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Bifan 감상작+ 덩케르크 단평

영화감상평

2017 Bifan 감상작+ 덩케르크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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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21~23일까지 Bifan을 다녀왔습니다.

감상작들에 대해서짧은 감상평을 적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올해 Bifan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미카일 레드 감독의 <버드샷>입니다.

주목받을만한 스토리텔링과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연출력이 일품이었네요.

그외의 작품은 <로우>를 언급하고 싶은데 독창적인 조합으로 관객을 충격에 몰아넣는 심리묘사가 머리를 강하게 후려치는 것 같은 경험을 안겨줍니다. 

 

 

개봉예정작은 <제인 도><제일브레이크><로우><공범자들>이 있습니다.

 

 

1. 쿠소(Kuso) - 스티븐 엘리슨(미국)

평점 ☆

지저분하고 고약하고 해괴하기만한 컬트.


 <쿠소>는 LA에 지진이 일어난 이후 TV로 통해 방영되는 영상들이라는 설정을 이용하여 4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실험 영화이다. 재난 이후로 세기말적인 감성을 풍기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고약한 취향이다. 제목도 일본어로 쿠소: 똥이라는 의미를 지닌 대로 영화에서 똥은 이 영화의 대표격이다.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더럽고 고약하고 해괴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네 에피소드 안에 꽉꽉 담겨있는데 스티븐 엘리슨 감독의 탈일탈적 취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가 내보이는 그 취향이 거북스럽기만 하다는 것이 문제다. 섹스 코미디, 화장실 코미디를 차용한 것도 모자라서 촉수물, 괴수물을 조합시킨 유머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에피소드 사이에 삽입되는 애니메이션 기법과 CG 영상들은 공포스럽기보다는 낯설고 이상하다. 그리고 그 상상의 에피소드에서 결말을 매듭짓지 않는 구성은 불친절하고 공허한 기분만 안긴다. 여타 다른 미국식 코미디처럼 왁자지껄하게 취향을 관객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금기를 손쉽게 내딛는 이 영화에 대해서는 개인의 취향에 대해서 인내를 시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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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버드샷(Birdshot, 필리핀) - 미카일 레드

평점 ★★★★

필리핀 ver. <시카리오>. 필리핀의 드니 빌뇌브, 미카일 레드.


작은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파동과 걷잡을 수 없게 커지는 비극을 느린 호흡으로 건조하게, 그리고 목가적으로 매우 날카롭게 포착한다.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테크닉이 탁월하다. 세상을 피해 사는 아버지와 그 밑에서 자신을 보호받는 방법을 배우는 소녀 마야, 그리고 경찰 신참 도밍고의 수사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는데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부정부패와 비리로 물고 거기에 하층민이 순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권력층의 폭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버드샷은 일종의 우화다. 영화에서 전혀 묘사되지 않는 권력층은 일종의 베일에 싸인 존재이고 포식자(독수리)다. 영화에서 경찰청장이 독수리가 국가의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옆에서 물소(서민을 상징)가 국가의 상징이라고 정정한다. 하지만 그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듯 미카일 레드 감독은 권력층과 서민층의 경계를 나타내고 현 필리핀의 사회문제를 정면 응시한다. 비극 속에서도 인간 간의 윤리를 잃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범죄 세계의 조감도가 펼쳐지는 순간 다시 한번 더 좌절하고 만다. 마치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가 떠오르기도 한다. 스산한 자연풍광을 비추는 영상미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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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악녀(한국) - 정병길

평점 ★★☆

쌍칼 액션만 남는 <니키타>


초반부 1시간을 보면 많은 영화가 연상된다. 1인칭 시점으로 액션을 보여주는 것에선 <하드코어 헨리>가, 그리고 조직원들과 싸우는 기다란 복도는 마치 <올드보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면 설정 측면에서 <니키타>가 자연스럽게 오마주된다. 그 외에도 액션에 있어서는 많은 작품에 오마주를 바치고 있는 <악녀>는 액션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역동성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보여주고자 했던 캐릭터의 드라마는 평이하게 그려진다. 한국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낯선 면을 보여주었지만 결국엔 쌍칼 액션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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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인 도(The Autopsy of Jane Doe, 영국) - 안드레 외브레달

평점 ★★★

공포영화에서 무엇이 공포스러워야 하는지 안다.


저예산 공포영화 중에서 제대로 된 공포 영화를 찾기란 성공률이 20%정도다. 의미도 없는 깜짝 쇼와 설득력 없는 전개, 클리셰적인 반전이 되려 공포를 갉아먹는 작품이 얼마나 많던가. 관객이 무엇으로 공포를 끌어내고 이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도 못하는 졸작들이다. 하지만 <제인 도>는 드물게 공포의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는 공포 영화다. 매우 단순한 상식이지만 거기에서 오는 효과는 크다. 공간이 한정적이고 인물 수도 적어서 저예산의 장점인 단순함을 십분 활용된다. 물론 <제인 도>도 여타 저예산 공포와 같이 작위적인 면이 있고 지나치게 설명적이어서 미스테리한 효과를 절감시킨다. 캐릭터들의 드라마도 평평하다. 하지만 공포를 만드는 테크닉에 있어서는 탁월한 리듬감을 보인다. 이미지도 자극적이고 말초적으로 관객을 자극하지 않는다. 되려 카메라도 공포의 대상에 집중하고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제인 도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눈을 맞추는 쇼트는 이 영화에 가장 무서운 쇼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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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일브레이크(Jailbreak) - 지미 헨더슨

평점 ★★☆

현란함과 능청스러움에 부서지는 캐릭터들.


