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2018)

영화감상평

리틀 드러머 걸 (2018)

13 리시츠키 7 2324 1

감독판 1-6편 봤는데, 일반판을 안봐서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 성기노출씬이 다르다고는 하네요.


1, 2편은 훌룡했습니다. 감독판 1편 오프닝의 폭탄제조과정 시퀀스는 정말 놀랄만한 편집이었습니다.

1, 2편 내내, 프레임의 공간을 활용하는 미쟝센이라던지, 씬과 씬, 시퀀스와 시퀀스의 눈돌아가는 편집,

편집리듬, 숏에 대한 감각도 아주 그냥 끝내줬습니다. 특히 감독이 구축한 마이클 섀넌의 캐릭터는 디테일의 끝장을 보여줍니다. 연기도 훌룡했고요.

더구나 박감독 영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들인 미스테리한 남자의 등장과 당찬 여인,유머, 시니컬함 등.

1,2 편은 장르적으로 나무랄데없이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3, 4, 5 ,6편은 정말 지루해서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영국작가의 소설이고, 모사드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영화의 한계인지,

정치적 균형(박감독의 표현)은 대단히 상실한 영화였던거 같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역사영화나 다큐멘타리가 아니고 스파이 활동과 로맨스가 주가되는 장르영화라는걸 저역시 분명히 알고 보았지만,

영국과 시온주의자들의 유머와 대비되는 팔레스타인들은 농담도 않고 그저 평면적인 테러리스트로 본 것이나, 그 긴 영화 러닝타임 동안 아주 얉은 역사적 깊이마저 없더군요.


1편 초반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GV에서 박감독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라 칭하였습니다)가 의도치않게 아이마저 시한폭탄에 죽게만들고 그걸 후회하는 것을

감독의 현란한 편집기술을 이용해 보여주는 것은, 정치적 균형도 아니고 감독의 도덕적 저의도 아니라, 그냥 쟝르적 클리셰일 뿐이죠. 대단히 나이브한 클리셰이구요.


결말 역시 로맨스로 마무리한 것은 정말 나이브함의 대단원이라 할만합니다.

한국영화에 후한 언론이나 매체에서의, 주인공 찰리의 주체적인 인물이라는 소개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슬그머니 실종되더니,

상황에 밀려 혹은 극 중 남성들에 밀려 여주인공 찰리는 혼란만을 겪다가, 결말에가서는 가디(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역)와의 로맨스로 뭉개버립니다.

물론 감독은 찰리의 행동을 영화속에서 구질구질 설명을 하진않습니다. 시나리오 작법상의 루틴에 따른것인지, 혹은 관객에게 스스로 상상하라는 배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티비영화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런 결말은 정말 아닙니다. 얼터너티브 엔딩이라도 따로 있다면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기라도 할텐데 말이죠.

여성도 착취, 팔레스타인도 착취, 제겐 그저 박'x플로이테이션 필름(Park'exploitation)으로 보일뿐이더군요.



뭐, 박감독 영화를 별로 안좋아하시는 분들은 강력 패스하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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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14 Harrum  
조금 보다가 접었습니다.
아니길 바랐지만 역시 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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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만으론 온전한 인간사를 담지 못한다는 사실..
거장이 되긴 글렀다는 생각
13 리시츠키  
모든 매체들이 (늘 그렇듯이)호평 일색이니...보셔도 후회 없, 아니 직접 보고 판단하시는게 나을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결말하고, 정치성에 동의를 못해서 그렇구요.
16 o지온o  
영화를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글은 재밌게 읽었어요. ㅋㅋㅋㅋㅋ
1.
박찬욱은 연출을 했지, 원작자가 아닙니다.
존 르 카레 원작의 첩보극의 내용을 박찬욱이 맘대로 바꿀 수는 없죠.
내용에 대한 비판은 원작자에게 해야지
감독을 향해 내용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2.
여성도 착취, 팔레스타인도 착취한 것은 모사드죠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고요
감독 박찬욱이 한것도 아니고, 심지어 원작자 존 르 카레가 한것도 아닙니다.
"남성들에 밀려 여주인공이 혼란만을 겪는"것이 당연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정보부의 소모품이거든요.
70년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첩보전을 다루면서
주체적인 여주인공이 남성들에게 밀리지도 않고 혼란을 겪지도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황당무계한 판타지가 될 겁니다.
13 리시츠키  
1.<존 르 카레 원작의 첩보극의 내용을 박찬욱이 맘대로 바꿀 수는 없죠.>
원작의 큰 틀을 유지했다지만, 각색을 직접한 사람은 다름아닌 박감독입니다.
각색의 과정에서 토씨하나 안틀리게 그대로 복사하듯이 영화를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원작에 대한 감독의 재해석이라고 봐야 옳을것입니다.
물론 감독은 각색과 촬영에서 전권을 부여받았고, 편집에서는 의견차가 있었다 합니다.

