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플랫폼 - 슬기로운 감방생활

영화감상평

더 플랫폼 - 슬기로운 감방생활


(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고 영화의 장면들은 종종 잔혹하고 과격합니다)

이 기괴한 스페인산 SF 스릴러 영화는 풍요롭고 우아한 만찬 준비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관객들이 예측/기대했던 것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하며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한 남자가 눈을 뜬다. 남자의 이름은 고렝. 그가 던져진 장소는 '홀'이라 불리는 다층 원형감옥. 층마다 레벨 표시가 있고 방 중간엔 건물 전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구멍이 뚫려 있다. 음산하지만 조금은 익살스런 표정의 룸메이트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가 불친절하게 이 공간의 규칙을 알려준다. (우습게도) 고렝은 이 '수직 자기관리센터'(관리자들은 그렇게 부른다)에 자원했다. 6개월 수료 과정의 목적은 '담배를 끊고 <돈키호테>를 읽고 싶어'서.

홀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뭐든 원하는 것을 하나씩 들고 올 수 있다. 트리마가시는 칼 '사무라이 플러스'를, 관리자의 하수인이었던 이모구리(안토니오 산 후안)는 반려견 닥스훈트 '람세스'를 선택했다. 고렝(이반 마사구에)의 선택은 <돈키호테>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들고 홀에 온 남자(고렝 이전에 25년 동안 책을 선택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괴짜 이상주의자를 막연히 동경하던 한 남자가 다짜고짜 시작된 상황 속에서 인류의 오래된 숙제에 맞닥뜨린다. 첫 질문은 이렇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먹을 것인가?'

설득을 통해 자발적 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이모구리의 이상과, 제한된 환경이 서로에 대한 불신을 싹 틔우고 불신이 결국 갈등과 죄를 만든다고 믿는 현실주의자 트리마가시 사이에서, '변화는 절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고렝의 신념이 흔들린다. 레벨은 한 달 간격으로 무작위 조정되고 풍요의 기쁨과 빈곤의 공포 사이에서 인간의 본성이 칼날처럼 이빨을 드러낸다. 칼이냐 믿음이냐, 생존이냐 신념이냐 사이에서 갈가리 찢긴 채 시소를 타던 고렝의 자아는 조금씩 변해간다. '모두가 필요한 만큼만 먹으면 음식은 맨 아래 레벨까지 남아'라는 이성과 배려의 목소리는 공허한 울림이 되고, 홀은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지옥이 되어 간다. 수직의 구멍으로 연결된 이 지옥의 바벨탑 안에서 과연 자발적 연대라는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이야기 설정과 상황의 표현은 극단적이고 선정적이지만 <더 플랫폼>이 오래된 인류의 문제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볼 여지를 남기는 건 확실하다.



난 겁에 질린 사람이야 나도 즐겁지는 않아 - 트리마가시

하루는 내가 먹고 다음날은 남이 먹고, 이게 내 배급 방식이야 - 이모구리

변화는 절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아 -고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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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식탁과 층별 식사의 발상은 드니 빌뇌브의 <다음 층 (Next Floor, 2008)>을 떠올리게 했다. 가더 가츠테루 - 우루샤 감독은 기본 설정에 계층/계급의 층위와 자본주의 시대의 빈부 갈등 아이디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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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14 Harrum  
스눞 님 글이 감칠맛나서 읽다가 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영화 소개 고맙습니다.
14 스눞  
늘, 과분한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Harrum 님은 '입살이 보살이라고...'의 속담을 실천하시는 분.
벙긋.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_^
14 스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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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Har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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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bbel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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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스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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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bbel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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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iki20000  
짜임새는 있었으나 중간중간 몰입감 상실 장소적 제약으로 눈요기가 아쉬웟슴당  저는 이영화의 키워드는 허무 몰입도 6 평점 7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