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Moonlight, 2016) - 이미지라는 시네마.

영화감상평

문라이트(Moonlight, 2016) - 이미지라는 시네마.

28 율Elsa 0 1979 1

스크린으로 써내려간 음악. 삶과 만나는 이미지 교향곡.

평점 ★★★★☆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던 작품이며 황당한 해프닝과 더불어 <라라랜드>를 밀어내고 작품상 트로피를 거머쥔 작품이다. 그래서 난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촬영된 영상들은 기가 막힌 영상미를 뽐내지만 스토리의 빈 여백을 정서의 리듬감과 이미지 만으로 태우려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보인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장단점이 분명해보였다. 나의 감상을 확신시켜주기라도 하는 듯 극장의 뒷좌석의 앉은 관객 서너명이 영화가 지루해죽겠다며 불평불만을 토해내기도 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난 이후로 몇몇 장면이 잔상이 강하게 남았다. 나에게 <문라이트>는 '지루한 영화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이끌리는 영화'류에 속해있었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이만 그 자리를 구술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예술성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 나의 머리 한 편에서 육감적으로 느껴졌다.

 

<문라이트>가 대중성과 거리가 먼 이유는 형식에서 오는 낯섬 때문일 것이다. 절제된 연기는 심리를 잘 드러내지 않아 관객의 추리를 요하는 데가 없지는 않으며, 정적인 연출은 스토리를 설명하기 보다는 함축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쓴다. 마치 테렌스 맬릭 감독의 작품에서 내레이션을 제거한 버전을 보는 듯하다. '함축'. 바로 거기에서 <문라이트>의 예술성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일반적인 서사의 형식의 스토리텔링과는 조금 다른, 사실적인 어체로 써내려간 시적인 감성이 내내 충만해있다.

 

<문라이트>는 한 편의 영상시 같은 느낌이 강하다. 뒷골목 흑인 소년이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담이지만 외적인 사건은 잘 보여지지 않는다. 겨우 보이는 거라곤 약에 빠져사는 어머니와 주인공 샤이론을 대하는 또래들의 차별과 폭력 뿐이다. 영화는 이 두 개의 굴곡 또는 시련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직조하려 애쓴다. 아예 외부의 시선을 제외하고 영화 전체의 흐름을 내면의 변화와 굴곡에 맡겨버리기도 한다.

 

<문라이트>는 그저 사실적인 기교로 성장의 고통에 동조하려는 작품은 아니다.  성장의 과정을 담아내는데 있어 느와르풍을 버리고 오히려 신비로운 환상으로 보이려 애쓴다. 본 작품의 이미지들이 잔상이 강하게 남고 여운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세밀한 감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시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라이트>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스토리의 여백을 이미지의 감성으로 가득 채움과 동시에 문학적인 운율마저 구현한다. 

 

 

본 작품에서 카메라는 마치 악보 위에 쓰여진 음표 같은 존재다. 한 컷이 촬영될 때마다 자리잡은 음표는 전체가 모여 하나의 곡을 완성한다. <문라이트>는 문학적인 동시에 음악적이기도 한데 3부로 구성된 플롯은 교향곡의 형식을 연상케 한다. <문라이트>의 플롯과 형식은 점진적으로 구성되어 가는 '음악'이다.

 

<문라이트>에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편집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에서부터 만들어진다. 구성된 컷들은 인물에 대한 클로즈업과 전경을 같이 담아낸 풀쇼트로 나눌 수 있는데 클로즈업 쇼트는 자신들의 기본적인 역할을 성실히 이행한다. 샤이론의 얼굴을 끈질기게 포착하는 카메라는 그 자체로서 내면의 풍경을 그린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혼란스러운 심리를 표정만으로 표현해낸 3명의 배우(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의 연기도 개별적으로 훌륭하지만 카메라와의 합은 시너지를 내어 극을 더욱 서정적으로 이끈다.

 

한 인물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고 인물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데도, 이상한 것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인물 뒤에 펼쳐진 풍경들이 기억된다는 것이다. 본 영화에서 공간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도가 높다. 보통 공간은 인물이 놓여진 상황과 처지를 대변하는 객관적 상관물 같은 것으로 활용되지만 <문라이트>에선 환상을 구현하기 위한 방도로 주로 사용된다.

 

한 영화가 사회의 소수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포착하거나 묘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에 감독이 개입하려할 때에는 다른 문제가 된다. 현실에 대해서 판타지의 시약을 넣어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위로가 되고자 할 때 감독은 극 중에 조력자 등으로 나타나 인물에게 간섭한다. <문라이트>에서는 탐미적인 이미지가 간접적으로 간섭한다. 한 장면을 예로 들어, 1부에서 후안이 리틀(샤이론)에게 바다 위에 떠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수면의 높이에서 위로 살짝 올려 찍으면서 푸른 하늘이 배경을 꽉 매우고 있다. 인물 뒤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은 마치 인물들에게 깊은 연대와 교감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 세계에선 현실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인물의 캐릭터가 만들어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미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크고 작은 연출을 통해서 <문라이트>는 하나의 '이미지 교향곡'을 이룬다. 그 이미지들이 삶과 살을 맞대는 그 진경은 어떤 시네마적인 미학을 선사한다.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그 영화적인 힘을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서사에 의해서 숱하게 이미지가 희생되어버리는 현 영화계의 추세와 달리 <문라이트>는 이미지 안에 서사를 담아내보인다는 인상이다. 빛과 색이 있고, 인물과 소통하려는 미장센은 서정적인 동시에 운율적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영화적이다. <문라이트>가 만들어낸 마법의 이름은 의미 그대로의 시네마인 것 같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