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하워드 혹스 6 - 나는 남자 전쟁 신부였다//몽키 비즈니스

S 컷과송 0 62 1 0

아래 글은 2011년 6월에 쓴 것을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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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그를 14번 만날 수 있었다.

​하워드 혹스는 1896년 5월에 출생하여 1977년 12월에 사망했다.

이번에는 왠걸.

남성 전문가도 없고, 죽음에 대한 모호한 강박도 사라졌으며, 남성 동성 사회의 희뿌연 애증도 발견되지 않는다.

두 개의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도 진행중인 하워드 혹스의 스크루불 코메디 두 편에서 남겨진 옛 흔적이라면

30년대의 영광을 희끗한 머리카락으로 고군분투 재현중인 캐리 그란트의 40대 후반 중년의 모습뿐이다.

 

굳이 아래 두 편을 하나의 동아줄로 간편하게 묶으려면 '변신'과 '동물'에 착안해야할 것이다.

두 편 모두 극 중에서 캐리 그란트는 일종의 변신을 통해서야 할리우드적 행복 궤도 안으로 안착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경중을 떠나 지적하자면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데,

이는 한 편에서는 모멸스러운 트랜스 젠더, 다른 한 편에서는 유아 청년기 퇴행으로 풍자된다.

동물들은 별 뜻이 없는데, 인간들은 스스로를 유희함으로서 어떻게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려 발악한다.

 

스크루볼 코메디라는 장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점점 더 노화의 고개를 넘어가는 시기에

하워드 혹스는 캐리 그란트를 다시 불러들여 다소 헐렁한 장르물 두 편을 연출했지만,

두 편 모두 전대의 고전들에 비하여 말의 호흡도 대사의 뾰족함도 잃어버렸다.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전개의 형식도 긴장이 떨어지고 저마다 따로 부유하는 느낌만을 안기며

어느 순간 갑자기 자기 자리로 돌아와버린 결말 역시도 관객들에게 의외의 모순된 안정감을 안기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워드 혹스가 아래 두 편의 작품에서 추진하려했던 상황적 묘미는

전술한 바와 같이 모종의 변신을 통해서 회귀해야하는 어떤 삶의 지점을 향애 달려가는데,

이는 빼어난 전작들이 가졌던 매혹의 요소들과 음울한 죽음에의 초대가 탈색되어버린

일반적인 수다쟁이 코메디와 상황 개그에 머물러버리고 말았다.

 

진정 혹스적 세계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일 정도로 아래 두 작품은 맥이 풀린 채로 존재하는데,

여기서 그나마 혹스적 세계의 작은 고리로서 불임이 다시 은근히 배어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조차도

극 자체의 흥미를 높이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고 심심하게 묻혀버린다.

 

그나마 후일 두 편의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하기 곤란한 엉어 제목에 있을 터이다.

각각 영화를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제시하는 원 제목 덕택에 혹스로서는 태작에 가까운 두 편의 영화가

최소한의 궁금증 유발에는 미량 성공했지만, 당시 흥행지수는 어떠했을지 의문이다.

이제 두 편의 영화를 만나보자.

 

 

 

7. 아이 워즈 어 메일 워 브라이드 I Was A Male War Bride (1949)  : 당신이 미국에 가기전까지는 이성애를 즐길 수 없다.

 

먼저 영화의 영어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해보자.

직역하면 "나는 남자 전쟁 신부였다"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것이 몇몇 본편의 영화 소개글에서는 "나는 전쟁 미망인"이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탈바꿈되어있다.

아무래도 그 분들은 본편을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잘못된 번역어로 보신 듯 하다.

바로 말하자면 직역 그대로 쓰는 것이 맞다.

 

"남자 전쟁 신부"라는 모순적인 어구는 후반부 영화의 핵심적인 신분과 상황을 지시하는데,

프랑스군 장교인 캐리 그란트가 미국인 장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기위해서는

상당히 작위적이지만 남성임에도 신부라는 위치를 이용해야만 가능했던 법률 문제가 극 내부에 놓여있다.

