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스 플랜 : 그레타 거윅 판 '스쿠르볼 초현실주의' 코미디

영화감상평

매기스 플랜 : 그레타 거윅 판 '스쿠르볼 초현실주의'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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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킹 님 덕분에 너무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

 

(쓰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서 오랜만에 넘버링 리뷰)


1. <매기스 플랜>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 "삶은 부조리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 "내 맘대로 되는 건 인생이 아니다." 정도? 

1-1. '스쿠르볼 초현실주의'는 매기가 존의 소설을 지칭하는 표현이자 스스로 명명한 이 영화의 장르적 명칭. 

2.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레퍼런스들 : 우디 알렌,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시리어스 맨, 엠마, 기타 등등

3. 영향권 아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장 두 가지 : 
    1) 우디 알렌의 수다와 시니컬 한 유머, 그리고 뒤죽박죽(이어도 어쨌든) 인생은 흘러간다는 운명론적 주제 의식.
    2) 인생은 부조리 그 자체, 라는 <시리어스 맨>의 주제.

4. 영화 곳곳에 우디 알렌의 향기가 난다. 신경질적이 아닌 좀 더 느긋하고 엉뚱한 우디 알렌이랄까? 뉴욕이라는 배경, 뉴요커라는 특질, 얽히고 설키는 인물 간 애증의 쌍곡선, 스쿠르볼 코미디 장르를 세련되게 변형한 속사포 대사들, 위선적인 인물들의 거짓말 게임, 기타 등등. 레베카 밀러 감독과 그레타 거윅은 우디의 분열된 페르소나 같다.

4-1. 영화 구석구석 큭- 하고 터지는 유머가 많았는데 그중 최고는 이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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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를 유혹하는 존이 그녀의 잠옷 단추 하나하나를 따 올라가는 장면. 저 많은 단추를 언제 다 따려고....바로 그전 장면, 기증받은 정자를 스스로 수정하려다 벨이 울리자 기괴한 자세로 기어가던 장면 역시. ㅋㅋㅋ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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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디 알렌의 세계와 갈리며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지점 : 시니컬 한 시선, 그러나 좀 더 따뜻하고 차갑지 않은 시선과 유머. 끝없이 분석하고 분열하는 우디의 세계와 달리 <매기스 플랜>의 세계는 파열된 현실을 희한하게 기워 봉합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봉합된 현실은 누더기지만 퀼트 조각보처럼 결국 아름답다. 봉합의 주체가 매기라는 여성이어서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닐까 짐작. 결국, 남성과 여성의 관점 차이가 이 영화의 개성이자 생명력.

6. 매기는 현대판 엠마(제인 오스틴 소설 속 주인공). 엠마가 이성 간 짝을 지어주려고 노력했던 중매쟁이라면, 매기는 타인의 삶과 심지어 전 우주의 섭리를 중매하려는 간섭쟁이. 자기 남편과 전 부인을 다시 맺어주려 노력하는 게 바로 '매기의 계획'.

7. <매기스 플랜>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그레타 거윅이라는 배우의 매력. 에단 호크와 줄리안 무어도 대단했지만 두 인물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그레타 거윅의 조화로운 중심점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이런 캐릭터를 이렇게 능청스럽고 사랑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그레타 거윅뿐. 영화 속 조젯(줄리안 무어)의 대사처럼,  "당신은 재밌는 사람이에요. 뭔가 순수한 면을 간직하고 있고, 바보 같은 면도 있고, 어딘가 천진난만한 성격인데 본인이 자각을 못해요. 도리가 없네요. 마음에 들"어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배우. 조젯은 매기에게 남편 존(에단 호크)을 뺏긴 상태. 

7-1. 그레타 거윅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은 장면은 정자 기증하러 온 남자(가이)가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 놓고 이상한 춤을 추던 순간. 

7-2. 그레타 거윅의 놀라운 이력들 : <밤과 주말>(2008) 주연, 제작, 연출, 각본. <프란시스 하>(2012) 주연, 각본.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주연, 각본. 

7-3. 댓글 제보를 받았는데 레베카 밀러 감독이 아서 밀러의 딸이라네요!!!?? 오! *_*

8. 불륜으로 뺏은 남편 존(에단 호크)과의 결혼 생활이 그의 이기심과 전처를 못 잊는 위선 때문에 위기를 맞자 매기는 남편의 전처(이자 숙적인) 조젯(줄리안 무어)을 찾아가 둘이 다시 재결합하라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이에 조젯은 우연을 가장한 재결합 시나리오를 기획, 연출한다.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은 듯 보였던 매기는 직장 P.T. 중 말실수를 한다. ('지식 기반'을 '지식 기혼'으로) 그 짧은 장면 안에 매기의 흔들리는 마음 상태, 남편과 전 부인 사이의 일에 정신이 팔려있음을 날카롭게 묘사해 보여주는 감독의 통찰과 연출력에 감탄. 

