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냥의 항아리 丹下左膳余話 百萬兩の壺 1935

영화감상평

백만냥의 항아리 丹下左膳余話 百萬兩の壺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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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냥의 항아리 丹下左膳余話 百萬兩の壺 Tange Sazen and the Pot Worth a Million Ryo 1935 


1935년에 만들어진 시대극이란 걸 종종 까먹을 만큼 세련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스물아홉에 요절했다는 '천재'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은 편집으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기대치를 만든다. 영화의 전개는 '인간사 변화무쌍한 가능성'이라는 주제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고, 방사형으로 얽힌 관계의 고리 안에서 이야기는 시대극을 넘어 인생 보편의 의미로 확장된다. 편집은 리드미컬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심각함은 1도 없고 러닝타임 92분 동안 시종일관 유쾌하고 경쾌하기만 한데 영화가 끝나면 묵직한 감흥에 휩싸인다. 이런 천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채플린처럼 알기 쉽고 재미나게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는 재주가 스물다섯 젊은 감독의 영화에서 번뜩인다. 쉽고 편한 일상의 조각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우려내는 오즈나 나루세의 희비극적 전통이 야마나카 사다오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고다르가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해 얘기하면서 '로셀리니는 자동차 한 대와 남녀만 가지고 두 시간짜리 영화를 찍었다'고 했고, 영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글에서 '나루세는 남자와 여자만 가지고 영화 한 편 찍는다'고 쓴 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야마나카 사다오는 항아리 소품 하나로 <백만냥의 항아리> 한 편을 찍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극 중 주동인물들이 '백만냥짜리 항아리'를 목적이 아니라 재밌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수단(우연히 항아리를 얻게 된 꼬마 '야스'는 금붕어 어항으로 쓴다)으로 둔갑시켜 우습게 취급한다는 것. 죽을 똥 살 똥 애써 찾으려던 목표가 어느 순간 과정의 재미에 묻혀버리는 반전의 아이러니 부분에서는 <비밀의 화원>(ひみつの花園, 1997)의 블랙 유머가 떠올랐다.

세련된 화술의 스타일뿐 아니라 캐릭터의 매력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사무라이 부부는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백만 냥짜리 항아리보다 콧기름 묻혀 금붕어 낚시를 하고 요정에 앉아 활쏘기 놀이가 더 좋은 '허세 바보' 겐자부로도 몹시 귀엽다. ㅋㅋ 아빠를 여읜 꼬마 앞에서 쩔쩔매는 외눈에 외팔이 사무라이 '탄게 사젠'과 술집 여주인 '오후지'(오후지 역의 키요조는 실재 기생을 캐스팅 했다고)의 케미는 최고다. 맹랑한 꼬마와 '츤데레' 사무라이 듀오는 <기쿠지로의 여름>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야쿠자를 등장시킨 기타노 다케시의 유머가 조금 더 하위 버전.



#백만냥의항아리 #야마나카사다오 #탄게사젠 #시네마준보가뽑은꼭봐야할일본영화10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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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저도 이 영화 스크린으로 처음 봤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umma님 번역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일본어-영어 중역은 안하신다니 안타깝네요.

추카추카 5 Lucky Point!

20 암수  
이여성분이 미모가 출중해서 필모를 보니 이 편 이외에는 없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게이샤였군요..
애꾸눈 남자 주인공 코믹하기도 하지만 칼쓸때 보면...칼 휘두르는거나 몸동작이 예사롭지 않은데 "오코치 덴지로"...
이분이 이토 다이스케 감독의 "추지의 여행일기" "지로키치 더랫"등에 나오는데
20~30년대 무사전문배우로 그 솜씨가 거의 최고인듯 합니다...
3명의 케미가 배경음악과 함께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며 시종일관 유쾌하게 흘러가는 멋들어진 작품인듯 합니다...
2 cocor  
이거 엄청 재밌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