물론, 이는 명백하게 남성-여성이라는 성 전환에서 오는 유희와 연결되어있기 마련이다.

 

이미 "아기 길들이기"에서 케리 그란트는 한차례 캐서린 헵번의 욕실용 의상을 입고 나온 바 있는데,

여기서 그는 후반부에서 잠시 스스로 여성의 신분이 되어야만하는 상황에 빠진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거의 확연하게 나뉘어지는 본편에서 그는 극 내부를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부담스러운 여성 분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지는 극 자체의 흐름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남성의 여성 역할 코메디극이 간혹 오류를 담아 선사하는 여성 역할도 얼마든지 더 잘한다에서

여성에 대해서 남성은 이만큼이나 잘 알고 다가갈 수 있는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다라든가

도대체 여성이라는 동물은 알 수가 없어, 이제 나도 여성이 되었으니 당신을 이해하겠어 따위의

남성의 근시안적인 시각이 무차별-무분별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편은 프랑스군 남자 장교가 미군 여성 장교와 결혼하여 왜 미국으로 가야하는지 조심스럽게 덮으면서

하나의 성적 전환을 통해서 일종의 수치심이나 결혼통이라 일컫을 과정을 안김으로서 정치적인 음해에 노출된다.

캐리 그란트가 왜 갑자기 밀짚단 속 키스로 인해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는지 역시도 정확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여성 주인공은 기존의 혹스적 세계에서 그대로 당당함과 친근함, 매혹됨을 빌려왔음에도

관객이 기대하는 만치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함으로서 차라리 조연이라 할만큼 후반부에서는 비중이 엷어진다.

 

결국 영화는 성전환이라는 해프닝을 성정치와 전쟁 이후 유럽이라는 전략으로 성공적으로 포장하지 못하고

편안히 잠들지못하는 남성의 불안한 밤만을 낭비하면서 미국으로의 도피로 손쉽게 넘어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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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 캐리 그란트가 연기한 프랑스군 대위는 하이델베르크라는 곳을 찾아 전후 독일땅 택시를 타고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그리고 영어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결국 길 잃은 차를 안도하게 하는 미국식 영어이다.

여기서 언어 자체는 유럽과 미국이라는 지정학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위상의 지점을 은밀하게 노출하고

이것은 중반부 이후 캐리 그란트가 미국으로 가야할 알 수 없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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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사이드카를 운전하는 것은 남자 캐리 그란트가 아니라 여자 미군 장교이다.

위 장면에서 안전장치를 꼭 잡은 캐리 그란트의 두 손은 분리되어 출발하는 오토바이로 인해 깔아뭉개진다.

이후 캐리 그란트는 그가 수행해야할 임무(독일인 망명)에서 뭐 하나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이는 기존 혹스적 스크루볼 코메디 속의 전문가 남성의 마초적인 입지와도 거리가 멀거니와

오히려 완전히 하나의 조롱거리로 밀려난 느낌마저 든다.

문제는 그것이 프랑스군 대위라는 신분(여성은 미군중위)과 연결될 때 의혹의 오독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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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다양한 방식의 결혼식을 거쳐야만 캐리 그란트는 미군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 설정에서

다시 한번 이 결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불가능한 임무(캐르 그란트의 진짜 임무)인지 제시된다.

이 결혼을 허가하는 군 내부의 문서가 돌고도는 과정을 보여주는 편집 장면들과

이들이 종교, 행정 등의 절차를 거치는 시간들에서 관객은 여지없이 왜 이 결혼은 힘든 것인가를 묻게된다.

