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라이더 : 뒤늦게 본 꽃의 서글픈 노래

영화감상평

싱글 라이더 : 뒤늦게 본 꽃의 서글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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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글을 읽지 마세요, 읽으시려면 읽고....)






(영화를 보실 분들은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가세요, 싫으시면 말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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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그 꽃>, 고은





영화는 첫머리를 여는 이 시의 세 구절을 97분으로 늘여 놓았다.

반전이 있다고 해서, 설마설마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빌고 또 빌면서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강재훈(이병헌)이 먹는 신경정신과 약이 두어 차례 강조될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휴대전화를 침대 맡에 두고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을 때는 설마...했다.
강아지 치치가 차에 치었는데 멀쩡하게 살아서 차체 바닥에서 기어 나왔을 때,
나는 이런 젠장...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잊고 지내던 아내와 아들을 찾아
호주 시드니로 날아간 재훈은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날부터 (약이든 밥이든) 먹지도, 자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는다.
먹고, 자고, 옷을 갈아입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크린 위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동안엔 그랬다. 

이쯤 되면, 그 반전이, 그 반전의 메커니즘이
충분히 보였다.

속이려고 작정한 마술이 상대에게 그 수를 들켰다면
그 마술은 실패한 마술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때론, 속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속임 동작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싱글라이더>의 방점은 '속이는 것'이 아니라
'속이는 것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에 찍은 것이라고,
속아서 얻게 되는 쾌감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속는 동안 혹은 속고 난 후 느끼게 되는 깨달음을 위해
기꺼이 97분을 투자해야 하고 그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았노라고,
나는 믿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싱글라이더>는 실패한 영화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것들은 감독과 관객 사이 하나의 약속이다.
자, 이제부터 허구의 이야기가 펼쳐질 겁니다, 이건 가짭니다, 하는 가이드라인.

그것은 일종의 게임이며 놀이이다.
암묵적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게임.  

무식하게 얘기하자면, 이주영 감독은 관객들을 속이는 트릭을 썼다. 
그 속임수는 나홍진의 속임수보다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속임 동작에 가깝다.

그러나 <곡성>이나 <식스 센스>가 속고-속이는 게임 자체의 쾌락에만 몰두했다면
<싱글 라이더>의 속임 동작은 주제를 드러내는 장치 중 하나였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이주영 감독은 그 속임수에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게다가 <식스 센스> 같은 단독범행이 아니라 <곡성>처럼 공범이 있다.

그러나 그 공범이 (<곡성>의 경우처럼) 스크린 안과 밖에 모두 있지는 않다.
적어도 이주영 감독은 정해진 게임의 룰 안에서, 극 중 서사라는 틀 안에서, 논리적이며 합법적인 속임수를 썼다.
(그 누구처럼 악의적으로 야바위 밑장 빼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궁여지책으로 관객을 속이기 위해 너무 많은 공범-강아지 치치, 동네 할머니, 크리스의 의식불명 아내, 하버 브리지의 노동자, 게다가 장염 걸린 어린 아들까지-을 부비트랩처럼 매설해 놓은 게 영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ㅎㅎ

가장 교묘한 속임수는 지나(안소희)란 이중스파이의 활약이었다.  
그녀는 극 중 유일하게 이승과 저승을 종주하는 캐릭터이며, 삶과 죽음의 교집합인 인물이다.
(사실은 하나 더 있다. 강아지 치치. 개라서 인물이라고는 못 하겠다. ㅎㅎ 그러나 치치와 지나는 서로 다르다. 치치는 오히려 재훈의 아들 진우에 더 가까운 캐릭터이다.)

그녀는 첫 두 장면-공항, 중국집-은 살아서 등장했지만(그래서 재훈을 못 본다),
나머지 장면에서는 육신 아닌 영혼으로 돌아다닌다(그래서 재훈을 본다).  


곡성과 식스센스의 경우
http://blog.naver.com/nicemonk/220711216543




이주영 감독은 이 교묘한 인물을 극의 서브플롯으로 전진 배치시킴으로써 
재훈의 죽음과 '영혼 여행'이라는 히든카드를 최대한 소매 속에 감출 수 있었다. 

영화 초반 배낭을 메고 공항에서 만난 지나는 살아있었지만
새벽에 중국집 앞 도로에서 만난 지나는 육신 없는 혼령이었다. 

