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분기의 영화들 10편.

영화감상평

17년 1분기의 영화들 10편.

28 율Elsa 1 2176 1

 

1위. 문라이트(Moonlight, 2016) - 배리 젠킨스 감독

줄거리는 단순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줄거리로 요약되기에는 묘하다. 이미지와 정서로 한 순간순간, 모든 장면의 미적 감각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영화'다운 걸작. 몇몇 이미지들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 강하게 남아 따스한 위로의 영원을 선사한다.

 

2위. 컨택트.(Arrival, 2016) - 드니 빌뇌브.

스릴러 장르의 관습을 따르는가 싶더니 중반부터 그것을 배반하고 관객의 인식과 시선 그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중간까지는 복합적인 플롯과 언어학적인 이론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과장되지 않고 차분한 음악이 집중을 더해준다. 운명론적인 전개를 비관적으로 끝내지 않게 만드는, 현재의 중요성에 대한 결말이 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마음을 뒤흔든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긴장감 연출도 훌륭하다.

 

3위.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 홍상수.

스캔들 사건 때문에 불륜설에 대한 해석이 가장 보편타당한 것으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것만 떼놓고 본다면 홍상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감정이 출렁이는 순간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독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 

 

4위.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 케네스 로너건.

인간의 트라우마와 상처의 치유를 다루는 영화는 많다. 그렇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 영화들에 대해서 반문하는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적 상처와 트라우마는 과연 그렇게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영화는 배드엔딩으로 끝나고 위로의 말도 쉽사리 던지지 못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깊은 울림을 안기는 것은 트라우마와 고난이 닥쳐도 삶을 위태롭게 살아내는 처절함의 풍경 때문이다. 

 

거기에는 영화의 형식미가 가장 큰 공을 차지한다. '맨체스터'라는 시골의 겨울 풍경을 통해 주인공 '리'의 내면적 풍경을 암시하며,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플래시백의 활용은 내면적 풍경을 더욱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장치다. 그렇게 '리'에게 이입되어 가는 영화는 관객 스스로와도 이입되는 체험을 안겨준다. 

 

5위. 로건(Logan, 2017) - 제임스 맨골드.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그것보다 이 영화가 미학적으로 성취해낸 것은,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감정적 울림까지 선사한다는 것이다. 서부 영화의 영웅 구조를 답습하지만 현대 문제를 아우르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영웅의 고뇌와 고독, 늙어감과 애절함이 슈퍼히어로 장르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다. 과감하게 19금 노선을 탄 것도 전시의 목적이 아니라 울버린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처절하고 참혹한 곳에서 싸우고 있는가에 대한 암시로 보인다. 영웅이 싸우게 될 수록 즐기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애처롭게 보게 되는 광경은 장르 영화의 독자적인 미학적 극치를 보여준다.

 

6위. 토니 에드만(Toni Erdmann, 2016) - 마렌 아데

올해 최고의 걸작이라고 이미 여러 군데에서 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듣고 있는 작품. 68세대 리버럴 아버지와 신자유주의 딸의 해프닝을 가족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나가는데 있어 상당히 큰 울림을 선사한다. 마렌 아데 감독은 현 독일의 자화상을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 받을 만한 독일 감독이다.

 

7위. 분노(怒り, 2016) - 이상일.

미스터리는 강력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영화가 끝나면 남는 것은 복합적인 감정이다. 분노와 슬픔, 행복이란 감정이 접점이 없는 세 가지 에피소드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산만한 형식을 교차편집과 사운드 몽타주로 탁월하게 연결한 점과 영화가 안겨주는 그 복합성이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안겨주는, 섬세하고 감정적인 스릴러다.

 

8위.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 - 신카이 마코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점이 집합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짜고짜 이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동진 평론가가 평한대로 "갈라지는 것들의 파괴력과 이어지는 것들의 치유력.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태반은 끝내 연결하려는 안간힘"의 작품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한국에선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 속의 상징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상기시킨다. 미래에서 과거의 상실을 되돌아보았을 때 "만약 미리 알았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면서 슬픔에 잠기면서도, 그 가정법을 인연이란 끈으로 결국엔 설득시키고야 만다. 그렇게 <너의 이름은.>은 현실에 대해서 '꿈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9위. 엘르.(Elle, 2016) - 폴 버호벤.

무슨 이야기인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배우의 연기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는 형식의 영화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훌륭한 연기를 해낸다. 부모 세대의 낙인에서 벗어나려고자 하는 딸의 혐오와 주변인들과의 성적 욕망의 에세이는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끝내 묘한 울림을 안긴다. 

 

10위. 23 아이덴티티.(Split, 2017) - M. 나이드 샤말란.

M. 나이트 샤말란의 작품은 이 작품을 포함하고서라도 4편 밖에 보지 못했다. <식스 센스><더 비지트>는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데 <언브레이커블>(이 영화와 연관성 가장 큰 영화이기도 하다)은 어릴 적에 보아서 스토리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많은 해석이 기존 샤말란 감독의 필모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딱히 그것은 외부의 얘기다.

 

<더 비지트>보다 샤말란의 서스펜스를 만드는 솜씨는 날카로워졌다. 교차 편집과 폐쇄감을 주는 공간의 미장센, 괴기스러운 사운드는 관객을 점차 옥죄어 온다. 게다가 제임스 맥어보이의 다중 인격 연기는 작품의 공포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반전이 서스펜스의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영화가 끝나면 서스펜스보다는 뜬금없는 반전만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전체적으로 걸작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마땅하였으나 에필로그가 초를 친 불우의 평작. 하지만 서스펜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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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S 컷과송  
아직 매인 몸이실텐데 영화는 많이 보셨군요...2분기에도 많이 접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