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하워드 혹스 9 - 파라오//하타리 !

10 컷과송 0 109 0 0

아래 글은 2011년 6월에 작성한 것을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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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그를 14번 만날 수 있었다.

​하워드 혹스는 1896년 5월에 출생하여 1977년 12월에 사망했다.

 

 

누구에게나 오점은 있기 마련이다라고 쉽게 가벼운 어구로 표현할 때

그 선을 넘어버리는 거장이 없지는 않지만,

할리우드 내 공장에서 작업했던 이들에게서 전작의 걸작화를 이룩하기란 결코 간단한 업무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공장 외부에서 영화를 연출했던 작가들에게서는 간혹 기대해도 좋을 가능성이지만,

스튜디오와 흥행의 직접적인 압력 아래서 고용되었던 연출가로서는 어떤 한계들이 있었을 것이다.

친근한 예로 우리는 스탠리 큐브릭이 "스팔타커스"를 만들었던 과정을 추문들과 함께 익히 들어 알고있다.

 

하워드 혹스 역시 30년 이상 스튜디오 내에서 작업했던 고용인으로서

그의 뛰어난 연출 감각과 흥행력에도 불구하고 제작사의 압력 아래 허술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 스스로 실패작이라고 선언한 "파라오"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더불어, "하타리 !(아프리카 언어로 '위험하다'라는 뜻인데, 이는 작품 자체와 그대로 조응한다) 역시

하워드 혹스의 연출과 주제 질감이 다소 묻어나는 것이 명백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적인 의혹망과 한가로운 아프리카 평원의 모습에 가끔 답답해진다.

 

이제껏 다루었던 혹스의 작품들이 주로 스튜디오 내에서 만들어졌다면

(특히 플림 느와르와 스크루볼 코메디 장르는 거의 실내 스튜디오 공장품이다)

아래 두 편의 영화는 스튜디오와 야외 촬영이 번갈아 이루어지지만,

다른 어떤 하워드 혹스의 영화보다도 거대한 제작비가 투자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주제만으로 따진다면 두 편 모두 혹스적 세계의 일관성인 "죽음"과 연결되지만,

실제 본편들은 그 동맥을 제대로 부여잡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다가 놓쳐버리고 만다.

한 편은 역사 속 죽음의 인식을 제대로 극 안으로 새겨내지 못하고

다른 한 편은 그저 그런 초원 로맨틱 코메디와 타운 무비 로맨스로 스스로를 결핍시킨다.

우연하게도 이 두 편이 모두 아프리카라는 장소를 무대로 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장르의 대가임에도 그가 배경으로서 미국을 이탈할 때 혹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힘이 빠진 듯 보인다.

 

다음 글에서 쓰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를 알려면

하워드 혹스의 회고록을 읽어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혹스적 세계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거나 대단한 사유가 아니지만,

그것이 왜 도두라져야 하는지를 알려면 감독 개인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보는 수 밖에 없다.

텍스트를 벗어난 사적 컨텍스트라는 어색한 형용모순이 자리잡긴 하지만,

영화사의 위대한 선인들의 자취를 쫓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 하워드 혹스의 한가로운 유산 두 편을 만나본다.

 

 

9. 파라오 Land Of The Pharaohs(1955) : 황금과 같이 죽음을 영원처럼 숭배하라

 

144분이라는 상영 시간은 참으로 지루했다.

이야기를 위해서 화면을 구성한다는 혹스적 지론에도 볼구하고

관객은 본편 안에 과연 이야기가 있는지부터 의심해야할 지경에 이른다.

 

거대하게 건축된 야외 세트장의 위용과 엄청난 엑스트라들의 집단 시퀀스 등에서

드러나는 막대한 제작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야말로 한가롭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맥이 풀린다.

 

혹스에게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라는 역사적 대상은 하나의 매혹으로 다가서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죽음에 대해서(대부분은 남자 전문가들의 죽음) 기꺼이 미끄러지듯이 찬양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인간계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닌가하는 프로이트적 사고를 지지했다.

