김성욱은 이 신발을 복원 작업을 거쳐 브랜드화에 추진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5일 서울 성수동 페르커팩토리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고 김성재가 신었던 신발을 선보였다. 김성욱은 이 신발을 복원 작업을 거쳐 브랜드화에 추진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 유력한 용의자였던 ㄱ씨와 수사기관의 연결을 의심하는 것인가.

“당시 용의자가 고위 권력자의 친척이라 들었다. 그리고 변호사 역시도 권력자의 라인이었다. 1995년 11월 형의 사건 이후 ‘치과의사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같은 변호사가 피의자를 변호해 모두 무죄로 만들었다. 다른 사건은 모르겠지만 이 두 사건만 어찌 그렇게 ‘정황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는지 모르겠다. 귀에 걸면 귀고리식이 아닌가. 언젠가 끝날지 모르겠지만 분명이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으니 법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 24년을 지탱한 이유는 지지해주는 팬들과 지인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머니가 이끌어온 부분이 크다. 팬들과 소통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오셨다. 5년 전부터는 ‘늘 함께 성재’라는 50명 정도의 모임을 만들어 형의 4월 생일과 11월 기일에 모여 친목을 다진다. 나는 친동생이지만 팬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 열정과 사랑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스스로가 부끄럽게도 여겨진다. 다시금 형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내 나름대로 신발이나 티셔츠, 모자 등을 복원하면서 형의 기억을 실재하도록 하는데 애쓰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멈추지 않을 거다. 방송이 안 되더라도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가 막힌 것이다. 언젠가 방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겐 10만명의 지원군이 생겼고 해외의 팬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이 있지만 나는 사람이 있다. 5년 동안 고생한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이 사건이나 故 김성재를 잘 모르는 지금의 대중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잊으셔도 된다. 하지만 ‘김성재’라는 이름을 한 번 검색하고 이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었는지 기억해주면 좋겠다. 성재 형을 다시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싶다. 어두운 일들은 필요없다. 단지 ‘멋있다’ 또는 요즘 말로 ‘간지난다’는 말의 원조가 이 사람이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멋있지 않나. 1990년대의 방점을 찍은 스타 김성재가 앞으로도 별이 아니라 태양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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