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존 윅 - 리로드

28 율Elsa 6 398 1 0

고독과 분노가 이토록 아름다운, 킬러의 다채로운 액션. 

평점 ★★★★☆

 

1.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2015년에 개봉한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극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장르영화로서 촬영과 편집, 미술과 스턴트 측면에서 거의 완벽에 다다르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시나리오 상의 캐릭터도 입체적이고 액션의 동선도 탄력적이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여기에 나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액션에 드라마를 녹여내는 방식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매드맥스>에서 아날로그 카 체이싱 액션은 그 자체로 거대한 스펙터클을 제공하지만 캐릭터의 드라마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려는 영화적 서사의 방식으로도 읽힌다. 설정 하나만 툭 던져놓고 다짜고짜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극한 상황의 액션 안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고 질주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들을 보면 아찔하다가도 못해 저절로 감정 이입이 된다. 광활한 사막의 풍경도 마찬가지. 대사를 생략하고 오로지 이미지와 액션만으로도 충분히 캐릭터의 드라마가 부각된다. 즉, <매드맥스>에서는 액션과 드라마가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게 완성되는 드라마는 스펙터클을 더욱 팽팽하게 이끌어가며 액션과 드라마, 양쪽이 더욱 시너지를 얻는다.

 

영화에서 드라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허점이 많은 이야기라도 드라마만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영화는 드라마에 기반을 둔다. 드라마를 위해 다르덴 형제는 인물들을 헨드헬드로 쫓아가고 초점의 심도를 낮추어 인물을 클로즈업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물과 거리를 두어 카메라를 두고 관찰하며 인물의 행동과 리액션의 파장을 포착한다. 두 예시 모두 드라마의 힘을 끌어내려는 영화적인 방식이다. 물론 그 외에도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구현하려는 방법은 다양하다. 캐릭터의 매력을 이용하기도 하며 플롯이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여기서 '버스터 키튼'을 떠올린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보면서 왕복 형태의 스토리 구성이 버스터 키튼의 걸작들 중 하나 <제너럴>의 대칭적 구성을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버스터 키튼은 거의 액션영화의 시초로서 액션의 영화적인 활극성을 작품에 구현했던 감독이자 배우이다. 과잉해석이겠지만 <매드맥스>에서 액션에 드라마를 담아내는 방식이 버스터 키튼의 방식과 매우 유사해보인다. 버스터 키튼은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스턴트를 절묘한 타이밍에 몸소 선보이고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코미디를 만들었다. 자신의 연약한 신사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더 우스꽝스럽고 처절해보이게 만들었으며 관객의 동정심을 자아냈다. 이것이 버스터 키튼이 영화적으로 이루어낸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해롤드 로이드의 <마침내 안전!>이나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 걸작들도 대개 비슷한 서사적 구축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버스터 키튼이 유독 특별한 점은 그의 얼굴이다. 그는 절대로 웃거나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언제나 무표정, 그 유명한 '스톤 페이스'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무엇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감정들이 담긴다. 그 드라마틱한 감정들(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서스펜스)이 드러나는 데에는 그의 액션이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액션과 드라마의 연동, 그것이 버스터 키튼 작품의 순수성이자 마술이다.

 

 2.

<존 윅 - 리로드>는 첫 쇼트에 그러한 액션의 시초격 거장을 본받으려 한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웬 건물의 벽에 키튼의 <셜록 주니어>가 뜬금없이 상영되고 있다. 영상 속의 키튼은 오토바이를 타고 기예에 가까운 아날로그 액션을 몸소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가 툭 아래로 떨어지더니 도시의 골목에서 웬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 숏부터 다짜고짜 자동차 추격전이 펼쳐진다. 이는 마치 키튼의 영화에서 오토바이가 나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는 상징적인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는데 <존 윅 - 리로드>는 키튼을 계승하려는 노력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다. 액션영화에서 CG가 눈을 자극하고 현란한 편집과 클로즈업이 관객의 눈을 속이고 있는 현재 영화계 추세에서 벗어나 <존 윅>은 아날로그 액션을 고집한다. 몸을 직접 부딪히고, CG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오로지 둔탁한 타격음과 총소리, 충돌음이 꽉 채워진 액션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엇보다 드라마가 있다.

 

나는 <존 윅> 1편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존 윅 - 리로드>가 1편에서 3편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진단할 수 없다. 나는 오로지 독립적인 한 편의 영화로서 평가를 하게 됐는데 1편의 결말부가 2편의 전반부와 겹친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릭터에 대해서 정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이는 스토리가 단순하기 때문임만은 아니다. 이는 캐릭터에 성실하게 집중하는 구성이 호소력을 만든 효과다. 고독한 킬러 '존 윅'은 '제이슨 본'에 비하면 구닥다리다. 액션도 느리고 빠르게 적을 제압하지도 못하며 압도적으로 강하지도 않다. 적과 주먹을 나눌 때면 표정에는 늘 피곤함이 묻어나오고 숨을 헐떡인다. 그리고 그를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만으로도 킬러의 고됨과 고독함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그 자체로 이미지다. 어떤 킬러 영화에도 보기 힘든 인간미가 묻어나온다. 마치 <레옹>처럼 말이다. 그로 인해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도 다채로워 보이는데 어떤 위기가 닥쳐도, 계속 주변에서 분노를 부추겨도 일관되는 그의 무표정에는 냉철함과 동시에 은퇴를 위한, 삶을 위한 절박함이 꽉 채워진다. 그의 사연을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존의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그의 액션을 성실하게 담는 카메라만으로도 깊은 감정을 매끄럽고도 다채롭게 표현해낸다.