 

그러므로, 공포물의 미이라로 통칭되는 이집트 파라오 군주라는 신분은

살아있는 신이자 죽음이라는 또다른 세계의 시작을 신봉하는 경계선으로 더할 나위 없는 흠모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당연히 살아있는 파라오가 어떻게 죽어가는지에 전념할 것이지만,

이를 위해서 동원되는 황금과 팜므 파탈이라는 두 요소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결국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가 원래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피라미드에 묻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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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굳이 따지자면 정교 일치 시대의 대사제의 기록과 나레이터로 열리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 역시도 그저 극 중 한 인물로 다루어진다.

새 그림과 각종 기호를 등장시키는 기록 자체는

마치 재미있는 서사야말로 영화의 본질이라 생각한 혹스의 내심을 보는 듯한 착각을 안긴다.

기록 자체가 하나의 플래쉬백으로 즉각적으로 변형된다고 하기에는 이어지는 숏들에서 연결점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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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년대의 거대 역사 서사극 붐에는 막대한 제작비가 역사의 스펙타클을 이룩하는 위험한 투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들 중 다수 작품은 실제로 해당 제작사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리고는 했다.

(아마도 그 마지막에는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1980)"이 번호표를 받아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워드 혹스의 거의 유일한 거대 역사극이자 영화 속에 등장하는 황금만큼이나 값비싼 자본이 투자된

본편 "파라오의 땅"은 영화의 하위 텍스트라 할 궁중 권력암투극조차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죽음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로 유사 이래 최고의 무덤인 피라미드만 강조한 채 묻혀버렸다.

 

위 장면 속 영화 세트장으로 건축된 실제 외양을 보면 당시 할리우드가 중저가 장르물의 불황에서

어떻게든 세로운 활로를 타개하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활로를 구축하고 있음이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웅장한 석조 건축물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신체로 구성된 군중 씬은 할리우드만이 탐욕을 가질만한 장르였다.

하지만, 외양의 화려함에 비해서 서사를 다루는 감독들은 걸맞는 준비를 하지 못한 탓인지

본편에서 하워드 혹스는 그가 말하려던 죽음에 대한 기원전 사고, 즉 또다른 시작으로의 세계를 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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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가 본편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아마도 이 황소와 파라오의 대결 시퀀스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대결이 실제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 이 숏은 혹스적 세계의 유치한 노출이다.

위 장면을 촬영했을 대역 스턴트맨은 보호장구를 착용했겠지만,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임했을 것이다.

 

단순히 파라오의 만용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경계에 대해서 현재와 같이 돌아올 수 없는 강 이상의 사고를 견지했음을 드러내는 위 시퀀스는

이들이 황금의 영원함만큼이나 죽음과 삶의 영속성에 대해서도 신뢰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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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작은 소국의 왕녀로서 파라오의 마음을 사로잡는 팜므 파탈 역할의 조안 콜린스는

당대 22살로 이제 막 할리우드에 발길을 내디딘 지 4년이 안된 신출내기였지만,

특유의 뇌쇄적인 인상으로 당대의 백인 글래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럼에도 기억할만한 영화 작품보다는 TV 시리즈 "다이너스티"로 이름이 남겨진다.

최근에 해외 토픽에서 언급된 할머니께서 왕년에는 이렇듯 파라오조차 함몰시킨 분이다.

지금으로 치면 스칼렛 요한슨이 흑발을 하고 나왔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극 중에서 그녀가 맡은 배역이 이전의 혹스적 세계에서 출몰했었던 기억이 없다는 점에서

( 황금을 위해서 주위 모든 남자들을 위기에 적극적으로 빠뜨린다는 점에서 M.M.과는 다르다.)

특이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극 자체 내에서 그녀가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어떤 상징을 뿜어내지는 못한다.

단지 그녀는 파라오를 인간화시켰다고 다시 그를 죽음 너머로 부활시키는 희생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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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잘리운 건축 사제들과 조안 콜린스가 파라오의 미이라 관이 서서히 내려오는 바위 안으로 잠기는 것을 본다.

이 시퀀스는 죽음에 대한 이상화된 아우라가 솟구쳤어야함에도 단지 하나의 외부 시점샷에 머물고 만다.

