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영화감상평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28 율Elsa 0 3074 0

 

홍상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출렁이는 순간들.

평점 ★★★★☆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서 작품세계를 탐구하거나 고뇌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홍상수의 세계를 거닐다보면 영화의 구조적인 미로에 갇힌 듯한 인상을 받는다.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되짚어봐도 알 수 없고 결말에 다다라도 끝이 어디인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그것이 정취라면 그런 것일까. 관객은 혼란 속의 풍경에 자신을 오롯히 맡길 수 밖에 없다.

 

홍상수의 클로즈업은 리얼리즘을 부각하는 장치가 아닌, 되려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갑자기 클로즈 업되거나 클로즈 아웃되는 쇼트, 왜 비추는 것인지 모를 피사체의 모호한 쇼트는 '이것은 영화다!'라고 끊임없이 선언한다. 반면에 현실적인 디테일 묘사와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보여지는 캐릭터와 대사는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다!'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영화 안에 공존하고 있는 이 두 개의 선언은 중첩되면서 타협한다. 홍상수의 작품세계는 실제에 접근하려하는 본질을 추구하는 세계다. 보이는 것은 실제이며 있는 그대로이지만 영화는 실제를 여러 겹 겹쳐보이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를 탐구하고 그 결과의 본질로 구성되어있는 세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 영희(김민희)가 강릉 해변에 누워있는 장면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발생시킨다. 꿈과 현실이 번갈아보여지면서 두 세계는 중첩되고 간극을 발생된다. 하지만 이번에만큼은 구조적 탐구 목적의 플롯이 아닌 경계로 인해 발생하는 서정적인 정서의 구현에 목적이 있어보인다. 마치 <라라랜드>의 마지막 시퀀스처럼 말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기존의 홍상수 작품 중에서 직관적인 편에 속한다. 모든 장면은 최대한 감정에 솔직하려하고 있고 배우들은 그것만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추상적인 감정 그대로, 그 감정이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려 하는 것 같은 카메라의 의도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의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여름에 터진 스캔들이 작품 외부에서 내부로 강하게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해석은 이러한 바탕 때문에 김민희의 처지와 영화 속 배역과의 동일성이 계속 주목받고 있다. 그런 시선이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다른 해석의 시선을 일찍이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다른 홍상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실제에 대한 해석이 무의미할 수도 있는만큼 본질에 대한 해석의 길이 무한히 열려있다.

 

그 동안 홍상수 세계에서는 정해진 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정해진 답이 있다하더라도 그 답은 보여지지 않았다. 그 답을 유추하고 서술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기존의 홍상수와는 다른 면모가 일정 부분 드러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징적 캐릭터의 등장이다. 박홍열 촬영감독이 직접 연기한 '검은 옷 남자'는 기존 홍상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캐릭터다. 강릉 리조트에서 베란다 창문을 열정적으로 닦고 있는데도 다른 인물들은 이 남자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항상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영희가 프레임 내에 있을 때만 카메라에 포착되는 유령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영희와의 밀접성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데, 1부에서 영희가 강변에서 강을 향해 걸어가다가 카메라가 팬하고 원래 프레임으로 되돌아온 사이에 검은 온 남자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고독감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이, 카메라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존재로 시각화되어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 카메라는 유독 인물(영희)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카메라는 영희의 내면을 시각화해서까지 감정을 호소하려 애쓴다. 위에서 홍상수 작품 중에서 직관적인 편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정해진 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감정의 영화이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앓는 캐릭터 영희의 영화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선 그 캐릭터의 연기하며 호소력을 내보이고 마는 김민희의 영화다. 감독의 역할보다는 배우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형식이지만 홍상수 감독은 더 나아가 정서를 지긋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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