극 후반으로 유예된 재훈의 죽음은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미스터리를 확장시킨다. 
이 속임수는 <싱글 라이더>를 지탱하는 몹시 중요한 극적 장치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의아했다. 
저 맥락 없는 인물이 왜 자꾸 석연찮게 그리고 우연하게 주인공과 엮이는 거지? 
뭐지, 저거? 서브플롯이 이렇게 약해서 뭣에 쓰나? 이래서야 어디 메인 플롯을 떠받치겠나?
그러기는커녕 이러다 중심 서사마저 말아먹는 거 아냐?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 만에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 안소희의 놀라운(응?) 연기력이
그 의구심에 기름을 부었다.  

원조 사기꾼 M. 나이트 샤말란의 속임수에서 파생된 이 장치는
이제는 너무나 많이, 자주, 너도나도 써먹는 바람에
소름 끼치는 반전의 충격은 사라진 지 오래고 상투만 남아 기계적으로 리바이벌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조의 기술과 맛을 따라잡기엔 조금 요령부득이었달까?

다시 무식하게 표현하자면,
<식스 센스>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앞엣 놈이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래!" 하고 천기를 누설해서 김이 팍 새고 망했다 싶은 것처럼,
하필 재수 없게 이 속임수의 작동 원리를 일찌감치 눈치챈 나는
긴장감과 호기심에 재미마저 반감된 채로 맥없는 1시간 30여 분을 하릴없이 지루하게 보냈다는 얘기다.
감독이 "짠! 놀랐지?" 했을 때, 나는 
"오, 그랬어? 이제껏 속이느라 욕봤네." 심드렁하게 확인사살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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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것들

1) 호주로 떠나보낸 아내와 아들을 그리워하며 주소를 손등에 적고, 구글 지도를 검색하고, 비행기 표를 예약한 기러기 아빠가 갑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2) 결국 재훈은 자기 삶을 비관해서 죽은 거잖아? 그런데 왜 자꾸 그 죽음을 미화시키지? 마지막 장면, 타즈 마니아 절벽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재훈이 환하게 웃을 때 그걸 보는 나는 왜 카타르시스는커녕 마음 한구석이 이토록 찜찜한 거지? 살아서 날아가면 될 것을 그는 왜 죽어서야 호주의 가족 곁으로 날아갔을까? 호주에서 재훈은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린다.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자기가 미처 보지 못한 삶의 꽃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 때문에? 부재와 소멸을 겪은 후에야 내가 당연한 듯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는 주제를 강조하려고?    

3) 그랬다면 재훈은 사고를 당하고 타의에 의해 강제로 죽었어야 했다. <멋진 인생>, <천국의 사도 조단>, <영혼은 그대 곁에>의 선례를 보라. 하다못해 <미쓰 와이프>만 봐도 그렇다. 더 살고 싶었지만 억울하게 죽어야 미련이 남고, 미련이 남아야 쉽게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이 장르 서사의 규칙은 그렇게 돌아가게 돼 있다. 1) 억울하게 갑자기 죽은 이들이 죽음을 거부하고 이승을 배회하다 2) 결국엔 죽음을 받아들이고 3) 이승에 남겨 두고 온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빌어 주며 떠나가야 이야기의 아귀가 맞는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재훈보다 억울하게 살해된 지나가 주인공에 더 어울리는 이유다. 이주영 감독은 레퍼런스들의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었다. 암묵적 규칙을 깨고 너무 멀리 나갔고, 살짝 선을 넘었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뭔가 어긋나 있다. 그 찜찜함이 94분 내내 영화 서사를 괴롭히고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새로운 것에 집착하다 첫 단추 잘못 꿴 꼴. (재훈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래도 죽고 나니 후회가 되더라, 죽은 게 억울하더라, 그래서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승을 배회하고 있는 것 아니냐? 자살한 놈은 남은 이들의 행복을 빌어 주지도 못 하나?... 라고 한다면 뭐 딱히 대꾸할 말은 없다. 대꾸하고 싶지도 않고.  -_-)

: <천국의 사도> 
http://blog.naver.com/nicemonk/220862459346


4) 비틀기나 파격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새로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말이 되게 새로운가?'이다. 제멋대로 새로운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짜 어려운 것은 '뻔하지 않게 새로운데 당연하게 말이 되는 것'이다. 

