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영화감상평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4 가륵왕검 1 1254 1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서부극이라는 장르는 미국의 개척시대, 인디언들의 생의 터전이던 공간들을 침탈하고 학살한 행위에 그들만의 정의를 내세우던 역사 앞에 놓여있다.


 거대한 대륙의 풍광 안에서 지배자의 이름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지고자 했던 그들의 욕망은 자신들이 만든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을 쉽게 악으로 규정하고 응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서부극을 통해 확고히 심어 두었다.


그렇기에 단순한 선악 대비와 폭력의 충돌, 마초이즘을 대변하는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의 대립을 통하여 가진 것을 뺐기지 않는 힘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 서부극의 내재된 속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부 개척시대는 엄연히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고 어떠한 사실들이 쌓여 건국으로까지 가는 여정을 이뤄냈는지 또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서부극은 이러한 역사의 재현과 객관적인 복원보다는 그 시대가 형성한 가장 오락적인 요소들을 부각시키는 것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서부극은 실제로 존재했던 개척시대의 역사를 영화로 표현하는 사극의 입장이 아니라 단지 시대적 배경으로 활용하는, 즉 사실의 전달보다 장르의 특성에 치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는 196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이 사양화 되 가면서 서부극도 좀 더 자극적인 주제를 택하는 것으로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존 포드 감독의 1962년 작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가 선보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품은 서부극이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영화 안에 담긴 서사를 분석하고 감독의 의도를 쫓으며 배우의 연기를 바라봐도 되는 것일까?


먼저 흥미로운 부분은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압박하는 문제들에 대해 갈등하거나 개선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만족하고 무질서와 폭력 또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리버티 밸런스라는 악당에게도 간단히 머리를 숙이고 불의에 항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악을 제거해야하는 정당성 또한 형성되지 않고 영웅이 필요할만한 기반을 만들지 않는데 이러한 내용은 기존의 서부극과 분명히 다른 노선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풍자적인 혹은 코디미적 요소를 가진 캐릭터를 내세워 정의가 드러나기 위한 진지함을 분쇄하고 리버티 밸런스의 악당으로써 나름의 매력 따위는 없는 하찮은 행동을 통하여 희석시킨다.


그러면서 기존 서부극에서라면 악을 처리하는 위치에 있어야 될 톰 도니폰은 더 이상 상황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구시대의 존재로 규정하고 대신 랜스라는 인물이 가진 도덕적 분별력, 대중에 대한 의무감을 전면에 배치하여 총에서 법으로 옮겨가는 변화의 양상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리버티 밸런스를 처리하는 역할을 랜스가 맡지만 이 또한 실제로는 톰 토니폰이 했던 일이라는 반전을 거치면서 정치적 태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진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함께 선연한 정의 또한 톰 토니폰의 쓸쓸한 뒷모습만큼 과거로 묻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작품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였는데 물론 직접적인 유사점은 없지만 실제 일어난 사실과 누군가의 입을 통해 왜곡되고 취사선택되는 가공된 진실 사이의 간극을 이야기하는 “라쇼몽”만의 고유한 미덕이 사무라이 소재라는 형식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또한 서부극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고 논할 수 없는 존 포드 감독의 작품이긴 하지만 서부극의 테두리 안에서 올바른 공식을 따랐는지 비켜갔는지 따지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없다고 보며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의 허상에 대해 미려하게 그려낸 하나의 독립적인 성과로 받아들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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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햐하카카  
너무 재밌고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