 

9. 매기는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처음 정자 기증을 받으려던 동창생 '가이 차일더스'를 스케이트장에서 마주하는 매기의 묘한 표정이 긴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엔딩.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것.  그 기묘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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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정자를 제공받기 전에 매기가 가이(정자 제공자)에게 묻는다. 왜 수학자가 되지 않았냐고. 매기가 가이를 정자 제공자로 선택한 것은 가이가 수학을 잘했기 때문.

매기 : 왜 수학자가 안 됐어? 
가이 : 수학이 아름다워서 좋아한 것뿐이야. 수학자가 될 생각은 없었어.
매기 : 그래? 수학이 아름다워? 
가이 : 누구든 수학의 옷깃만 만져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거야. 난 옷깃으로 충분했어. 좌절감을 감당할 수 없었거든. 
매기 : 무슨 뜻이야? 
가이 : 전체를 볼 방법이 없으니까 늘 전체의 일부만 어렴풋이 볼 뿐이지. 평생 진리의 조각만 찾아다니는 삶이잖아.

이 시퀀스는 영화 전체에서도 몹시 중요한 장면이다. 매기와 가이가 천생연분이란 걸 어렴풋이 흘리는 복선이면서 동시에 영화의 주제 :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우리네 삶, 을 짐짓 아닌 척 넌지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10. 우디 알렌 뺨치는 주옥같은 대사들 : 

    1) "고약한 여자 같다"는 "고약한 여자다"보다 훨씬 약한 말이야. "같다"는 언어적 콘돔이지. 

    2) 부모님은 일찍 결혼하셨고 아이도 없었어요. 그러다 이혼하셔서 아빠가 떠났어요. 근데 1년 후에 파티에서 마주쳤죠. 그러다....그날 밤을 같이 보냈대요. 그렇게 얼떨결에 임신이 된 거예요. 엄마는 태어날 운명이라 그렇게 된 거래요. (매기의 자기소개)

    3) 삐걱대는 바퀴엔 기름칠해주고 선인장엔 물 안 주는 거야? (자기를 신경 써 주지 않는 남편 존에게 매기가 하는 불평)

    4) (영화 중 가장 예뻤던, 매기와 딸 릴리의 대화)
         매기 : 엄만 비눗방울 속에서 살고 싶어 
         릴리 : 나도. 근데 내 비눗방울 있으면 좋겠어
         매기 : 그래, 하나씩 가지면 되지
         릴리 : 아빠도 비눗방울 있어?
         매기 : 아빠도 자기 비눗방울 속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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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술과 가슴에 대한 격언이 생각나네요, “하나는 적고 셋은 너무 많다” (매기 친구 토니가 술김에 말실수를 하고 뱉은 말)

     6) 매기 : 우리 딸, 엄마가 난장판을 만들어놨어.
          릴리 : 응가 했어?
          매기 : 응. 어떻게 청소할지 감이 안 와.
          릴리 : 왜 스펀지 안 썼어? 그냥 잊어버려.

     7) 나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요 (매기가 자기 때문에 엉망이 된 것을 자책하며)

     8) 당신 책이 안 풀리는 건 비유가 과하게 많아서야. 픽션으로 논지를 입증하고 있잖아. 책에서 꼭 필요한 건 경제학 이론이야. 내러티브와 이론의 결합이 당신의 특기잖아. 그러면 당신 책은 대성공할 거야. 예일대 출판부에서 내기만 하면 돼. 스크리브너 말고. (조젯이 존의 책에 대해 신랄하게 조언하는 말)

11. 릴리(매기의 딸)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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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49 iratemotor  
소소한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깨알 같은 대사들이 착착 감기더군요. 언어적 콘돔 푸하하~
거윅을 필두로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요.
릴리의 순진무구한 표정과 대사는 루즈함을 해소하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해주더군요. 개구리 똥통 시퀀스도 ㅋㅋ (아이 키워보세요. 4살까지는 키울 만합니다. ㅎㅎ)
노아 바움백도 우디 앨런 자리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레베카 밀러와의 그레타 거윅 쟁탈전이 치열해질 수도 있겠네요.^^
아, 릴리는 수학 잘하는 가이의... ㅎㅎ
곳곳에 소소한 재미들이 끊임없이 발산되는 유쾌한 영화였어요. (초반 횡단보도 거윅 팔짱 신, 가이의 피클 결혼선물 신 등)
알콩달콩 섬세한 작품의 여성 같은 섬세한 스눞 님의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14 스눞  
개구리 변기 시퀀스도 푸하하하핫-
4살까지는 키울 만 하군요. ㅋㅋㅋ

그러게요. 노아 바움백도 포스트 우디 앨런을 꿈 꾸고 있는 듯.
레베카 밀러와의 기 싸움이 볼만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관객 입장에선 즐거운. ㅎㅎ

네네, 릴리가 숫자를 워낙 잘 아는 걸로 봐서는...

이런 영화들 몹시 사랑스럽습니다.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흐뭇한 여운이 남고요.
다, 모터킹 님 덕분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