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여중생 A>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가지는 당연한 윤리.

29 율Elsa 1 649 0 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여중생 A>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 가정폭력을 다룬 두 편의 장편 영화가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하루 차이를 두고 나란히 극장 개봉을 했다. 

 

생각해보면 가정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전에 내가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포털 사이트나 구글에 검색해보아도 많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고 검색된 영화들도 대부분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아는 영화는 마이클 앱치드 감독의 <이너프> 정도였는데 영화를 방영해주는 TV채널에서 짧게 본 기억이 있다.(그때 나는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었다) 다정한 남편이 돌변하여 아내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면 이후로 남편이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아내가 아들과 도망치자 치밀하게 쫓아가 협박을 하는 장면은 공포였다. 지금까지도 그 영화를 다 보지는 않았지만 유독 그 장면들이 기억에 남았던 건, 내가 영화에서 보아왔던 가족의 형태가 구성원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붕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공포가 되어갔다. 그게 내가 영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느꼈던 가정폭력의 공포였으리라.

 

그 영화 전후로 가정폭력을 다룬 영화가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사회적인 측면으로 확장을 꾀하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예민한 소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공분과 무력감을 오락거리로 소비하거나 복수극으로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니까, 현실의 피해자를 배제한 채 가정폭력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소비하며, 현실을 향한 손을 거둔 채 영화 스스로 판타지로 치환해버리는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러니까,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영화계 내에서도 소수자 취급을 받아야했다. 왜 이렇게 가정폭력에 대해서 영화는 지금까지 미온적이었을까?

 

가정폭력은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내부로부터 발생한다. 필연적으로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붕괴다. 가족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에게 언어적,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한다. 그게 외부에서는 인지되기 힘들다.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이 문제를 덮는 가림막이 되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이미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 초반 법정 장면을 보면 이는 앙투안(드니 메노셰)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변호하는 주된 수단이 되고 있다. 그렇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가정폭력은 인지되거나 관찰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피부로 와닿지 않고 어디까지나 사람들에게는 공분할만한 뉴스거리나 상상의 영역이 되어버린다. 그 외에도 짐작되는 여러 원인들이 있 가정폭력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그나마 2010년대에 가까워지고 접어들면서 가정폭력의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강조됨에 따라 한국영화에서 가정폭력의 문제점을 지적한 작품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은 좋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 임태규 감독의 <폭력의 씨앗>이 이 문제에 대해서 성찰했다. 해외에서는 오미보 감독의 <너는 착한 아이> 같은 영화도 있다. 이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에서도 배제되어 왔던 피해자의 목소리에 집중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여중생 A>와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긍정한다. 

 

2. 두 작품은 소재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

 

<여중생 A>는 상업영화에 가까운 드라마 형식이다. 하지만 가정 폭력을 포함해서 왕따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리얼리즘에 가깝게 고통스러운 장면을 직시한다. 영화의 첫 장면. 여중생 A의 자살을 다룬 신문 기사를 먼저 관객에게 보여준다. 누군가가 학교 옥상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교실 안 창문을 통해서 보여지고 떨어져 고통스러워하는 미래(김환희)의 모습을 보여주는 쇼트으로 이어진다. 꽤나 충격적인 오프닝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미래가 잠을 깨는 쇼트로 이어지는데 관객은 여기서 안도하다가도 혼란스럽게 된다. 주인공의 꿈일 뿐인가? 아니면 결말을 미리 본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영화는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불편한 장면을 직시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반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소외당하고 가정폭력의 공포로부터 숨죽이고 있는 미래의 '상황'을 보여준다. 불편하다. 이경섭 감독은 사회의 보호막 바깥에 있는 미래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꼭 직시하고 마주해야하는 아이들의 얼굴이라고 말하는 듯이 이경섭 감독은 리얼하게 현실의 민낯을 포착한다.

 

하지만 <여중생 A>는 사실적인 느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따지자면 마술적 리얼리즘에 가깝다. <여중생 A>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한다. 영화는 미래가 머물고자 하고 관계를 쌓는 게임 세계를 1차원적인 재현을 통해 이미지로 구현한다. 컬트로도 보일 정도다. 이 부분은 사실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다시 말해, 현실 문제는 주변에 있을 법할 정도로 진중하게 그려지지만 판타지 세계의 허술한 재현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는 허구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사회 문제와 거리를 두는 효과가 나게 되는데 그렇기에 영화가 현실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나는 <여중생 A>가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판타지의 외피를 덧씌운 것으로 보였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극장에서 미래와 재희(수호)는 같이 영화를 본다.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는 화면에 나오지 않으나 소리만 들린다. 스크린 속의 아버지가 가족에게 험악하게 소리를 치는 장면인 듯하다. 미래는 불편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극장을 나가버린다. 나는 이 장면이 <여중생 A>의 자기반성을 내치비는 장면으로 읽혔다. "이 영화로 인해 현실에 상처를 받는 피해자가 나오지는 않을까?"라고 자문하는 것 같았다. 영화와 현실의 연관성. 누군가에게는 허구일 뿐인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이해. 이 질문을 스스로 삭제하고 좋은 의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어왔던 작품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돌이켜보면 의미 있는 조심성이다. 이경섭 감독은 영화가 가져야 하는 최선의 자세를 고민한다. <여중생 A>는 스스로에 대해 꾸준히 성찰함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에 집중한다. 피해자의 옆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는 것. "슬플 땐 울어도 괜찮다"는 재희의 쪽지는 이경섭 감독이 현실에 전하고자 하는 위로 그 자체의 문장이다.

