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프랑스 스릴러 영화 - (1932)

영화감상평

가장 위대한 프랑스 스릴러 영화 - <교차로의 밤>(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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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화의 전당의 이번 기획전은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인데 기획전 라인업을 보니 하나 같이 명작이다.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소개 글에는 한 감독의 예외적 영화들이 단순히 그의 여타 작품들과 다르다는 평면적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그 예외성이 종종 그 감독의 고유한 영화 세계를 우회 혹은 아이러니의 길을 경유해 되짚어 더 깊이 부각시킨다는 점에 호기심이 자극되었다고 한다.

 

이 리스트 중에 유독 내 눈길을 끈 작품이 있는데 15년 전에 처음 본 장 르누아르의 <교차로의 밤>(1932)이 그것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 영화가 왜 걸작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걸작이 아니라 오히려 태작이나 망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누구보다도 장 르누아르의 영화 세계를 가까이서 드려다 본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마저도 무시했다. 그가 남긴 장 르누아르에 관한 책에 <교차로의 밤>에 대한 부분은 공란으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눈 밝은 사람만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봤다. 이를테면 조너선 로젠봄은 자신이 뽑은 시대별의 걸작에 이 작품을 뽑았을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올타임 걸작 100선에도 이 영화를 올려놓았다.

그보다 앞서 장 뤽 고다르는 발자크의 소설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상하고 시적인 영화 앞에서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스릴러 영화라고 <교차로의 밤>을 한껏 추켜세웠다.

 

15년 사이에 세 번을 보고나서야 이 영화의 매력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는데, 만약 누군가가 고다르가 말한 스릴러 영화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오늘 날의 스릴러를 기대했다가는 된통 당할 수 있다는 점부터 먼저 말하고 싶다.

 

영화는 느리고 느슨하며 심지어 사운드트랙은 불확실하고 프린트 자체가 너무 흐릿하여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누가 말하고 있는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카메라와 인물간의 거리는 너무 떨어져있어 사건에 쉽게 몰입되지 않으며 극적인 순간에도 카메라는 개입은커녕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이 영화의 보조 편집을 담당했던 영화사가 장 미트리가 필름의 일부를 이중인화하는 바람에 3개의 릴이 없는 상태로 최종 편집이 이루어졌다(미트리는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영화 평론가들이 편집이 이상하다고 앞 다투어 지적을 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 결함이 이 영화의 장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불안전한 편집은 섬뜩하며 귀신들린 것 같고 시적이며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가 마르셀 카르네와 자크 프레베르의 시적 리얼리즘이 도착하기 전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대다수의 액션은 어둠이나 안개비로 걸러진 어스름한 회색빛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감독이 애초에 원했던 노스텔지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부조리극에 걸맞는 광경이다.

 

클로즈업이 극도로 배제되고 인물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는 카메라의 거리는 관객을 객관적 관찰자에서 바라보기를 강요한다.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정보를 아침부터 저녁의 가판대의 신문 헤드라인으로 보여주는 장면, 취조 과정의 지난한 시간의 흐름을 개수대의 물방울로 보여주는 장면은 여전히 참신하다.

 

피의자의 여동생이 즐겨듣는 축음기의 음악과 정비소 사장이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음악의 유사성을 통해 여자의 신분을 넌지시 흘리는 수법도 짜릿하다.

 

이 영화는 조르쥬 시므농이 만들어낸 매그레 경감이 처음 등장하는 영화다. 감독의 형인 피레르 르느와르가 연기한 매그레 역은 이후 전형이 될만큼 훌륭하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대로 장 르느와르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을뿐더러 원작을 뛰어넘는 걸작을 만들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번 기획전에서 이 영화를 놓치지 말기를 간곡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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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6 o지온o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워낙 예전 작품이라 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씨네스트에 영자막이 올라와 있습니다. 단어가 별로 어렵지 않아서 쉽게 볼 수 있을 거예요.
S 컷과송  
지금 장 미트리 표면을 공부중인데, 여기에 참여했군요. 현장과 자료 모두를 섭렵한 이론가이자 영화사가답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을 듯 합니다. 아무래도 여기 제작자분들의 손길을 기다려야할 듯 합니다.
이렇게 별도로 감상을 작성하심으로 본편에 대한 깊은 찬탄을 발견하게됩니다.
20 암수  
저는 어제 처음 보앗네요...이영화에 대한 평가는 tspdt 등 여러매체와 평론가들을 통해 익히 알고잇던바,,,사실 접하기 힘든 희귀작에다 볼 기회를 몃번 놓쳐 벼르던차에. 드디어 보게 된다는 설렘이 가득햇어요,,,근데 보고 난 첫 느낌은. 하스미님 말처럼. 이게 왠걸작? 어떤부분이 걸작? 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나왓습니다...위에 언급하신부분을 저도 느낀거죠...담에 기회가 잇을때 더 봐야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잇을듯합니다
제 생각에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흑백이라는데에 있습니다.
인간 정신의 어두운 면과 밤이라는 시간, 미궁에 빠진 사건이 흑백의 화면 속에서 표현됩니다.
영화 말미에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세계는 암흑에 쌓여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르쥬 심농의 소설은 빛과 어둠의 유희인 영화에 영향을 받았고 장 르누아르의 영화는 그것을 이미지로 정확하게 구현해냅니다.
소설과 영화가 주고 받으며 상호 교감한 흔하지 않은 예이기에 이 영화는 더욱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좀 더 긴 글을 써보고 싶네요.
21 조한우  
서울 시네마데크는 3년째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욱프로그래머가 복귀해서 그나마 기대를 했건만
뭔가 커다란 블랙홀에 빠져있는 듯해 보입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가든지 해야지

시네바캉스의 상영리스트업을 보면 한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