5)  재훈은 몰래 호주에 온 자기를 알아볼까 봐 상영 시간 내내 아내 수진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호주 남자 크리스를 피해 다닌다. 수진의 집에서도, 해변에서도, 크리스의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도, 크리스의 일터인 하버 브리지에서도, 수진이 오디션을 보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그런 재훈의 행동을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죽은 혼령이 사람 눈에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라) 이웃집 할머니가, 하버 브리지 노동자가, 한국인 지나가, 게다가 강아지 치치까지 재훈을 보고 재훈에게 말을 거는데 그게 트릭이라 생각하고 재훈이 망자라는 걸 알아챌 관객이 몇이나 있을까? 속이려고 작정한 일이다. 이 모든 트릭을 한 방에 해결하는 만능 요술 방망이는 영화 막판 재훈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나에게 하는 말 : "나도 내가 선택한 거지만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렸어요. 담담할 것 같았는데 막상 겪어 보니 안 그렇더라고요.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그 사실(죽음)을 받아들였어요."....라니. 아놔. -_-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이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에 면죄부를 줘야 한다면 그건 너무 쉬운 방법 아닌가?

6) 이병헌의 연기는 좋았다. 공효진의 연기도 좋았다. 그러나 안소희의 연기는 그렇지 않았다. 덕분에 서브플롯이 무너지고 중심 서사는 기우뚱거렸다. 

7) 좋은 대사들이 많았다. 

"귤 까주는 건 정이고 새우 까주는 건 사랑이래.", "하루도 안 쉬고 매일매일 노력하는 거, 그거 힘들고 귀찮아."

그러나 그 대사들은 귀에 와 박혔지만 마음에 박히지는 않았다. 멋진 대사들은 극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맥없이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귤과 새우 얘기도 그렇다. 밑도 끝도 없다. 이야기의 맥락이 있어야 하는데, 수진과 크리스 관계의 밀도를 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설정한 이 장치는 귤 까주는 게 왜 정이고 새우 까주는 게 왜 사랑인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 그저 과거에 수진이 한 말을 근거로 호주 해변에서 외국 남자에게 새우를 까주는 수진의 행위를 엿보는 것 뿐이다. 그러면 크리스에게 새우 까주기 = 크리스를 사랑하는 것,이란 등식이 간단하게 성립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과연 그럴까? 과거 수진이 한 그 말의 의미가 현재 수진과 크리스 사이에 성립하려면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은 통편집 된 채 생략됐다. 그러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밖에. 아마도 재훈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는 극의 구조 상 시점 자체의 구조적 한계가 아닌가 싶다. 

8) 재훈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은 피치 못할 선택이었겠지만 그 선택은 효용보다 제약이 더 많았다. 재훈의 심경 변화만큼이나 극에서 중요한 것이 수진의 변화인데-수진은 한국에서 강박증으로 집에 이중 자물쇠를 채우거나 아니면 자기 삶의 방관자로 살았지만, 호주에서의 그녀는 집문을 열어 두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고 노력한다- 재훈의 관찰자 시점으로는 그 변화를 깊이 있게 다루는데 한계가 있다.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결국, 영화의 발목을 잡는 비효율적인 자충수가 된 셈. 후반부 반전을 숨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한 게 아닌가 싶다. 히든카드 하나를 위해 극 전체의 균형을 희생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경우랄까.  

9) 재훈과 지나가 버스정류장에 앉아 대화하는 시퀀스는 몇 마디 대사로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조급증이 빚어낸 대참사였다. 서툰 창작자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설명조의 설교로 주제를 쉽게 드러내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지나의 대사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보면 알아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그거 진짜 다 개소리거든요." 라든가,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죠. 나도 내가 하는 일에 의심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같은 재훈의 대사들. 좋은데 너무 설교조고 작심한 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간 공들였던 도입-초·중반부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10) 페친이신 정시우 기자님이 <싱글라이더>에 대해 이런 멘션을 남겼다. 1)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 등과 함께 거론될 연기 하나를 추가. 극 중반까지는 <싱글라이더>에 침투한 (스톰)쉐도우구나, 생각했다." 2) "연기는 달콤한 인생'보다 번지점프를 하다' 쪽에 가까워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영화를 보던 중간에, 그리고 영화가 다 끝난 후에 알았다. 

11) 모든 죽음은 혼자 떠나는 여행과 같다. '동행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자'의 사전적 의미와 '죽은 자의 여행'이라는 비유적 의미가 맞춤하게 섞인 중의적 제목 <싱글라이더>. 제목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았다. 


* 스누피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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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0 사라만두  
발에 들러붙은 한가닥 머리카락처럼, 찝찝한 이물감을 안은채 배회한 두시간.. 머리카락이 아녔더라는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