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프레지던트'가 보내는 화합의 편지

영화감상평

'미스 프레지던트'가 보내는 화합의 편지

28 율Elsa 1 1830 1

잔상이 되어버린 역사에 시선을 뺏긴 사람들의 비극.

평점 ★★★☆

 

#중도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줄여서 ‘박사모’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몇 개월이 지난 후로도 사건 당사자들의 책임을 묻고 지금에서 보면 여실히 도발적인 소재다. 그래서 나는 <미스 프레지던트>가 보수 정치계를 옹호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으며 날짜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계에서,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특정 정치인의 전기(傳記)를 기록하려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경향을 보면 그러한 추측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겉만 보고 판단한 서투른 오해였다. 일부 네티즌들도 이러한 오해를 하였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사모를 옹호하는 다큐가 아니다. 제목에서 ‘미스’는 영어로 Miss, 미혼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Mis-, ‘나쁜...’, ‘잘못된...’을 뜻하는 접두사가 사용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다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이에 근거해서 반대 입장과 똑같은 오해를 만들고 있고 오류를 범한다 것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사모를 돌려까는(?) 다큐도 아니다. 오히려 이 다큐의 자세는 연민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이러한 양측의 오해는 철저하게 이분법적이다. 특정 정치적 진영에 대한 옹호, 또는 비난. 중도(中道)는 없다. 이는 마치 국론이 격렬하게 분열되어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로도 비추어진다. <미스 프레지던트>가 친박과 비박 두 진영에서 모두 비난을 받은 이유는 카메라가 가지는 중도의 자세 때문이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카메라는 박정희 일가(一家)를, 말 그대로 사랑하는 선량한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김재환 감독은 이들을 한번 이해해보자는 마름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그래서 카메라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부각된다. 왜 이들은 박씨 대통령 일가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가?

 

김재환 감독의 카메라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시선이다. 그들 사이로 들어가서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카메라는 냉정할 정도로 무감각하게 그들을 비춘다. 매일 아침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화에 절을 하는 조육형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식당에 박정희, 육영수 부부의 사진을 많이 걸어놓은 김종효 씨 부부의 생활상 등 불편해보일 수 있는 모습을 비춤에도 카메라는 거리를 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는 감독의 의도를 인위적으로 이끌어내는 나레이션의 부재와도 관련이 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이러한 거리두기를 통해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박사모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시도한다.

 

박사모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은 듯,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국가 경제를 발전시켜 배고픔에 굶주리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살렸다고 이야기한다. 김종효 씨 부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고도 말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영웅화를 넘어서 신격화까지 된 것은 낯설다. 김재환 감독은 6, 70년대의 영상 자료와 인터뷰 장면을 연결시킨다. 이러한 연결이 중요하다. 그들은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산 증인으로서 현재에 있다. 김재환 감독은 그들의 과거로 들어가서 시대의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노력한다. 그 굶주린 시대의 공기 속에서 박정희라는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은 박씨 일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체감한 시대의 공기에 휩쓸린 존재들이고 영화는 그것을 상기시킨다.

 

카메라가 그들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갈 때 김재환 감독은 카메라를 그들에게서 멀리하려 한다. 김재환 감독은 카메라에 태극기 집회가 담기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선량한 국민이었던 그들은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촛불 집회를 향해 빨갱이들이라고 시대착오적인 모욕을 하기도 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박근혜에 대한 사랑은 맹목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한 것이 다큐는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게 하지는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김재환 감독은 개인의 문제에서 멀어져 더 넓은 영역에서 시선을 머문다. 카메라가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생겼던 연민은 그대로 이어져, ‘단지 이들은 역사에 갇혀버린 존재일 뿐’이라며 반복해서 각인시킨다. 이제는 잔상만 남아 일렁거리는 역사에 아직까지도 시선을 뺏겨버린 것이다.

 

김재환 감독은 중도의 자세로 현 대한민국의 모습을 해부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흔적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청와대를 나서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울부짖는 그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서슴없이 풍자하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김재환 감독은 그들도 인간이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현재를 살아가는 선량한 국민일 뿐이라고 설파한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현 대한민국에 보내는 화합의 편지이다.

 

 

 

Top 10 리스트를 선정하기 전에 이 작품을 보았다면 한국영화 10편 리스트에 들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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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0 사라만두  
정치적 편향성이야 면면이 가지는 개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기에
이런 시기에 이런 관점의 영화는 색다른 의미가 있네요.
그 `화합`이라는 것, 한번 확인해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