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 끝없이, 추한 여자를 짝사랑한다는 것

영화감상평

사일런스 : 끝없이, 추한 여자를 짝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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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스콜세지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음악이 없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뿐.

당신의 길고 긴 침묵.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말씀. 

일본이라는 늪은
베트남의 늪과 같다. 

그러고 보면 서구 열강은 
여러 번 동양의 늪에 빠졌던 셈. 

베르톨루치가 파란 눈으로 '마지막 황제'를 보았듯
스콜세지도 '일본이란 늪'을 서구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한다.
동양문화를 바라보는 서구인의 스테레오 타입 시선.

그러나 스콜세지답게 칼을 하나 숨기고 있다
그 칼이 무엇인지 마지막 장면을 보며 (각자) 확인하시라.



<지옥의 묵시록> 구조가 생각났다.

토착문화에 동화·흡수된 인물(커츠 대령ㅣ페레라 신부)의 발자취를
새 인물(윌라드 대위ㅣ로드리게스 신부)이 고뇌·갈등하며 따라가는 구조. 

무엇이 자아이고 무엇이 타자가 될지에 대한 치열한 투쟁. 



추녀를 짝사랑하는 것,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아내가 될 수 없다는 말.
재판관  이노우에는 기독교식 선교가 일본이란 체계 안에서 
꽃을 피우거나 열매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역설한다.

일본의 정신은, 일본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미인'이 아니다.
그들은 뿌리 없이 떠도는 영혼들, 키치치로처럼 배교를 밥 먹듯 하는 추한 영혼들이다. 
추녀를 짝사랑하는 일은 이루어질 수 없고,
아이(열매, 결실)를 낳지 못하는 여자(천주교)는 아내(일본의 짝)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일본의 본질을 지켜 나간다.
화혼양재. 


미개한 이들은 얼마든지 당신네 종교를 믿어도 좋아,
당신만 신을 부정하면 돼, 신부는 뿌리니까, 라는 심판관의 말은 진정 무섭다.

심판관은 믿음을 버리도록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를 집요하게 회유한다. 
회유의 칼날은 신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신부들 손에 맡김으로써 
"저들의 고통은 신이 아니라 자네만이 끝낼 수 있네."라는 말로 날을 세운다.
끊임없이 인간적 주체를 자각하게 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고문.

페레라 신부도 로드리게스 신부도 자기를 버리고 신에게 의탁할 수 없었다.
신의 긴 침묵 앞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자기' 선택으로 신자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 

배교를 통한 대속.
변절자라 이름 붙여진 십자가.


<미션>의 두 인물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와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생각이 났다.
성직자로서 죽어 간 가루프 신부(아담 드라이버)의 길과
신자들의 목숨을 구하고 변절자로 살아남은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 신부와 페레이라(리암 니슨) 신부의 길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뿐이다. 

시완 오추완이란 이름과, 오카다 사네몬이란 이름으로,
죽은 타자 이름으로 그의 아내, 아이와 함께 남은 삶을 살아 내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이들.
믿음을 버린 배교자라며 일본인에게마저 경멸 당하고 모욕과 조롱을 당해야 했던 그들.
그들 삶의 무게 역시 오직 신만이 알뿐이다. 

신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었다.
다만, 거대한 침묵 속에 잠겨 있을 뿐.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의 모습.

우리 모두는 키치치로처럼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고 다시 죄를 짓고 치욕스러워 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속죄의 의식을 치르며 삶을 영위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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