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 발연기가 망친 수작

영화감상평

여교사 : 발연기가 망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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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부가 끝났을 때 명장들이 겸손 떨며 하는 말이 있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스포츠판의 그 말을 영화판으로 옮겨 놓으면 이런 말이 된다.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게 아니라 배우들이 만드는 것이다. 감독이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그걸 배우들이 몸으로 스크린 위에 표현해주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영화판에서 이런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감독은 아마 박찬욱 감독이 아닐까?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배우가 캔버스 위의 물감이라면 그 물감을 가장 잘 쓰는 감독 중 한 사람이 박찬욱일 테니까. 박찬욱 감독은 늘 배우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다른 영화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 했던 그 배우의 생경한 얼굴을 스크린 위로 끄집어 내는, 신비한 마력의 연금술사니까. 비록 다른 것에는 실망할지라도 배우들 연기만큼은 관객이 무엇을 상상하든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주니까(물론, 예외는 있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의 비! 아니, 정지훈). 

 

 

 그런 의미에서 (탕웨이의 남편 김태용이 아닌 다른)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는 실패한' 영화이자 성공할 뻔한' 영화이다. 감독의 머릿속 그림이 아무리 좋으면 뭘 하나. 그걸 그려낼 만큼 물감(배우)이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 했던 배우에게도, 그 배우들의 숨겨진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냈어야(없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했어야) 할 감독에게도 모두 책임이 있다. 그래서 실패했지만 <여교사>는 그렇기 때문에 또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했던 영화였다. 

 

 

 

 재하 역의 이원근은 좋았다. 연기 말고 마스크는. 소년과 남자의 이중성이 문신처럼 짙게 드리운 얼굴. 그러나 어설프고 풋풋한 소년과, 굵은 성대와 잘 다져진 근육만큼이나 단단한 남자가, 빛과 그림자처럼 때론 하나가 되었다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재하의 악마적 콘트라스트를 제대로 표현할 만큼 연기가 영악하지 못 했다. 차라리 대사가 적었더라면....마스크는 그 모든 아우성을 묵음으로 웅변하고 있는데, 재하의 간교함을 충분히 발현시키지 못할 만큼 이원근의 연기는 서툴렀다. 풋풋해도 어설퍼도 용서가 되는 것은 캐릭터이지 배우의 연기력이 아니다. 마지막, 아이 같은 울음 연기는 정말 좋았지만...

 

 혜영 역의 유인영은 아쉬움 투성이였다. 마스크와 이미지도, 연기력 마저도 존재감이 없다. 도식화된 악녀 캐릭터라는 연출 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이만한 악역이라면 누가 해도 대충 산다. 그 많은 막장 드라마들을 보라. 악녀를 연기한 배우들 중 누구 하나 주목받지 못한 배우가 있나. 그리고 (누차 얘기하지만) 반동 캐릭터로서 악역이 살아야 메인 캐릭터가 산다. 혜영은 효주(김하늘)와 팽팽한 대칭을 이루며 어두운 캐릭터의 응력(應力)으로 효주를 부각시켜 줄 만큼 극 속에서 잘 살지 못 했다. 무조건 욕하고 싶을 만큼 뒤틀리지도 악랄하지도 못했으며, 밉지만 때로는 공감할 만큼 관객의 머리와 가슴을 하나도 건드리지 못 했다. 발성은 우물우물 부정확하고 복잡한 감정선의 표현엔 깊이가 없다. 연기를 흉내 내고 있다는 느낌뿐, 정말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안 들었다. 

 

 메인 중의 메인이라 할 김하늘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댓글들을 보니 '배우들이 인생 연기했다'라는 상찬이 많던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김하늘은 '여자 이정재'라 할 만 하다. 몇 년을 봐도, 어떤 역을 맡아도 도무지 연기가 늘지 않는다. 는다,라기보다는 아예 변화가 없다. 김태용 감독은 배우 김하늘의 그런 고착된 이미지를 역이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그녀를 캐스팅했을 게다.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던 배우가 작품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때, 배우도 작품도 모두 윈윈이다.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보기엔) 처참했다. 물론 어떤 배우가 자기 이름이 타이틀 롤로 걸린 영화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역부족이든가 아니면 감독의 연출 미스든가. 