굳이 혹스적 세계를 하나 더 트집잡자면,

영화 속에서 파라오는 첫째 왕비와 둘째 조안 콜린스를 통해서 적극적인 정욕을 나타내지만,

실제로 그의 마음 속을 정확히 알아채고 심지어는 말해지지 않은 모든 이면을 눈치채고

안전하게 파라오의 영면을 완수시키면서 동시에 팜므 파탈에 대한 복수를 순장을 통해 성사시키는 인물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집트 문자로 기록을 남기던 대사제이다.

 

문제는 이전 작품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던 이같은 남성 동성애의 여지가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마을의 존재와 연결되거나 나라의 기반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좋은 친구, 부하 정도로 다루어지고 그나마도 너무나 현명한 성격 덕분에 희화화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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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와서 피라미드 안 복잡한 미로와 온갖 기관 설치를 담당하는 점점 더 눈이 멀어가는 외부 민족은

여지없이 유대 민족이라는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파라오의 죽음 이후에 대사제의 허용으로 노예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영화가 배당하는 멀리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하는 긴 행렬은 모세가 이끄는 출애굽기에 다름 아니다.

 

지나치게 현명하고 인간애를 과시하는 이들 부족들의 세 남성 인물(여성은 타 종족에서 온다.)은

이집트 고대 민족의 황금 숭배를 정확히 지적하지도 노예 노동의 참상에 분노하지도 않은 채

본편이 그러하듯 서둘러 그러한 윤리적인 지점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저 서사 진행에 몸을 맡긴다.

 

 

"파라오의 땅"은 연출의 중점을 잡지 못한 채 전달하려는 이야기조차 흩어지고

죽음이라는 혹스적 세계의 상징이 어디로 가야했는지 도무지 추정할 수 없는 궁중 암투극이다.

 

 

 

10. 하타리 Hatari!(1962) : 아프리카 웨스턴인지 식민지의 추억인지 별로 구분이 안된다.

 

윤리-미학의 후진 공방이 오가는 것조차 허락되기에는 너무 무딘다고 할 영화 "하타리!"는

그야말로 "위험한-하타리!" 지점에서 혹스가 할리우드의 고용인에 불과함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작정하고 이데올로기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 아프리카 사냥꾼들의 활기찬 언어와 로맨스가 헨리 맨시니의 음악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가 포장한 아프리카 환상곡 중 하나에 불과한 자리에 불편하게 내려앉는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이같은 비난 수사를 접하지 않으려해도

극 내내 군데군데 박아넣은, 아니 사냥 장면 자체가 상징하는 모든 수사들은

오직 하나의 이념 즉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착취라는 요소로 집약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동원되는 음악과 동물들은 희석제가 아니라 어느새 윤활유로 뒤바뀐 채 본편을 장식하기에 바쁘다.

 

그러므로 질문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정녕 하워드 혹스는 반역적으로 할리우드를 조롱하고 있는가이다.

연상해야할 두 가지 첨가제로서 영화는 아이와 죽음이 동시에 부재하다는 아이러니를 기억해야한다.

혹스적 세계에서 결혼 혹은 불임이라는 요소는 중후반으로 갈수록 점점더 더 옅어지지만,

죽음이라는 결정적 매혹이 사라졌을 때 이를 아프리카라는 공간의 착취와 연결지으면 다시금 윤리가 소환된다.

즉, 그들은 거기서 아기를 낳지 않아야하고 죽어서도 안되는 그저 머물다가 사라지는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야생 동물 사냥쇼라는 리얼리티 이상의 무엇도 담지 않아야한다는 강박이

마지막 시퀀스에서 아기코끼리 템보가 두 사람의 첫날밤 침대를 부수는 것은

단순히 관객 서비스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농담처럼 도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첫 사냥 시퀀스에서 코뿔소의 돌진에 큰 부상을 입은 사내(애칭이 인디언)가

병원에서 프랑스 출신 남자로부터 수혈을 받아서 회복되고 그들 모두가 하나의 가족으로 편입될 때

영화는 거의 작정하고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갑옷을 기꺼이 걸치기로 작정하고 있다.

