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상기시키고 체험시키는 것.

영화감상평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상기시키고 체험시키는 것.

28 율Elsa 2 2257 1

1. 나에게 2017년의 최고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를 꼽겠다. 이미 리들리 스콧의 원작과 비교하는 평이 많아서 식상한 말이지만, <2049>는 원작을 잘 이어받았다. 무엇을 이어받았는가하면 존재론적 철학의 사유라던가 세계관이라던가 대부분 원작과 끈끈하고 팽팽하게 ‘연결되어야 할 것들’이 그렇다. 그런 것들은 이미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또는 그 이전 단계부터) 이어받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것은 원작과 비교될 수 있는 기준으로만 작동할 뿐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겉핥기에 불과하다.

 

<2049>가 이어받은 것은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간다. 애초에 비와 안개로 휘감싸여진 LA의 밤과 골목길의 네온사인이 주는 퇴폐미를 극대화한 원작의 정서를 되도록 잘 구현하는 것이 빌뇌브의 목표였다. 그런데 <2049>에서는 복사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비슷한 점이 많지만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 영화적 체험은 복사만으로는 도달해낼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2049>가 놀라운 이유는 현학적인 단어로 표현되는 탐구나 사유가 아니라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는 영화적 기교와 스타일의 본질에 있다.

 

드니 빌뇌브는 세계를 구현하는 방법이 원작에 기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듯하다. 원작을 위에 두고 <2049>를 아래에 두면서 원작을 ‘계승’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원작과 ‘공유’하되 별개의 작품으로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2049>는 속편이라기보다는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에 가깝고, (프로듀서로 참여한) 리들리 스콧보다는 드니 빌뇌브의 인장이 강하게 찍혀있다. 그러니까 드니 빌뇌브가 <블레이드 러너>를 자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영화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빌뇌브의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에서 <2049>가 동일하게 해석되는 경우는 이런 부분에서 이해된다.

 

2. <2049>는 원작의 그림자를 지우고 본다면 빌뇌브의 영화적 기교의 총 집합이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요약시키고 집대성한 작품. 미니멀리즘한 이미지와 두 개 영역을 넘나드는 플롯, 영역 사이의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모두 담겨있다. 어떻게 보면 빌뇌브의 자가복제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반복을 통해 <2049>에서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본질을 묻는다.

 

<2049>는 시각적인 재미가 상당히 풍부하다. 빌뇌브의 이미지는 관객을 끌어당길 줄 안다. 화면 안의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려는 미니멀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화면에 여백을 만든 이미지는 그대로 조형적인 미적 효과를 낸다. 그리고 그러한 미적 효과는 가상 미래 도시의 신비감과 공간감으로까지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이미지는 관객을 사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화면 안의 요소를 배치하고 조작하여 영화의 테마를 전달하는 것. 이것은 ‘미장센’이라는 말로 정의된다. 빌뇌브는 미장센의 힘을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월레스(자레스 레토)의 공간은 건축과 조명, 구도와 배치 등 (전통적인 의미의) 요소가 어우러져 (허상의 창조주로 상징되는) 그를 정확히 이미지화한다. 정교하게 짜여진 미장센은 시각적인 해석을 유도하고 영화를 풍부하게 한다. 이야기의 상징들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있지만 시각적 상징들은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CG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빌뇌브의 작업 방식은 영화의 원초적인 것으로 회귀한다.

 

반면에, <2049>에서 CG는 일종의 영화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CG가 미장센으로 불릴 수 있을 만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K(라이언 고슬링)가 매춘부를 불러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려 할 때 조이는 매춘부의 육체와 동기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겹쳐지지 못한다. 여기서 영화는 홀로그램인 조이의 위치를 상기시킨다. 대단히 인간적이지만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 대신 이 장면에 스며든 것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안간힘이 담겨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인간을 본다. 그렇기에 이 장면이 유독 아름답다. 동시에 정교하다. 실제(육체)와 가상(조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어긋남을 묘사하는 기술적 기교는 모든 것을 함축한다. CG의 미장센이 있다면 이렇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2049>는 드니 빌뇌브가 연출로 참여한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IMAX 포맷으로 상영되었다. IMAX는 현대 영화 상영 기술의 최대치로서 어떠한 영화적 체험을 관객에게 기술적으로 선사한다. 방대한 규묘의 정보를 관객에게 압박시키는 것. 드니 빌뇌브는 하나의 가상 세계를 거대한 스크린에 구현하여 관객을 덮치고 체험시킨다. 이것이 빌뇌브가 관객을 압박해왔던 방법이기도 한데, 전매특허인 익스트림 롱 숏의 광활함으로 영화 속의 세계를 관객에게 들이밀었다. 그 숏에서 발생하는 거대함이 영화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역할을 한다. 기교적으로 넓힌 시각적 체험의 영역은 기술적으로도 넓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꾼다.

 

그는 도시를 미니어처로 구현한 아날로그와 (의도치는 않았지만) 인간성을 CG로 구현한 디지털에 양발을 걸침으로서, 영화 기술의 역사와 의미를 되돌아본다.

 

3. <2049>가 영화적인 재미를 안겨주는 것은 정교한 이미지의 배치다. 이것은 영화의 존재 다시 묻고 상기시킨다. <2049>는 가장 원초적인 것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서 영화의 본질을 묻는다. 이는 인간성의 본질을 찾아나가는 K의 여정와 겹친다. 영화의 진짜는 무엇인가. 바꾸어 말하면,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빌뇌브는 자신의 시각적 스타일의 확장과 기술의 역사에서 영화라는 체험을 상기시킨다. 시각적으로 온전하게 구현한 세계관을 통해 증명하는 영화의 원초적 힘을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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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S 컷과송  
정독했습니다. 님의 글 읽으러 주기적으로 여기를 방문하게됩니다. 여튼 어디 다른 포털 일기장에 백업은 해두세요..
28 율Elsa  
그러고 있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