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무뚝뚝함과 무덤함 속의 아름다움

영화감상평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무뚝뚝함과 무덤함 속의 아름다움

13 박용화 2 1617 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한참 일본 멜로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태양의 노래',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천사의 사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일본에서 만든 로맨스 영화라 하면 그냥 다운부터 받았다. 그날도 한편의 일본 멜로 영화를 일과처럼 끝낸 후 기숙사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데 마침 친구 시항이가 있었다. 나는 또 신이 나서 '크으 멜로 하면 일본이지' 등 한참을 재잘거리는데, 시항이가 나지막히 물었다.

 

"용화. 혹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 봤나?"

 

"아니, 안 봤는데."

 

"한번 봐라."

 

"그래."

 

 본다고 말은 했지만 썩 내키진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제목부터 구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이라니! 도대체 뭐에 관한 내용인지, 감독은 뭘 말하고 싶은건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이후에도 한참을 다른 영화를 뒤적거리다, 더이상 볼 게 없을 때쯤 갑자기 조제 생각이 났다. 그렇게 처음 조제를 만난 날, 조제는 곧바로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나머지 일본 영화들은 내 '영화 모음집'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조제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림잡아 지금까지 5번 정도는 본 것 같다. 하지만 매번 만날 때 마다 새롭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가르침을 준다. 그런 조제가 뜬금없이 재개봉을 했단다. 나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또 글을 쓰기로 했다. 

 

[대략적인 줄거리]


 를 쓰려고 했는데, 나의 허접한 글솜씨로 행여나 영화의 애잔함을 더럽히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딱 세 문장만 쓴다. 남자 주인공 츠네오는 정말 우연히 조제를 만나게 된다. 조제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고, 괴팍한 할머니와 단둘이 폐가 비스무리한 집에서 지낸다. 츠네오는 알면 알수록 특이한 존재인 조제에 대해 동정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조제는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왔다고 했다. 아무런 빛도 비치지 않고, 이따금씩 변화하는 해류에 잠시 몸을 뒤척이는 게 일상의 전부인, 세계의 가장 밑바닥. 하지만 츠네오를 만난 뒤로 조제는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생각이 없단다.

 

 조제에게 사랑은 변화다. 단순히 해야할 일 몇 가지('일어나면 연락을 할 사람이 생긴 것', '주말에 술에 취하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생긴 것' 등)가 늘어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다. 아침을 맞는 햇살에서부터 문 밖을 나설 때 마시는 공기까지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변화, 새로운 세계로의 이동이다.

 

 그런 변화를 겪고도 조제는 무던하다. 자신의 복잡한 감정에 고뇌하는 쪽은 오히려 츠네오 쪽이다. 조제는 평생 사랑이라곤 해본 적이 없고, 할머니가 길에서 주워다 준 소설책 따위를 읽으며 살았다. 심지어 그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이불처럼 뒤집어 쓰고 살아온 그 조제(조제의 원래 이름은 '쿠미코'이다.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이다.)가, 난봉꾼 츠네오의 마음을 뒤흔든다. 조제는 그런 츠네오를 두고 이렇게 말할 뿐이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 가끔씩 어떤 감정들은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아주 일부분만 아는 것에도 잘만 말꼬리를 달아 그럴싸하게 꾸며내곤 하는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조제는 그런 영화다. 내가 맨 처음 조제를 만났던 그때처럼, 그냥 한번 봐라'는 말 말고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영화 얘기만 하면 조제 생각이 나서, 일년에도 수십번 씩 추천을 해대곤 한다. 

 

 역시 그냥 한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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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0 사라만두  
`동양적인` 감성의 약진은 확실히 홍콩의 그것과는 다른 맛으로 시작했죠 일본에서..
13 박용화  
맞습니다. 대표적으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서구중심의 영화사에도 일찍이 굵직한 획을 그었죠. 우리나라도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등이 독특한 색깔로 서서히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고요.

개인적으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나 '메종 드 히미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좋은 얼본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