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영화감상평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22 박해원 11 4417 0

터미네이터 특유의 꿈도 희망도 없는, 다크한 분위기는 매우 잘 살렸다. 페미니즘과 로봇의 인격이라는 설정도 추가됐는데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문제는 3편부터의 세계관을 뒤엎고 대체(Alternate) 3편으로 제작됐으면 결말은 3삘나게 맺으면 안되지. 압박적일 정도의 액션과 CG의 향연에 정신이 나갈 뻔하다 썩 아쉬운 마무리를 마주하고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잘 나가다 어쩌다가... 

사실상 액체금속 모델 터미네이터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항상 이녀석을 어떻게 없앨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압도적인 강렬함과 압박감을 갖춘 이 유형의 적을 등장시키려면 이러한 딜레마를 마주할 것이다. 근데 문제는... 2편을 제외하면 그 적을 그럴듯하게 제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는 것. 아, 물론 5편 T-1000의 방법은 일리가 있지만 메인 빌런이 아닌지라 논외.

이는 완성도의 문제와 연결된다. 아니, 연결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3, 5편이 망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100% 액체금속의 걸출한 이점을 버리고 다른 요소를 혼합하여 오히려 약점을 만들어버리는 시스테밍은 글쎄... 솔직히 3편에서부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물론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몰락은 그뿐만 아니라 미스캐스팅, 세계관 붕괴, 플롯의 엉성함 등등 무궁무진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3~5가 내리막길을 타고 (도중에 중박탄 드라마 사라코너 연대기도 있었음) 2.5편인 본편을 마주했는데 웬걸... 왜 막판엔 같은 선로를 달리냔 말이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사실 이게 이렇게까지 열을 올릴 부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가 시리즈가 아닌 독자적인 작품일 때, 그리고 작품이 던져놓은 여지와 떡밥이 모두 해결됐을 때의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던 페미니즘과 로봇의 인격, 결코 허투루 한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두 주제는 마지막에 하나의 종착역으로 귀결된다.

작중 사이버다인 시스템 모델 101(이하 T-800)은 1998년 존 코너를 제거하도록 시스템되어 과거로 보내지고, 임무를 완수한 후 자취를 감춘다. 사실 여기서부터 삐긋대기 시작한 셈이다. 터미네이터2에서 T-800은 T-1000을 제거하고 바로 용광로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제거한다. 존이 죽지말라고 울며불며 떼를 쓰고 달래도 T-800은 잔존해있는 살인 프로그래밍에 대한 위험성을 말살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이렇듯 존이 곁에서 도덕과 윤리, 정을 가르쳐줄대로 가르쳐준 T-800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오롯이 살인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T-800이 임무 완수후 방황하다 갱생의 길로 접어든다? 스토리 전개를 위한 설정이 아니었으면 0점짜리 개연성이다. 