지미 헨더슨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캄보디아 영화계를 잠깐 언급했다. 이런 류의 영화는 캄보디아에서는 처음이라고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코미디물이 주로 흥행하며 액션영화는 <제일브레이크>가 처음이라고. 동남아 액션 장르는 돋보적이다. <옹박>이나 <레이드> 같은 걸작들은 느와르적 분위기를 지역적 특색 있게 담아내고도 각 나라 고유의 전통 무술로 수준급의 액션을 시연했다. <제일브레이크>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제일브레이크>에서는 캄보디아 무술 보카토가 시연되는데 영화는 실제 격투를 방불케 하는 역동성과 타격감을 선보인다. 감독의 야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이라는 설정도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심각하지 않게 능청스러운 유머도 재치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캐릭터들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불필요한 러브라인, 캐릭터들 사이의 갈등과 감정 등은 설명적으로만 나열되고 액션 장면의 주된 배치에 있어서 캐릭터들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 때문에 쉽사리 긴장감이 고조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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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8/52(미국) - 알렉상드르 O. 필립

평점 ★★★☆

히치콕이라는 매혹적인 수수께끼의 감각과재치, 그리고 세계를 보려는 시도.


제목의 의미는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가장 유명하고 충격적인 장면, '욕실 살해 장면'이 78초의 분량으로 52테이크로 촬영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제목이라고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전 세계 모든 영화감독들의 우상이며, 평론가와 관객들에게는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다. <78/52>는 겉으로는 <싸이코>의 욕실 살해 장면을 다루지만 그건 히치콕의 작품 세계로 접근하기 위한 일종의 통로다. 미시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고 다양한 자료를 들고 와서 그 한 장면, 한 컷에 녹아들어 있는 촬영 과정을 이야기하고 가치와 의미를 분석하는데, <히치콕 트뤼포>가 히치콕 세계의 조감도를 내려다보는 형식이었다면 <78/52>는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전체를 아우르는 형식이다. 구성 자체는 평이하지만 한 장면의 가치를 들여다보려는 시도, 그것만으로도 시네필에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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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로우(Raw, 프랑스, 벨기에) - 줄리아 듀코나우

평점 ★★★☆

살벌하게 물어뜯고 기괴하게 씹어먹는 카니발리즘 성장담.


 <로우>는 채식주의자 소녀가 자신의 숨겨진 식인 본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시놉시스만 들으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작은 사건이 만들어낸 파동과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소녀의 심리를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야만적인 본능이 드러나는 과정을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보여준다.
<로우>는 섹슈얼리즘과 카니발리즘에다가 소녀의 성장담을 조합시킨 영화다. 이질적으로 보여질 수 있을 법한 두 요소를 공포영화의 화법을 빌려와서 스크린에 합쳐놓는다. 극에 치달아가는 소녀의 야만성은 관객의 정신을 폐쇄적으로 몰아가 헤어나올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준다. 그 동안 억압되어 왔던 소녀의 본능이 점차 해방됨에 따라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개인이 욕망을 스스로 억압할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간 내면의 본능적인 야만성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을 극단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작위적인 면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살벌한 에너지는 독창적이고 기괴한 공포영화임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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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공범자들(한국) - 최승호

평점 ★★★☆

올해 가장 웃기는 블랙코미디. 기록한다(Document)는 것의 인간적인 힘!


권력이 지배하는 공영방송에서 다시 민주적인 언론권을 쟁취하기 위한 언론인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이자, <자백>에 이은 최승호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다. 그는 여전히 권력층의 관계자들을 쫓아다니고 인터뷰하려한다. 그렇지만 내내 저지당한다. 온갖 이유를 대면서 변명하는 권력층의 언행은 그 자체로말로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공범자들>은 MB 정권 이후 현재까지 공영방송에 가해지고 있는 권력층의 억압과 행태를 당시 자료영상과 해직된 방송국 직원과 기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서 생생하게 기록한다. 언론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권력에 맞서싸워가는 현 시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최승호 감독은 결국 휴머니즘이라는 고귀한 주제까지 다다른다.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다큐멘터리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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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10. 덩케르크(Dunkirk, 미국) - 크리스토퍼 놀란

평점 ★★★★☆

플롯만으로 높게 쌓아올린 서스펜스과 마술처럼 취하는 생경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플롯을 활용하는 능력은 매 작품마다 사용되어 왔고 최대 장점이었다. 교차편집을 넘어서 시공간을 초월하기까지 하는 플롯은 <덩케르크>에서 큰 빛을 발한다. 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에피소드마다 진행 중인 시간은 다 다르다. 잔교는 일주일, 바다는 하루, 하늘은 1시간이다. 영화에서는 이 세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미 그때부터 영화는 선형적인 시간대로 배치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이 비선형적인 플롯 위에서 영화는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일단 개별적 사건으로 긴장감을 쌓은 다음에 전체를 엮는 방식인데 비선형적인 시간선이 개입하여 한 장면이 다각도로 묘사하기 시작하면 지적 쾌감과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오롯히 플롯만으로 단단히 쌓아올린 서스펜스와 그로 인해 마술 같이 취하는 전쟁의 생경감은 놀란 감독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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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S 컷과송  
적어두고 있습니다. <로우>, <버드샷>.....<덩케르크>에 대한 단평도 잘 읽었습니다.
14 스눞  
깔끔한 단평들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
10 사라만두  
좋습니다!
1 zema  
대단하시네요~ 영화를 좀더 열심히 봐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