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하워드 혹스 10 - 엘도라도

S 컷과송 0 56 0 0

나는 이제까지 그를 14번 만날 수 있었다.

하워드 혹스는 1896년 5월에 출생하여 1977년 12월에 사망했다.

 

2011년의 절반이 사라지는 밤과 나머지 절반이 시작되는 새벽 사이에 나는 그를 보냈다.

 

 

11. 엘 도라도 El Dorado(1966) : 다친 노장들의 고립, 그들은 아직 목발을 짚고 다닌다.

 

일흔 살의 하워드 혹스

저물어가는 고전 정통 서부극의 힘없는 외마디

이제 그들은 언젠가 회복될 그 날을 위해 기울어져 걷지만, 그 웃음 어딘가 씁쓸해보인다.

 

동시대 이탈리아에서 세르지오 레오네는 미국의 고전 정통 서부극을 확실히 비웃어주는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로 미국 서부에 정의가 있었는가라고 묻고 있었다.

하워드 혹스는 웨스턴의 거목이자 거의 유일한 남성 아이콘이라 해도 좋을 존 웨인과 함께한

서부극 3부작 중 2번째 작품에서(나는 그의 유작 “리오 로보(1970)”를 만날 수 없었다.)

점점 더 해체되어야할 미국 건국 신화에 대해서 자신이 가진 미련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것은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에는 자식이 없고(불임)

남성 동성 사회라는 집단으로 불러세우기에는 점점 더 스스로를 허약한 육체 안으로 측은하게 만든다.

마지막 구호, 선악 이분법이라는 불가해한 매혹 속에서도 마치 유언처럼 '전문가의 예우'를 남기고 사라진다.

 

"리오 브라보" - "엘도라도" - "리오 로보" 같은 이야기의 다른 이름들의 공유점은 무엇보다 존 웨인이라는 배우지만,

그 속에 흐르는 혈류는 소중히 지켜져야할 타운 무비와 그 속에 고립된 보안관 사무실이라는 공간 정치성을 중심으로

가능한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그것은 웨스턴이 적층한 고전 미학을 보전하려는 몸부림으로 노출된다.  

 

영화 내부 어디에서도 시대의 동요가 감지되지 않을 때

단지 그것은 영화 문법과 장르의 미학 안에서만 자신의 화두를 내걸고 관객에게 말을 건넬 때

홀로 황야로 다시 말타고 나가는 총잡이는 그의 팔이 마비되고, 산탄총으로의 교체가 요구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애잔한 낭만에 대한 사려깊은 애도로 기록되고

우리는 지나가버린 거인들이 점점 더 커튼 뒤로 사라져 다시는 무대 위로 나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무대 아래 객석에서 커튼 콜을 외치며 스스로의 낭만성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하워드 혹스 자신도 본편의 애상이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지 정치가 아닌 미학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말기에 다가서면 가장 아름다웠던 정열적이었던 날들의 가치를 되새기고 싶은 것이다.

다만, 그것은 필연적인 동시대성을 가지기보다는 혼자 돌아가는 시계의 느린 분침이 될 여지가 많다.

 

마을을 지켜야하는 장년층의 두 남자와 노인, 키드라 불리울만한 후계자, 그들 주변의 여자들

본편에서는 물의 사용권으로 제시되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상호 결합된 미국 건국 신화

하워드 혹스가 제시하는 정의의 정치경제학적 본질은 그리 심도깊지 않지만,

그가 펼쳐내는 서사의 한 자락은 여전히 겨울밤 난로가 피워올리는 온기 이상의 수혈을 가져다 준다.

전작인 "파라오의 땅"에서 가득 보였던 황금이 본편 "엘도라도-황금의 도시"에서 남성 사회의 지탱력으로 전환된다.



2199a34a7ac99464bbddf305c96cee7b_1484092489_2291.jpg
 

 

영화는 주인공 존 웨인이 마을로 들어왔다가 떠나고 다시 들어오는 두 개의 분절된 악장으로 구분된다.

그 띄움은 이제 막 하워드 혹스의 또다른 장르 걸작인 "레드라인 7000(1965)"에서 앳된 주연에서 막 하차한

제임스 칸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한 쉼표임이 표면적인 읽기겠지만, 실제로는 위 장면을 삽입하기 위한 구성이겠다.