 

 역부족'이란 말은 세 배우 모두에게 해당된다. 자기 몫을 온전히 해낸 배우는 이희준 밖에 없다고 본다. 아! 교감 역을 맡았던 정석용 배우의 재발견이 하나의 소득이랄까? 기주봉 배우 역시 기존에 소비되던 이미지를 심심하게 답습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김태용 감독의 연출력 문제가 역시 문젠가.....? ㅋㅋ 특히나 섹스 신이 문제다. 누가 봐도 이런 영화-여교사가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아닐까? 그런데 (남자인 내가 봐도) 아무 감흥이 없다. 얼마나 기대를 하고 극장에 갔건만....-_- 여성 관객들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나 <언페이스풀>(2002)을 기대하고 극장에 갔다면, 남성 관객들은 실비아 크리스텔이 꼴깍 하고 침을 삼키게 만들었던 <개인교수>(1981)나 뼈와 살을 녹게 만들었던 <나인 하프 위크>(1986)을 고대하며 표를 끊었을 터. 그런데 그렇게나 중요한 장면에서 세 배우는 늘상 삐걱거리며 시원하게 찬물 한 바가지를 퍼붓는다. 서툴고, 서툴고, 서툴다. 배우들이 못하면 감독이 촬영이나 편집으로라도 살려야 하지 않나? 

 

 극의 흐름상 몹시 중요했던 혜영과 제하의 첫 섹스 장면을 보고 나는 직감했다. 망했다, 라고. 미치도록 사랑해서 하는 섹스도 아니고, 관능미가 꿀처럼 뚝뚝 떨어지던 장면도 아니고, 가슴이 터질 듯해서 숨을 멈추고 군침을 꼴깍 삼킬 만큼 긴장도 되지 않는 그 장면. 그런데 더 심각한 건 영화의 메인이벤트, 효주와 재하의 목석같은 섹스와 붕 떠 있는 사랑. 

 

 오해들 마시라. 남성적 관점에서 포르노그래피의 시각적 쾌감을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세 인물의 엇갈린 '사랑의 짝대기'가 남자든 여자든 누가 봐도 숨이 막힐 것처럼 긴장되고 아름다워야 성공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여교사>는? 차라리 그 일을 제대로 해낸 게 드라마 <밀회>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영화 <여교사>엔 뼈아픈 칼날이다. 나이 어린 제자와 금단의 섹스를 하는 김하늘의 얼굴과 몸의 표정엔 <언페이스풀>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며 흔들리고 무너지던 다이안 레인의 오르가슴이 없다. 육체적 오르가슴이 실종된 제자와의 성애는 여름 내 울던 매미가 남기고 간 실체 없는 빈 껍질처럼 공허하고 가짜 같다. 도대체 왜? 효주(김하늘)는 윤리적, 관습적, 사회적, 육체적 선을 넘어가는 살 떨리는 첫 섹스에서 어쩌면 그렇게 쇠막대기처럼 감흥 없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을까? 차라리 손예진이 효주 역을 했더라면.....하는 하나마나 한 아쉬움만 짙게 남을 뿐.

 

 

 

 

 

 

 연기의 (배우들이 아니라 감독에 대한) 아쉬움을 실컷 얘기했으니 이제는 재미나게 본 것들에 대해 얘기해 보자.

 

 

 <여교사>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계급/계층 간 권력 투쟁의 드라마로 읽어야 한다. 21세기판 <하녀>(1960)라 할 만 하다. <여교사>는 임상수 감독의 2010년 리메이크작 <하녀>보다 더 '김기영적'이다. 인물 간 치열한 권력 투쟁의 알력과 관계는 꼼꼼한 미장센을 통해 구현된다. 예를 들면 : 교무실에서 재하를 내려다보는 김하늘의 시선은 어느 순간 체육관에서 재하를 올려다보는 리버스 숏의 시선으로 치환된다. 권력관계가 뒤틀어질 때마다 변화된 미장센이 인물 간 관계를 새롭게 설정/정의한다. 효주에게 재하와의 섹스를 들키고 약점이 잡혀 궁지에 몰린 혜영이 퍼붓는 빗속에 효주를 찾아갔을 때, 효주는 빌라 현관 안 계단 위에서 비를 맞고 있는 혜영을 내려다보고, 주도권을 잡았던 효주가 다시 혜영의 계략에 빠져 그만 어린 재하를 사랑하게 됐을 때-효주에겐 단순한 섹스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사랑의 포로인 효주는 약자가 되어 혜영의 발치 아래 무릎을 꿇고 혜영을 올려다본다. 

 

 

 몇 개의 우연이 끼어들긴 하지만 시나리오는 치밀하고 플롯은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기엔 '작위'라는 아름다운 함정이 있다. "훌륭한 구도는 없다. 하지만 안 좋은 구도는 있다. 안 좋은 구도는 작위적인 구도다" 이제는 촬영의 교리가 된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말이다. <여교사>에서 구성의 작위는 위악이 된다. 이럴 것 같다는 관객의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스크린 위에 실현된다. 게다가 그 예상 가능한 인물들, 예상 가능한 인물들의 관계, 예상 가능한 사건의 전개가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잘 만들었다 생각하지만 다 보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영화, 마치 여성판 <악마를 보았다>를 본 기분이 든다. 뒷맛이 좋지 않은 도식. 



