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상전에는 막연히 인어공주나 킹콩 같은 익숙한 이야기를 비틀어 기예르모 델토로의 스타일로 버무려낸 가슴 찡한 판타지 러브 스토리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관능적인 영화네요.
야하다기보다는 성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입니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일라이자는 아침마다 달걀을 삶는 시간에 물이 가득찬 욕조에서 자위를 하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여성이며 어렸을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주체적이며 모험심 강한 건강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구원을 받은적 없이(무려 아마존의 신이라는 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자기 생각과 욕망에 따라 과감하게 행동하지요.
이 영화는 일라이자를 위한, 일라이자의 영화입니다. 말을 못하는 대신 눈빛과 손짓으로 영화내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탭댄스와 춤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벗삼아 뮤지컬을 펼쳐보이듯 연기합니다. 이 영화에서 '손'은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지요. 일라이자에게는 자신의 언어를 표현하는 도구이며 마이클 섀넌이 연기한 스트릭랜드에게는 여성을 만족시키는 성적 도구이자 다시 붙인 손가락이 썩어들어가는 욕심과 타락의 표현입니다.
샐리 호킨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관능적이었어요. 단순히 나체로 연기해서가 아니라 눈빛이 정말... 영화속 가장 환상적인 장면 - 화장실에 물을 가득채운 채 양서류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물이 새는 탓에 놀라 달려와 문을 연 자일로에게 보여준 일라이자의 미소띈 눈빛은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보다 더 당당하고 정신적/육체적 사랑에 만족한 환희에 찬 얼굴이었죠. 왜, 굳이 청불로 만들었을까 의문이 단 한장면으로 이해가가는 눈빛이었습니다. 뭐 스트릭랜드의 허연 엉덩이가 노출되는 장면도 있었지만...아, 양서류인간이 영화내내 나체로 나오는군요- -;
사실 스트릭랜드는 일라이자와 함께 영화 속에서 성적인 에너지를 가장 많이 분출하는 인물입니다. 화장실에선 여성 청소부들과 대화하며 손 안대고 소변을 보는 강인한 남성(!)의 면모를 뽐내기도하고 일라이자에서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며 끌린다는 말을 대놓고 하죠. 제게는 일라이자와 스트릭랜드의 관계가 또 하나의 비틀린 사랑의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일방적이고 찌질한 스트릭랜드의 짝사랑이 흥미로웠던 것은 일라이자의 대찬 반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찮은 헬퍼 주제에 나를 거절하다니...하는 우월의식에 가득찬 스트릭랜드에게 단호하고도 우아하게 F-ck you를 수화로 또박또박 날리던 일라이자의 비웃음 섞인 미소는 통쾌하기까지했죠. 자신을 거부한 여자와 그녀의 남자를 총으로 살해함으로써 막을내린 스트릭랜드의 짝사랑은 찌질해서 차라리 인간적이었습니다.
남편 험담에 그나마 짐승미 때문에 산다는 수다꾼 아줌마 젤다역의 옥타비아 스펜서는 딱 기대만큼의 연기를 보였고 같이 오스카 조연상에 오른 리차드 젠킨스의 역할이 더 눈에 띄더군요. 그가 연기한 자일스라는 캐릭터는 흑인, 장애인과 함께 사회적 차별을 받는 성소수자이며 일라이자의 친구이자 조력자,그리고 이 영화의 화자로서 극의 처음을 열고 끝을 아우릅니다.
남자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양서류인간은 의외로 활약이 적었습니다. 일라이자에게 극의 중심이 심하게 기울어서인지 유려한 디자인과 아마존의 신으로 불리우던 (자일스의 머리를 자라게 하는 능력을 보니 탈모인들의 신은 확실한 듯) 캐릭터임에도 존재감이 흐릿합니다. 의도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눈이 아닌 양서류의 눈을 그대로 디자인한 탓에 감정이입이 어려웠어요.
아름답고 환상적인 화면과 인상적인 음악이 어울어진 매력적인 동화였지만 개인적으로 헬보이와 판의 미로가 아직까지는 더 좋군요...
IMDB에서 트리비아 몇 가지 가져와 봅니다...
- 2017년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연시 영화속 극장장면을 촬영한 Elgin Theatre에서 상영되었다
이는 "판의 미로"와 "악마의 등뼈"처럼 개인적으로 깊게 빠진 프로젝트이기 때문이었다
- 리차드 젠킨스의 역할은 원래 이안 메켈렌을 위해 쓰여졌다
- 영화속 한 장면에서 마이클 섀넌의 "이게 무슨 소용이지, 헬퍼따위와 인터뷰를 하다니..."는 옥타비아 스펜서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The Help"를 염두에 둔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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