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에 대해서

영화감상평

<청년경찰> 논란에 대해서

28 율Elsa 2 2206 0

 

21세기 청년세대를 가장한 20세기 기성세대. 폭력이 정의가 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만용.

평점 ★★

 

<청년경찰>은 2017년 9월 24일 기준으로 약 57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 지명을 그대로 영화 내에 차용하여 동네의 모습을 범죄소굴로 묘사하였고 조선족들을 사회악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중국동포들은 <청년경찰>의 상영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그에 대해 제작사 대표는 "정말로 의도하거나 나쁜 악의가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라며 "중국동포 분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 전혀 없다"라며 "영화라는 게 다 허구의 내용이고 이건 코미디에 오락 영화로 만든 거라 이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 불쾌함과 우려를 느끼셨다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여기서 제작사 대표의 해명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프리프로덕션에서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청년경찰>이 오락영화인 건 맞다. 관객의 입장에서 봐도 그건 명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년경찰>은 현실의 문제에 밑바탕을 두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박서준과 강하늘이 각각 연기한 '기준'과 '희열'은 경찰대학에 진학하게 된 사유가 '경찰대는 등록금이 안 드니까'라는 경제적 이유와 '다른 애들보다 다른 걸 하고 싶어서'라는 삶에 대한 고민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헬조선'이 연상된다. 이는 대다수의 청춘 영화가 현실 청춘 세대와 교감하기 위해 주로 차용하는 페이소스이기도 하다. 이렇듯 현실과 접목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한데 제작사의 해명(영화라는 게 다 허구의 내용)은 본 영화가 관객과 어떻게 교감을 맺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듯하다.

 

아무리 오락영화라도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의 관념을 고정시켜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초기 서부극을 떠올려보면 서부 개척시대의 백인들이 선(善)으로, 인디언들이 악(惡)으로 그려지는 영화를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백인들이 인디언을 무찌르는 전개가 통용되었다. 그 유명한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가 그러한 예인데 이는 미국의 서부 정복을 영웅적인 업적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백인의 위상을 치켜세운다. 영화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한다. 관객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효과는 더욱 강력해진다.

 

영화의 프로파간다는 현실과 접목되어 있을 때 더욱 직접적이다. <청년경찰>이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가 조선족의 범죄 소굴로 묘사하는 공간은 '대림동'이라는 실제 중국동포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명을 언급하며 현실성을 높이고 있고 여자들을 납치하여 난자와 장기를 적출하는 등 범죄의 묘사도 사실적이다. 또 영화는 뒷골목에 자리한 범죄 현장을 직접적으로 스크린으로 전시함으로서 '실제로 그럴 듯한' 자연스러움을 표방한다.자연스럽게 범죄의 주체인 조선족들을 악으로 처단하면서 영화는 오락적인 선동을 분명히 하게 되는데 논란의 여지는 여기서 발생한다. <청년경찰>은 범죄 행위호 인해 처벌받아야 할 대상을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는다. '조선족'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집단을 언급하지만 사실 처단되어야 하는 것은 '일부 범죄 집단'이다. 그러니까 명확하게 하여도 '특정 일부의 조선족 범죄자들'이지, 굳이 대한민국 사회의 소수자 전체를 지칭하는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두리뭉술하게 사용하면서 일부를 전체로 확장시켜버리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소수자 사회를 차별시켜버리는 프로파간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청년경찰>은 그러한 프로파간다를 경찰이라는 역할을 통해서 정당화하고 있다. 경찰대생이라는 아직 미숙한 역할이긴 하지만 사회의 치안을 담당하는 책임감을 배워가는 단계다. 그러한 책임감을 영화는 '정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돌리지 않는 책임감이 정의라고 말하며 범죄현장을 쫓는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차별적인 오류가 정의의 의미를 변질시킨다. 과연 그러한 프로파간다를 정의라는 명목 아래에서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그로 인해 영화가 우리나라의 다양화 사회에서 다시 단일민족으로 사회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과잉해석의 명분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간다.

 

<청년경찰> 제작사 대표가 해명한 지점도 분명 여기다. "정말로 의도하거나 나쁜 악의가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영화 안에서 모든 것이 과연 오락적으로만 소비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장르 내에서 소비되는 오락의 경쾌함으로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까. 이건 상당히 예민한 문제다. "영화라는 게 다 허구의 내용이고 이건 코미디에 오락 영화로 만든 거라 이해하실까 하는 생각"만으로 영화를 만들면 절대 안된다. 영화는 어떻게든 현실과 교감하려 하는 매체다. 그것을 미리 예견하지 못한 제작사는 상당히 유아적이다. <청년경찰>에 대해서 평론가들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부재되어 있다"(이화정 평론가)고 지적했고 특히 박평식 평론가는 "인간과 시대에 대한 무례와 무지"라고 혹평했다. 이건 영화 스스로가 되돌아봐야할 문제였다. 혹시나 스며들어 있는 차별이라는 사회적 폭력이 누군가를 향해 있는지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했다. 하지만 <청년경찰>은 그렇지 못했다.