 

게다가, 주변 배역들 중 스페인풍 남자와 독일로부터 미국으로 건너온 배우(하디 크루거),

유럽 출신의 여성 배역진과 존 웨인이라는 웨스턴의 거대 마초로 꾸려질 때 이는

그동안 아프리카를 침략한 나라들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남은 것은 그들이 벌이는 아프리카의 추악한 착취를 흥겨운 잔치로 탈바꿈시켜야한다는

즉 타잔의 웨스턴 버전을 가능하게 해야할 생생 동물 라이브 쇼와 그에 어울리는 음악일 뿐이고 고고~~.

본편에 대한 더 이상의 해석은 여기가 개인적인 한계이고, 아래는 그저 말에 어울리는 동물 스냅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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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아닌 줄을 통해서 동물을 잡아서 전세계 동물원 혹은 개인 수집가에게 판매하는 일이

본편의 인물들이 수행하는 막중한 업무이자 즐겁고 전문가적인 한 시즌의 행복한 어울림 한 마당이다.

기린, 물소, 원숭이, 얼룩소 등등이 등장하는 데 비해서 사자, 악어 등은  사냥 대상으로 등장않음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내 분위기에서도 드러나듯 마치 카우보이가 밧줄 던지기를 하는 모양새가 완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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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광고계의 3B는 가끔 두 가지가 한 자리에 같이 서세됨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보인다.

치타는 우리에게는 치토스 광고르 더욱 유명해졌지만,

여기서는 목욕 중인 미녀와 함께 등장하여 Beauty, Beast를 자동 연상시킨다.

실제로 치타는 미녀의 무릎 부위를 핥아주는 귀여움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말잘드는 할리우드의 출연 동물답게 이후 몇 시퀀스에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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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만이 날개를 가진다"와 "리오 브라보"에 이은 우리 가족 모두 노래를 이라는 혹스적 포장제는

여기서도 다시금 존 웨인의 흐뭇한 미소의 인정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이들의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는 차츰 영화가 진행될수록 불쾌감으로 변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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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가장 눈여겨봐야하고, 가장 솔직하며 동시에 가장 도두라지는 시퀀스는 바로 위 장면일 것이다.

존 웨인이 설명하는 마사이족이 관리하는 우물 시퀀스는 처음에 원경으로 카메라 위치를 잡는다. 

그것을 바라보며 존 웨인이 여인에게 말하는 대사 안에는 여실히 서구의 문명에 대한 우월감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곧 이들 사냥꾼들은 마사이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어간다.

 

겉으로는 전혀 불화가 설정되지 않은 채 원주민 언어까지 구사하는 그들에게서 관객은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반어적으로 이제까지 그리고 영화 내내 줄곧 제시될 동물의 포획 시퀀스에 비해서

지역적인 장소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다소 밋밋한 시퀀스야말로 혹스가 제시하는 수줍은 고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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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코끼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부추기는 수없이 많은 할리우드와 디즈니의 실제 모델은

아마도 서커스단에 빌려온 아주 잘 길들여진 새끼 코끼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코끼리 곁에는 당연히 서구의 백인 미녀가 자리잡고 있다.

(아시다시피 혹스에게서 백인 외의 인종은 거의 취급되지 않는다. 이는 히치콕과 거의 동급이다.)

 

후반부 여주인공이 아기 코끼리들을 목욕시키는 장면에서

거대한 코끼리 무리가 다가올 때 존 웨인은 총으로 이를 가로막는데,

이는 다시한번 본편의 이데올로기적인 골짜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는 시퀀스이기도 하다.

거칠게 말하자면, 할리우드는 단지 아기 코끼리가 필요할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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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 동료에게 죽음을 안길뻔한 상처를 준 코뿔소를 후반부에서 마지막 사냥으로 사로잡는다.

물론, 한번의 위기를 거쳐서 잡는 것은 간단한 센스일 것이다.

코뿔소가 상징하는 것은 아프리카라는 야생의 외마디일 것이고,

이를 포획하는 이가 존 웨인이라는 서부 마초일 때 영화의 밑바닥이 어디인지는 누구든지 알 수 있다.

 

 

"하타리!"는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동물 영화 중 가장 상생한 라이브로 기록되면서 동시에

이후 모든 아프리카 사냥극처럼 하나의 영화만들기의 은유로서도 해석될 흥겨운 악취미 수집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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