 

존을 포위하고 압박해오는 건 시스템이다. 그는 홀로 시스템에 맞선다. 그렇지만 그는 '제이슨 본'이 아니다. 존이 혼자 거기에 맞서기에는 너무 버겁다. 센트럴파크에서 주변 사람들이 멈추라는 한마디에 모두 멈추는 쇼트는 그렇기에 공포스럽다.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은퇴를 꿈꾸는 고독한 킬러는 무력하기 그지 없다. 그 무력감이 작품의 주된 정서가 된다. 존이 수배되고 난 후 현상금을 노린 숨은 킬러들이 그를 불시에 습격하고 존은 일일히 맞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격한 액션이 교차편집으로 끈질기게 진행되고 지하철에서의 팽팽한 1대 1 격투가 마무리되고 나면 그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걸어다닌다. 여기서 영화는 그가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임을 강조한다. '싸웠으면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등장한 킬러들 때문에 그는 구석에 쪼그리고 누워서 포를 덮고 나서야 겨우 쉴 수 있게 된다. 굳이 이런 추한 모습까지 영화가 성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생존의 문제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살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러한 무력감의 정서를 안고 간 아날로그 액션은 훨씬 유동적이고 탄력적이다. 액션과 캐릭터에 집중한 구성이 꽤 알찬 결과를 낳는다. 주먹이 맞서는 격투와 총격전의 액션을 단단히 밑받침하는 사유가 존재하게 됨으로서 액션은 그러한 사유를 부각시켜 드라마틱한 정서에 힘을 싣는다. 007이나 제이슨 본, <테이큰>의 리암 니슨 같은 다른 액션 영화의 캐릭터들보다 주인공의 살상 능력을 비교적 절감시킨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주인공 버프로 일방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매 대결마다 생사를 오갈 뻔 하는 그의 액션은 어떠한 액션영화보다 극적이고 스타일리시하다.

 

3.

요즘 액션 영화는 액션의 비주얼에 힘을 싣느라 드라마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다수다. 액션을 받쳐주는 사유가 입체적으로 구현되지 않으니 액션은 형식적으로 나열되고 그런 액션은 금방 피로해진다. 최근 <레이드> 시리즈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상기시킨 것들 중 하나는 드라마가 액션을 얼마나 팽팽나게 이끌 수 있는지다. <존 윅 - 리로드>는 그러한 단순한 공식을 활용함으로서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완성한다. <아바타> 이후로 CG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존은 아날로그를 본받으려 하는 남자다. 그는 '제이슨 본'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적과 실제로 몸을 부딪히는 것들의 파괴력을 안다. 물론 파괴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지만, 그렇기에 훨씬 고독하다. <존 윅 - 리로드>는 그 고독도 액션과 어떻게 영화적으로 조화될 수 있는지를 다시 보여준다. 이는 현재 액션영화들이 본받아야할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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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5 로그인후  
잘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안목에 언제나 감탄합니다
28 율Elsa  
감사합니다. 이번 작품은 올해 최고의 작품 TOP 10에 들만한 오락영화였습니다.
16 컷과송  
1번글 세번째 문단 둘째줄에 '활극성응' 오타입니다. 같은 문장 세번째 줄에서 배우 '해롤드 로이드'를 '해롤드 크롤크'로 표기하신 특별한 이유도 궁금하네요. 2번글 첫 문단은 본편에 대한 기존의 평과 대동소이하지만,  세번째 문단에서 시스템과 생존의 문재에 대한 통찰은 신선합니다. 대중 장르물을 회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면하는 자세 또한 부럽습니다. 오랫만의 장문 환영합니다.
28 율Elsa  
검수를 못 해서 생긴 오타였습니다...ㅜ 확인해보니 오타가 꽤 많았네요. 읽으시는데 불편하셨던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진중한 지적 감사합니다.
2 j더락  
네 xx 에서 어떤분의 평가글을 보니까 무뇌들이나 좋아할만한 쓰레기 영화이라며 최악이라고 하더군요.. 그 글을 읽으면서 느낀건 자신이 재미없게 봤다고 재미있게 본사람들 싸잡아서 무뇌라고 평가하는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평론가이시길래 그런식으로 조롱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더군요...
1 J3sus2K  
존 윅 정말 좋아하는데 전작보다 못하다는 느낌 너무 무쌍찍는건 별로... 아무리 업계의 전설이라지만 사람 좀 죽여봤을 갱들이 너무 못 싸우던데 사격이건 격투건 방탄정장부터 좀 이상하다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