원작의 결말은 제가 읽어보진 못해서 모르겠지만, 언론과 박감독이 소위 말하는 여주인공의 정체성이나 주체성, 행위의 선택에 있어 그들의 의견과
완성된 영화에서 구축된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제게 모순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결말에서 말이죠(원작을 읽어보신듯한데 결말과 그 맥락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제 글에는 한국영화에 대한, 특히 외국에서 상받은 유명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언론의 경마식보도와 애국주의를 뒤섞은 싸구려 저널리즘에 대한 야유도 포함합니다.
그리고 제 글 초입에도 썼지만, 박감독의 유려하고 뛰어난 연출력에는 감탄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인빈님이 원작/연출(각색)을 혼동하신거 같습니다.


2.<여성도 착취, 팔레스타인도 착취한 것은 모사드죠.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고요.감독 박찬욱이 한것도 아니고, 심지어 원작자 존 르 카레가 한것도 아닙니다.>
제가 쓴 글은 "이/팔 역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리틀드러머걸이라는 박감독의 "픽션(영화)"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제 글 어디에 "이/팔" 분쟁의 역사에 대해 기술한 곳이 있는지요?

<70년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첩보전을 다루면서 주체적인 여주인공이 남성들에게 밀리지도 않고 혼란을 겪지도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황당무계한 판타지가 될 겁니다. >
픽션에서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그 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에 있어 박감독의 각본과 연출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 역시 원작자에게 해야하나요?
인빈님이 역사/픽션을 혼동하신거 같습니다.


리틀드러머걸은, 언론나팔수들과 일부 낯간지런 영화기자들, 박감독의 의견과는 달리,
여성도 착취, 팔레스타인도 착취, 그저 박'x플로이테이션 필름(Park'exploitation Film)일 뿐입니다.
로미오와 쥴리앳은 여러차례 영화화 되었습니다.
프랑코 제피렐리는 셰익스피어 원전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바즈 루어만은 새로운 해석을 했고
로이드 카우프만과 제임스 건은 완전히 해체해 뒤틀었죠
어느 것이 정답도 아니고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박잔욱은 프랑코 제페릴리를 따랐습니다.
'원작에 철저하게 충실하기'
원작에 무지하게 충실합니다.  이런 방향성은 단순히 감독 박찬욱의 의도뿐만 아니라
본 작품을 기획한 기획자와 제작자 그리고 돈을 댄 투자자가 합의한 것이겠죠.
 

결국 캐릭터의 구축이나 시대상의 묘사등도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고요.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이 드라마의 유일한 미덕일 수 있을 겁니다)

이 드라마와 별개로
존 르 카레 원작의  가치는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한다는 것이죠
영국 스파이소설의 양대 축중 다른 한축인 이언 플레밍과 반대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픽션은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고요. 이게 존 르카레의 미덕이라고 합니다. 

냉전시대 스파이전이 한창일 그 시절, 코흘리개 박찬욱은 골목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나 했을 겁니다.
(좀 부잣집 아들 같으니... 브루마블 게임을 하고 놀았을 수도...)
하여간...박찬욱은 70년대 냉전시대 첩보전을 겪지도 않았고 그때의 일을 알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제넘게 제멋대로 해석하고 재조합하지 않고 '존 르 카레의 원전에 철저하게 충실'하기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13 리시츠키  
박감독은 원작이 있거나 다른사람의 각본으로 여러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다른이의 원작이나 각본에 거의 매번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리틀드러머걸은, 님의 말대로라면 이야기의 전개나 캐릭터가 거의 원작과 같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독자는 감독의 그런 영화에 동의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결말부분이라도 제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해주시면 더 좋았을듯 싶습니다.
(아울러 찰리가 나는 "배우"라고 말하는 부분과 소설의 그 부분도 같은 의미, 같은 맥락인지, 캐릭터의 감정이나 판단도 같은 맥락인지도 궁금합니다)
또한 제가 읽어본 기사의 제작과정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하셔서 질문을 드린것이기도 합니다.
애초의 제 글은 언론의 호들갑과 GV에서의 박감독이 힘주어 말한 것에 대한 모순을 짚은거였습니다.

그럼에도 원작을 선택한 건 박감독입니다. 선택은, 이미 원작의 가치에 동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원작을 가지고 그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영화가 원작에 충실히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정치적, 윤리적 면책의 사유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영화가 원작과 같다니, 원작에도 저는 같은 의미로 비판할것입니다.



제 글에 대한, 님의 답글에 대한 제 대답과는 저 역시 별개로(제 본의는 위에 쓴 몇 단락이 다 입니다),
원작자와 그의 픽션을 계속 얘기하시는데,
존의 소설이 현실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그 말을 하는 '스피커(발화자)'들의 얘기입니다.
원작자가 아무리 첩보원 활동을 했다해도 그의 소설은 이미 픽션입니다. 설사 논픽션이라도 작가의 가치판단이 개입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기자라도, 역사를 쓰는 사가라도,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상상의 산물입니다.

냉전시대 스파이짓을 하지 않았어도 박감독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수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자신이 경험한거 이외의 분야나 사건에 대해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상상하고 조합하고 해석하여 창작품을 만듭니다.
박감독이 감방생활을 하고 장도리를 들고 싸우는 경험을 했을리도 만무하고, 피를빠는 흡혈귀가 된 신부이거나,
자신의 살인본능을 깨닫는 18살의 미국소녀였을리도 없었지만 영화는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감독의 현명한 판단이었던 거 같습니다.
물론 리틀드러머걸을 예외로 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