 효주는 가난하고 무기력하고 남자 복도 없으며 비정규직 교사에 미래도 없지만,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혜영은 부모 덕에 남자 복 그리고 정교사 타이틀에 어린 제자의 몸과 사랑까지 독차지했다. 거기에 질투심, 자존심, 뒤틀린 욕망, 엇갈리는 관계, 음모와 배신 등의 양념이 화려하게 흩뿌려졌다. 권력에의 지향으로 수렴되는 인물들의 뒤틀린 욕망은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당위대로 뻗어나가며 서로 얽힌다. 재하는 상대의 힘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영악하고, 효주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자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는 재하를 연민하지만, 열등감을 느끼며 질투하던 혜영의 약점을 쥔 순간 그녀 위에 잔인하게 군림하려 한다. 혜영에 대한 재하의 사랑과 재하에 대한 효주의 사랑은 보편적 사랑의 모습보다는 뒤틀린 집착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쟁취함으로써 현실 속에 자기 좌표를 마련하려 한다. '지금의 나'가 아니라 '되고 싶은 나'가 현재를 살고 있고 현실을 지배한다. 셋 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여교사>의 플롯은 비극으로 끝날 수박에 없는 구조적 관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여교사>는, 볼 때는 힘들게 힘들게 꾸역꾸역 보게 되지만 다 보고 나면 묵직한 뭔가가 가슴께 어딘가에 걸려 안 내려가는 것 같은 이창동 감독 영화의 맞은 편에 있다. 목구멍에 생선가시가 걸리듯 걸려서 내려가지 않는 <여교사>의 불편함은 그렇다고 몸이 힘들 정도로 괴롭지는 않다. 예상 가능한 도식의 선을 벗어나지 않는 플롯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상 가능한 도식을 따라갔으되, 좀 더 섬세하고 깊이 있게 세밀화를 그려낸 <우리들>(2015)의 칼날이 훨씬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연출력과 연기력 세기의 차이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차라리 심리의 세밀화보다 거칠지만 힘 있게 밀고 나가는 파격이 낫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효주의 분노가 폭발하던 시퀀스.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하며 눌러오던 효주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물주전자와 함께 임계치를 넘어 폭발할 때, 주전자의 찢어지는 듯한 소음 사운드와 수증기의 분출 이미지가 사랑마저 무시당한 효주의 얼굴 클로즈-업 숏과 교차 편집되면서 불안하게 당겨졌던 극의 갈등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던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었다. 터져 나온 인물들의 감정을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그 감정의 에너지에 휘둘리거나 하지 않은 채, 경찰 사이렌 사운드가 오버랩 되는 서늘한 김하늘의 얼굴로 영화를 마무리 한 것 역시 좋았다. 인양되는 요트와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위로 평화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알랑 드롱의 얼굴이 오버랩 되던 <태양은 외로워>(1962)의 엔딩 장면이 생각날 만큼. 



 

 




- 뱀다리 1 : 재하와 혜영의 첫 섹스는 참으로 난데없었다. 암시를 통해서라도 둘 사이의 관계가 차근차근 쌓였어야 좀 더 세 인물 간의 갈등 구조가 살았을 것 같다. 

- 뱀다리 2 : 재하가 효주에게 갑작스레 키스를 했을 때 재하의 대사, "누나 가지 마...."는 재하와 혜영 관계의 힌트 치고는 너무 모호했다. 

- 뱀다리 3 : 그간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는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배우 김하늘은 미스터리 스릴러 물에도 잘 맞는 배우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남성 관객의 입장에서 베드신을 보면서도 이렇게나 섹스 어필이 없는 여배우가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건, 배우로서의 김하늘에게도 치명적인 결함이다. 

- 뱀다리 4 : 배우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주로 토로했지만, 배우들의 불가항력은 결국 연출의 책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김태용 연출의 공과 과는 결국 차기작을 봐야 선명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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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S 컷과송  
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의견과는 반대되는 평문...잘 읽었습니다. <거인>을 생각하면 영화나 배우나 잘 나왔어야 정상인데...
14 스눞  
거인은 참 재미있게 봤는데 기대가 컸던 것인지 여교사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연기 지적을 많이 했지만 사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배우의 공과가 아니라 디렉션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ㅎ

추카추카 43 Lucky Point!

22 박해원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14 스눞  
둘 사이 관계는 그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내내.
1 느끼짱  
음 ... 평론을 읽으니 웬지 영화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평론 잘 읽었습니다...
14 스눞  
댓글 감사합니다.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신 것도요. :)

대개의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기에 저마다의 감상이 다르겠지요. 직접 보시는 게 아무래도....

영화는 꽤나 좋았습니다. 제 기대가 커서 아쉬움이 많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