 

남자를 떠나보내고 문간에 기대선 여인의 옆선은 전통 서부극에서는 흔히 보는 클리셰이지만,

하워드 혹스의 세계에서 그리 낯익은 풍경이 아니다.

( 스크루볼 코메디나 서부극에 치우친 제한된 감독과의 만남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비극이란 참을 수 없는 현실 부정이기에 앞서 비존재로 덮어야할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 혹은 남자들간의 - 사이의 성공적인 결합은 2세를 기약하든 아니든 반드시 필요한 절충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만들어져야한다.

왜 존 웨인은 영화 중반에 여자를 뒤로 한 채 떠나야하는가라는 낯설고 익숙한 모순적인 이별에 대한 회문

여기서 말씀드렸다시피 방점은 '중반'에 찍혀지는데, 또렷이 답은 그가 돌아와야한다는 믿음에 속한다.

 

존 웨인이 떠나가는 이유로서 젊은 여성에게 총격으로 부상을 당하고  애끛은 청년을 정당방위로 죽인 사실은

거대 자본가의 총잡이로 고용될뻔한 기존의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의 면면을 의외성 속에서 만든다.

그리고 그는 척추에 총알이 박힌 채 수술을 받지 못하고 마을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기실 하나의 영화, 즉 서부극에서의 반쪽짜리 종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돌아와야할 이유는 다름 아닌 하워드 혹스식 봉합 즉 정착을 위해서이다.

여기서 정착이란 문명/야만의 이분법과는 상관없는 정통/수정이라는 서부극의 이탈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

 

2199a34a7ac99464bbddf305c96cee7b_1484092489_3218.jpg

 

존 웨인에게서 속사 권총은 그리 자주 다루어지는 매력적인 무기는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장총-라이플의 위력과 마초 남근의 상징 안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무장시켰다.

 

제임스 칸의 등장 에피소드에서 이제 막 25의 나이로 대선배들의 자리에 조연으로 등장한 그는

특이한 모자와 목 뒤 칼 던지기, 시 읊기, 중국인 흉내내기의 잔꾀 등으로

전작 "리오 브라보"에서 꽃미남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과시했던 리키 넬슨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재밌는 것은 그가 칼 던지기 대신에 무기로 삼은 산탄총인데,

이는 마치 후일 제임스 칸이 마피아 영화에서 줄곧 갱스터 역할을 맡게될 운명을 암시하는 듯 하다.

 

하지만 정작 눈여겨볼 것은 존 웨인이 제임스 칸(극중 이름 '미시시피')에게

꼬박꼬박 밥값과 산탄총 값을 지불하라는 말을 정확히 건넨다는 것이다.

분명 코메디적 요소를 삽입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가-자기 몫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포함돼있다.

 

2199a34a7ac99464bbddf305c96cee7b_1484092489_408.jpg

 

전작보다 여성 캐릭터는 사실상 거의 희미해졌거나 삭제되었다.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함에도 그녀들은 극 중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리오 브라보"에서 앤지 디킨슨에게 주어졌던 로맨스와 사연들이 그녀들에게는 부여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해서 보안관 사무실이 고립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리오 브라보"에서 딘 마틴과 리키 넬슨, 월터 브레넌이 엮었던 노래 화음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를 메우는 어떤 특별하고 새로운 기제조차 발견되지 않을 때 극의 힘이 떨어지는 것은 차지하고

동일한 화음의 다른 곡조인 본편은  전작의 신화성에 너무 안이하게 기대고 있지 않는가를 의구심을 낳는다.

 

하워드 혹스가 내심 내민 카드는 전문가의 외양을 갖춘 크리스토퍼 조지가 연기한 상대 총잡이인데,

그는 극 내에서 TV 시리즈로 익숙한 특유의 미소를 머금기는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예우'라는 대사 안에서 그 자신의 소명만을 다한 채 결기없이 사라져버린다.

이 점에서 그는 "셰인(1953)"에서의 잭 파란스가 잠시 후반부에 등장해서 가졌던 공포감과 비교된다. 

2199a34a7ac99464bbddf305c96cee7b_1484092489_4913.jpg

 

존 웨인과 로버트 미첨, 두 사람은 실제로는 10살의 나이 차이가 있다.

전작에서 알콜 중독 연기를 맡았던 딘 마틴과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한 로버트 미첨은 여기서는 동료 역으로 분한다.

이 두 사람의 조합을 통해서 감독이 말하려는 핵심적인 지점은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 마지막 숏에 들려져있다.

