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브레이커블 + 23 아이덴티티 = 글래스?
(<글래스>를 보러 가는 길에 아이폰 메모장에 쓴 메모임)
M. 나이트 샤말란이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부서지지 않는 존재'와 '부서지고'(미스터 글래스) '흩어지는'(<23 아이덴티티>의 원제는 split) 존재들 간의 대결 구도였던 것 같다. 그 '빅 픽처'를 퍼뜩 깨달은 것은 뜬금없이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이 등장한 <23 아이덴티티>의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처음 <언브레이커블>을 보았을 때, 이렇게 기묘한 3부작이 탄생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생에서 의미 있는 두 순간은 태어난 날과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달은 날,이라는 글귀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 있다. <언브레이커블>은 유리처럼 부서지는 몸을 가진 사내가 코믹북 속에서 찾은 자기 예언과 자기실현을 현실에서 확인하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악행을 일삼는 얘기가 주가 된다. '미스터 글래스'(사무엘 L. 잭슨)가 자기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데이빗 던의 각성을 도왔던 일이 결실을 맺은 날(영화는 이 반전 하나를 위해 2시간을 달려간다), 그 말고 감격스러워하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영화 <언브레이커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미스터 글래스나 데이빗 던(언브레이커블맨)이 아니라 그의 어린 아들 조셉이다. 영화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의 키워드는 두 가지 :
1) 집착(혹은 믿음/신념)
2)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조셉은 자기 아빠가 히어로라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빠를 총으로 쏘려고 했다. 미스터 글래스만큼이나 강한 믿음을 가진(뒤집어 이야기하면 미스터 글래스는 조셉처럼 아이의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고 코믹북의 세계관을 믿는다) 조셉은 아빠를 따라 정의의 편에 서긴 했지만 미스터 글래스의 거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언브레이커블>의 가장 큰 쾌감은 '존재의 목적'을 각성하는 인물들(영웅이든 악당이든)의 믿음이 사실로 확인되는 그 순간에 발현된다. 그 순간, 세 명의 인물(미스터 글래스, 데이빗 던, 조셉 던)은 눈물을 흘리며 전율한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You complete me! (넌 나를 완성시켜)"라고 말했던 것처럼, 희대의 악당 '미스터 글래스'는 불멸의 히어로를 각성시킴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언브레이커블>의 진짜 주인공은 영웅(데이빗 던)이 아니라 악당(미스터 글래스)과 그런 존재에 대한 믿음(아들 조셉)이다. 배트맨과 조커 커플 이전에 데이빗 던과 미스터 글래스(엘리야)의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영화 <23 아이덴티티>에서 자기 이론을 더 밀어붙인다. 강한 믿음을 통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며 인간이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상처나 흉터는 존재의 순결함을 입증하는 증거다. 정신의 지배를 통해 육체를 진화시킨 존재 '비스트'는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싸운다. 해리성 정신 장애를 앓는 인물 '케빈'(제임스 맥어보이)과 그의 분열된 스물세 개의 자아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쟁취하기 위해 분열된 자아들끼리 격렬하게 싸운다. <23 아이덴티티>의 주인공 역시 '케빈'이나 그의 머릿속에서 '불빛'(초자아)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23개의 분열된 인물들이 아니다.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해온 소녀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의 상처와 각성이다. 비스트는 '상처 입은 자의 순결함'을 위해 싸우고, 상처 입은 자(케이시)는 '비스트'의 고통에 공감하며 각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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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과연 전작의 인물들이 <글래스>에 어떻게 변화한 모습으로 등장할지가 나의 가장 큰 관심사다. 내가 궁금한 인물은 데이빗 던, 미스터 글래스, 비스트가 아니라 바로 조셉과 케이시이다. 그리고 세 명의 영웅/악당 캐릭터들이 어떤 이합집산을 통해 서로의 세계관을 펼쳐나갈지, 갈등과 대결을 통해 공존할지 아니면 공멸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히치콕처럼 자기 영화에 늘 카메오로 등장해 온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글래스>에 어떤 역할로 등장하게 될까? 잠시 후면 19년(<언브레이커블>이 개봉한 해는 2000년)에 걸친 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막 보고 나왔다. 음... 초반엔 잘 나가다가, <글래스>의 막바지에서 왠지 모를 <레이디 인 더 워터>의 향기가... -_-)
<글래스>를 보시기 전에 <23 아이덴티티>를 안 보시면 영화를 보기 몹시 힘들어집니다.
함께 영화를 본 지인들 대부분이 그런 상태로 <글래스>를 보시면서 몹시 당혹스러워하셨다는 ㅎ
조셉, 케이시 모두 중요한 역할로 재등장 하지만, 조셉의 경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두 인물과 함께 <언브레이커블>의 엘리아(샤무엘 L. 잭슨)의 엄마도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궁금하시다니, 일단 복습을 하신 후 극장에 가시길 권합니다. ㅎㅎㅎㅎ
모자란 글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쁘니6 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