무튼, 그건 그러려니 하고 다음은 페미니즘 얘긴데... '대체 미래'에서 존을 대신할 존재가 여성이라는 것, 그녀가 인류의 미래를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단기간에 강인해져 간다는 것. 이것까지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애가 점점 더 텐션이 올라가다 마지막엔 만용까지 부리는 모습은 글쎄... 운전, 사격 실력이 삽시간에 오른 이유부터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막판에 될대로 돼라식으로 '킬존'을 스스로 선택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팀원들을 일장연설로 버프시켜놓고 상황을 지켜보다 기회를 틈타 삽시간에 오른 사격술로 빨피 몹을 사냥하는 모습은... 노렸다고밖에 안봐진다. 아니, 5편은 적어도 터미네이터의 기술이 총집약된 사이버다인 건물이라는 설정이 있었으니 어찌어찌 해서 메인 빌런을 처리하는 것도 납득이 갔는데 (그 이후가 문제지) 이편은 그냥 중구난방으로 싸우다가 우연히 웬 반도체 공장?같은 데 떨어지고 도망다니기 지쳤는지 걍 싸운다. 어떻게 없애야 할지 감은 안오고 일단 막 패는데 고맙게도 이녀석은 몸을 두개로 분리할 수 있는 이점을 버리고 기어이 하나로 합체!하다가 기계에 갈려 고열+폭발로 인해 시스템 오작동이 일어난다.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떡이 된 터미네이터를 떡바르다 힘에 부치고, 그때 다시 T-800이 등판해 그레이스의 동력원으로 녀석에게 철퇴를 가한다. 어... 분업만 했을 뿐이지 3랑 별반 다를 게 없는 마무린데... TX가 헬기에 깔린다->하반신 마비가 온다->그 틈을 타 T-850의 동력원으로 마무리한다. 와... 100% 액체금속이 아니니까 이렇게 비스무리하게 죽일 수밖에 없나보다.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운명은 없다. 우리가 개척하는 것이다.'라더니 이건 너무 답정너식 작위적 운명 메이킹 아닌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은 주인공이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영웅 만들기한다고 욕먹었다. 이 작품의 경우엔 여자인데 주인공이 여자인 게 문제가 아니라 무리해서 변화를 꾀하려 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즉 관객들을 교육을 시키려는 PC적 이미지가 도드라진다. 근래 들어 고스트 버스터즈, 엑스맨, 맨인블랙 기타등등 성평등적인 영화가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선 불만이 없고 페미니즘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 필요없고 '납득'만 되면 된다. 허나 이 영화는 그 부분을 간과했다. 대놓고 주조연의 과반수가 여자인데 우먼파워를 드러내기 위해 존을 죽였고, 대책은 없고 일단 지르고 보는 소녀에게 주인공 3명의 운명을 맡겼다. 그런 상황에서 T-800은 프로그래밍된 복종이 아닌 죄책감에 스스로 택한 순종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어찌어찌 하여 운이 좋아서 상황이 종결되긴 했지만 좌충우돌 난투후 감성팔이하며 영화를 매듭짓기에는 그동안 벌려놓은 게 너무 많았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욕심으로 인한 희생이 너무 컸다. 아쉽다.

​(스포 끝)

세기말적 분위기속 빼어난 액션과 CG, 스케일이 참 반가웠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전작의 결점이 커버가 돼도, 이제는 다른 부분이 안타까운 게 참... 터미네이터는 20세기의 전유물인 거 같다. 혹 속편이 제작된다면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하게 갔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기를.

※사라 코너 불쌍해서 어떡하나ㅠ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11 Comments
8 mrmeiam  
존 코너 죽는 장면부터 ' T-800?? 왜??' 라는 생각으로 보며
아놀드께서 가족을 만들었다고 들었을때 '아, X됬구나' 라는 생각으로 봤네요 ㅋㅋ 그래도 액션은 재밌게 봤어요
22 박해원  
맞아요 눈과 귀는 즐거웠죠ㅋㅋ 그뿐이지만ㅜ
S Cannabiss  
아놀드 할아버지 빼고 완전히 새로 만들면 어땠을까 싶어요
할아버지가 너무 체면없이 나오는 것 같음 작품을 망치는 주범..!

티천이 제일 완벽한 터미네이터였다는 말씀엔 공감해요
TX같은건.. 본체가 안에 있으니까 더 약해보이는 느낌?
그리고 너무 가짜 같아요 5편의 그 터미네이터도 그렇고
22 박해원  
이번엔 대놓고 가짜가 나왔죠ㅋㅋ Rev는 레볼루션일까요 레벨레이션일까요~
S Cannabiss  
6편을 안봐서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22 박해원  
보..보신줄ㄷㄷ 시놉 확인을 잘하시는군요..
S Cannabiss  
그거야 뭐.. 척하면 딱이죠
1 대발이  
저는 역대급 망작으로 느껴지더라구요.
또 많은 분들은 볼거리는 있었다고들 하시는데 개취가 달라서 그런지 볼거리도 너무 허접해서 쓰러지는줄 알았습니다.
22 박해원  
네, 저도 곱씹을수록 별로... 팬심으로 2번 볼까 하다가 멘탈을 붙잡았습니다
2 처키의애교  
아쉽긴하지만 재밌게는 본것 같아요 터미네이터5 앤딩 장면은 맘에 들었지만 존코너가 그렇게 허망하게ㅎㅎㅎ
1 캥거루  
터미네이터에는 아놀드님이죠!! 절대 빠지면 안되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