그저 그런 라스트 처리라고 느껴질지도 모르는 목발 짚는 두 사내의 걸음걸이에서

카메라는 그들이 벨트로 꽉 죄었음에도 불룩하게 앞으로 삐져나온 뱃살에 집중한다.

 

척추와 다리에 총상을 입은 존 웨인, 알콜 중독에서 벗어났지만 다리에 총상을 입은 로버트 미첨

두 남자의 신체 훼손과 목발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가슴에 달려있는 보안관 뱃지 Tin Star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혹스는 이제 자신이 되돌리기에는 웨스턴의 길이 너무나 멀리 와 있음을 지각하고 스스로를 위무한다.

주인공들은 너무 나이가 들었고, 마카로니 웨스턴의 젊고 날씬한 무법자 총잡이들은 돈을 위해서 총을 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프랑코 네로로 통칭되는 이들에게서 마을을 지키기 위한 어떤 정의감이나

남성들간의 뚜렷한 연대, 여성과의 아늑한 로맨스 등은 가볍게 발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서부는 정의롭지 못했고, 악당들은 총잡이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흐른다.

 

마지막 대사에서 존 웨인은 마을에 완전히 안착하겠다고 밝혔지만,

로버트 미첨은 그리 반기지않고 "당신같은 사람은 이 마을에 필요없어"라고 받아넘긴다.

마을에 필요없는 것이 존 웨인이라는 거목이 아니라 이제 그가 머무는 마을 자체가 해체되어버렸다.

그것은 하워드 혹스도, 존 웨인도, 그들이 꿈꾸었던 남자들만의 동성 사회도

더 이상 은밀하게 흡수되어야하는 보수 이데올로기 자체를 넘어서는 시대를 맞았다는 것을  지각하는 것과 같다.

 

 

"엘도라도"는 사라져가는 존재하지 않았던 정의로운 마을 지키기 시절에 대한 향수이면서

이제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시대 조류에 대한 혹스적 세계의 전문가적 예우극이다.

 

************************************************************************************************

 

영화포털 사이트 IMDB 상으로 하워드 혹스는 46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고

그 중 이미 소개해드린 "무법자 The Outlaw (1943)"와 같이 크레딧에 자기의 이름이 없는 작품도 6편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혹스의 다양한 장르 구사법 중에서 오래전 일독한 느와르의 걸작들

"스카페이스(1932)", "소유와 무소유(1944)", "빅 슬립(1946)" 등은 이번 기록에서 제외되었다.

그 외에도 자동차 레이서물, 공군 조종사 영화 등등 혹스는 알려진 것처럼 어떤 장르든 소화하는 스튜디오의 장자였다.

 

어떤 감독이 일생동안 하나의 이야기만을 한다고 고집할 수도

그가 가진 평생의 짐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읽어 개입하고 발전시켜야한다는 시각을 우선시킬 수도 있겠지만,

여성을 끼워넣기로 치장한 남성 동성 집단의 유지, 전문가 정신으로 포장된 죽음에의 매혹과 재미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여서 줄곧 하워드 혹스에 대한 못나고 부실한 읽기를 시도했다.

나는 그의 이같은 상상력이 미국 대공황이라는 동시대적 경험으로부터 도입되었다고 섣불리 추측하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텍스트 외부로부터의 난감한 추정이거나 후인으로서의 독자가 그를 오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50년대 이후 제국 전쟁이 종결된 이후 미국의 냉전 아래서

하워드 혹스의 남성들은 철저한 전문가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전과는 달리 상처를 입거나 의탁하는 면모가 보인다.

그것이 하워드 혹스가 바라던 영화에서의 미국 건국 백인 마초의 초라한 실제 내면인지는 

역사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정호가히 판명되었다고 말하기는 이를 것이다.

윤리적인 면모를 떠나 장르의 미학 완성이라는 문법적인 면모만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되새김질 한다면

하워드 혹스는 할리우드가 바라마지 않는 가장 탄탄한 연출력의 소유자이자 이야기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 중 겨우 14편만을 만났다. 이것은 전체 필모에서 4/1에 겨우 미치는 숫자이다.

그의 다른 장르들과 초기 영화들에서 어떤 다른 면면이 숨겨져있는지 알 수 있는 또다른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하워드 혹스(1896~1977 향년 81세)에게서 미국 백인 남성의 양면을 만난 시간은 정말 흥미로웠다. 감사드린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