 

그 외의 논란을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청년경찰>은 여혐(여성 혐오) 논란에도 휩싸였는데 어떤 네티즌은 남자의 성장을 위해 여자를 도구화하는 오조오억개 영화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청년경찰>은 두 남성의 버디무비 특성 상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끈다.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범죄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고 영화는 피해자 여성들에게는 유독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카메라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때는 오직 여성이 납치를 당하거나 난자 적출을 위해 강제로 주사를 맞게 되거나 하는 소극적이고 가학적인 순간 뿐이다. 그러한 장면은 두 남성이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로서의 역할로만 작동한다. 그러니까 여성은 남성의 병풍으로만 배치되어 있다. 이는 대단히 가부장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경찰서의 형사나 경찰의 모습을 연행을 보여주며 과정 중심주의와 자본주의적인 신고 절차와 수사 과정을 암시하며 그것에 대해 분노한다. 조선족에게 탈출하고 난 후 기준과 희열은 동네 파출소에 들어가며 자신이 목격한 범죄 현장을 신고하려 한다. 그런데 경찰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신고를 할 수 없다면서 끈질기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여기서 기준은 "뭐 이런 게 다 있어!'라며 관객의 심정을 대변한 듯 경찰에게 소리친다. 그리고 현재 경찰 시스템만으로는 피해자를 구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범죄 조직을 추적하여 '진압'한다. 그들의 행동은 과정 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지만 문제는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정의'를 계속 언급하며 두 캐릭터의 행동을 납득하는데 '정의'라는 명목 아래에서 폭력만으로 범죄가 해결 될 수 있을까. 이도 너무 유아적이다. 이는 과정 중심주의에서 목적 중심주의로 변화된 것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는다. "목적이 올바르다면 그러한 폭력은 옳다"는 단순무식한 논리가 성립한다.

 

더군다나 더욱 심한 것은 에필로그인데 기준과 희열의 행동에 대해서 징계 수위를 두고 경찰대 교수들이 갑론을박을 펼친다. '범죄를 처단한 행동에 대해서는 상을 주어야 한다'와 '폭력은 엄연한 범죄'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그렇지만 양교수(성동일)의 의견은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다"며 회상하며 그들의 폭력과 행동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건 옛날이지, 현재는 다르다. 현 사회에 과거의 관념을 이끌어 오면 안 되는 것이다. <청년경찰>은 시대착오적이다. 게다가 오로지 오락을 위해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떠올려야 할 것이 있다. <버드맨>이 국내에 개봉할 때 '김치 발언' 대사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있었다. 이는 한국인 비하 발언이라면서 논란이 되었기도 했다. 이를 역지사지로 되돌아보면 <청년경찰>에 관련된 논란을 이해할 수 있다.

 

<군함도>부터 비롯하며 <브이아이피><청년경찰> 같은 한국영화가 연달아 논란에 빠지면서 고착화되고있던 한국 영화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미씽:사라진 여자>는 한국영화에서 비교적 조연이던 여성 문제를 전면으로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고 <연애담><꿈의 제인> 같은 뛰어난 작품은 사회의 소수자를 관객과의 공감과 이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여 왔기 때문에 윤리적인 모범이 되었다. 최근 관련된 논란은 한국 영화계의 성장통으로 보아도 될까. 어쨌든 한국 관객들의 의식은 고양되고 있고 변하고 있는 중이고 그래야 한다. 그건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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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21 로그인후  
저는 엘사님께서 말씀하신 양교수(성동일)의 영화 대사 부분은 우리도 한 때 청춘들의 끓는 피가 있었지라는 부분으로 감독의 의도(?)가 넌지시 전달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금 리뷰를 읽어보니 폭력에 대해서 어설프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관객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에 말이죠

기준역의 박서준이 뭐 이딴 게 다 있어라고 분노할 때는 솔직히 저도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요즘 시대의 절차적인 진행에 대해서 (이를테면... 경찰의 수사같은.. 읍읍) 갑갑해하시는 분들도 꽤 있으실 겁니다 다행히 영화는 극단적으로 가지 않았지만요 성동일이 너희들은 아직 경찰이 아니라든가 회의에서 퇴학 조치를 논의하는 부분이라든가 하는 면에서요

무엇보다도 여성에 관한 시각이라고 해야 할까나 그런게 불편했습니다  나머지는 영화 혹은 이 시대에 대한 무례와 무지로 넘길 수 있지만, 글쎄요... 남자인 제가 보기에는 거북스러웠어요 세상에는 남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성이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시네플레이의 블로그였던가 당시 제가 봤을 때 댓글이 1500여개가 넘어가더라구요 대부분의 댓글이 불편하지 않다는 반응이었음에 꽤 경악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S 컷과송  
저 영화는 보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볼 것 같지는 않지만, 님의 글은 정독했습니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시대에 공감하는 평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앞으로도 이 게시판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