 

분명 완성도는 좋지는 않은 것은 사실이다. 현실의 민낯을 동화 같은 성장담으로 외피를 감싸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미숙한 중학생의 내면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건넨 위로는 미덥다. <여중생 A>가 가지는 온기 어린 시선은 그 자기반성으로부터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와 <여중생 A>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피해자의 시선으로부터 출발하고 이끌어가고 리얼리즘의 결을 어느 정도 같이 한다. 하지만 <여중생 A>가 현실을 어느 정도 판타지로 수렴하였다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리얼리즘의 극단으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정확히는 '영화가 몰아붙인다'는 말보다 '관객이 몰아붙여지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가정폭력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관객 앞에 재현한다. 잡히지 않는 불안과 공포를 포착해내는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송경원 평론가의 글을 인용하면 '서스펜스가 목표가 아닌' 영화이고 서스펜스는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저절로 발생하는 효과'다. 가정폭력의 현장에 관객을 놓고 현재진행형 어법으로 문제를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발생하는 중압감은 일종의 체험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직접적인 피해자 줄리앙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사실 외부인에 대한 시선에 더 가깝다. 영화의 초반 법정 장면을 살펴보자. 카메라가 판사를 따라 심리실에 입장한다. 영화는 사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심리가 시작되고 두 변호사가 남편과 아내, 각자의 의뢰인을 변호한다. 관객은 사건의 진상을 모르기에 두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사건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은 좀 이상하다. 대칭처럼 보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남편과 아내의 입장을 비슷한 분량으로 변호를 담는다. 쇼트의 구성도 똑같이 들어간다. 판사가 질문을 던지면 아내가 답을 할 때 클로즈업으로 표정이 담긴다면 이어서 남편이 답을 할 때도 남편의 얼굴을 똑같이 클로즈업으로 표정을 담는다. 촬영과 쇼트의 구성이 거의 대칭을 이루는 구조인 것이다. 여기서 판사가 하는 대사. "누가 거짓말쟁이일까요?". 관객은 판사가 자신 대신 진실을 잘 규명해주고 약자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게으른 기대는 금방 배신당한다.

 

그리고 영화가 법정을 벗어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관객을 현장에 데려다놓는다. 카메라는 피해 당사자의 시선에 접근함으로서 또다른 무력감을 체험시킨다. 문제의 외부에서 내부로, 카메라가 관객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관객은 가학적인 폭력의 현장을 눈 앞에서 보게 된 목격자가 된다. 관객은 그 불편한 현장을 계속 보아야 하고 영화는 관객을 배려하지 않고 폭력으로부터 시선을 절대로 떼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불편한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사회 고발 영화로서 미덕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피해자들을 가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위에서 나는 <여중생 A>가 영화로 인해 현실에 상처를 받는 피해자가 나오지는 않는지 자문하는 것 같았다고 적었다. <여중생 A>는 공론화를 위해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에 관한 앞선 질문에 순응한다. 피해자에 가해지는 가학성이 최대한 노출되기를 꺼려 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그 질문에 대해 역으로 묻는다. "영화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피해자를 가학적인 폭력에 빠뜨리는 건 무엇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은 여러 의미로 인상적이다. 왜 영화의 시작과 끝이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루어졌을까? 법정 장면이 끝난 후 영화는 어떠한 편집 효과도 없이 바로 몇 주 정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법원은 앙투안의 손을 들어줬고 가족에게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떤 자막도 설명도 없이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조세핀(마틸드 오느뵈), 그리고 줄리앙의 시선으로 카메라는 이입해 있다. 시선이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연결. 갑자기 현장으로 쑥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런 편집은 일종의 충격 효과를 발생시키고 폭력의 방관자였던 관객의 위치를 상기시킨다. 다시 말해, 폭력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안전한 외부에서 법정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던 관객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관객 스스로가 문제의 방관자였음을 알린다. 일종의 비웃음.

 

영화의 엔딩. 총을 들고 협박하는 앙투안을 목격한 아파트 복도 맞은편 이웃집 할머니가 이를 경찰에 신고한다. 앙투안이 체포되고 나서 영화는 미리암과 줄리앙이 안도해하는 모습이 아니라, 공포가 할퀸 상처를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포착한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궁금해하는듯한 이웃집 할머니가 보이고, 영화는 그 할머니의 시점 쇼트로 미리암과 줄리앙의 모습을 담는다. 참고로 이 할머니는 극 중에 그렇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이 할머니는 관객의 행동을 자극하는 장치에 가깝다. '불의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아주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의무. 관객은 내부의 시선으로 공포를 간접 체험하였기 때문에 영화는 다시 외부인의 시선으로 옮겨 관객의 행동을 촉구한다.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를 경험한 관객은 행동의 주체가 된다.

 

오프닝이 폭력의 방관자로서의 관객이라면 엔딩은 행동의 주체로서의 관객을 스스로를 상기시킨다.


3. <여중생 A>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자기반성이라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행동을 촉구하는 고발이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지점은 다르지만 현실 문제에 관해서 진중한 자세로 고찰한다. 나는 영화가 이러한 자세로 현실을 고민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딱히 이렇게 거창하게 하고픈 말은 없지만, 이 인간적인 두 장편영화를 되새겨 보고 싶었다. 되새겨보면서 다시 상기하게 되는 당연한 것. 소수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사회 문제를 공론화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예술이 지녀야 하는 어떤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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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서재진  
리뷰가 장난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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