문제는 그 대답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는 데 있는데,

극 내부의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수긍할만큼 상징적이지도 해설적이지도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전반부에서 티격태격하는 두 남녀가 임무라는 여정을 통해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된다는 공식은

별달리 난리스럽지도 않은 에피소드들의 나열 속에서 흡입력을 상실하고 있거니와

중반부에서 결혼식이 완료된 이후 첫날밤을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상황 역시도

거의 거세에 가까울 정도로 이미 그의 남성성을 삭제시키버리려는 의도만 잔뜩 뿜어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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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그란트의 저 이상한 가발은 말의 꼬리털을 잘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임자는 당연히 캐리 그란트의 미군 신부이지만,

여기서 캐리 그란트의 말꼬리 가발을 손에 확 쥔 채로 스크린 외부로 그녀를 배제시킨 것은

그녀가 이 남자의 남성/여성성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코메디적으로 우스꽝스러워진 캐리 그란트를 더욱 희화화하는 초점에 노출시키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전반부에 거론했듯이

말의 꼬리털(엉덩이 혹은 꼬리뼈의 퇴행 흔적)을 이용한 여성 변신이라는 설정은

극 내내 제대로 남성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캐리 그란트의 거세된 욕망을 확실히 종결짓다는 성적 의미보다는

그가 신부와 같이 가려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혹독한 입장권이라는 분장 상징으로 읽혀지는 편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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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스크루볼 코메디 장르의 종점은 두 남녀의 로맨틱한 키스로 장식된다.

본편에서 캐리 그란트는 배가 유럽이라는 땅을 떠난 뒤에야 자신의 남성성을 허락받고

키스와 단 둘만의 공간에서 지낼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시간을 뛰어넘어 미국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것으로 마쳐진다.

 

결국 본편에서 캐리 그란트의 여성 전환과 잠자리 구하기의 시련은

프랑스군 대위가 독일에서 헤쳐나가야할 일종의 결혼 성장통으로 해석되는데,

그것은 기이하게도 이상한 정치적 조롱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혹스의 전작에서 거의 보여지지 않았던 미국 중심주의라니, 제대로 그동안 관찰하지 못한 것일까?

혹스 작품 중 미국 외부와의 현실 정치적인 관계를 다룬 작품을 접한 적이 없어서 해석이 여기에서 중지된다.

 

 

"나는 남자 전쟁 신부"는 미국으로 가는 승선권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트랜스젠더쇼이지만

내부적으로 음험한 정치적 폄하가 도사린 애매한 스크루볼 코메디의 정치 희극이기도 하다. 

 

 

 

8. 몽키 비즈니스  Monkey Business(1952) : 원숭이 왈 "너희에게 사랑있으라"

 

본편에서도 제목은 영어 제목 그대로를 사용했기에, 우선적으로 제목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몽키는 당연히 실험동물인 극중 침팬지 원숭이를 지칭하고,

비즈니스는 과학실에서 침팬지가 행하는 엉뚱한 화학 성분 혼합을 일컫는 말이다.

즉 몽키 비즈니스는 겉으로는 침팬지의 실험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지만,

차라리 의역으로서 원숭이의 기적 정도로 전환시킬 수도 있겠다.

 

본편의 의도는 명확하다,

침팬지를 통해서 인간의 억눌린 퇴행 욕망(혹은 젊어지려는 야심)을 실행시키고

기실 그것이 그다지 추천할만한 경험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서 현실로 되돌아가게하려는 보수성이 그것이다.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고싶다는 인간의 오래된 야심을 원숭이가 실현시켜 주었다는 설정은 희극이지만,

극 내부를 실제로 받치고 있는 쾌락은 젊은으로의 변신 에피소드에서 찾을 수 있겠다.

 

캐리 그란트는 전작에서보다 확실히 더 늙은 중년으로서 등장하는데

특히 뿔테 안경 속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그에게서 어떤 활력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오프닝에서 부인과의 무도회 외출을 과학 실험 상상이라는 이유로 잊어버리는데,

여기에는 그가 더 이상의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로맨틱함을 상실한 남성이라는 상징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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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가기 전에 한 차례, 이후 다시 한 차례식 캐리 그란트는 하워드 혹스에게서

"Not Yet 아직 아니야 캐리"라는 말을 듣는다. 이 설정 자체를 극 내부로 편입시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하워드 혹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냄으로서 본편이 영화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장치

즉 환타지 로맨스라는 장르적 속성이 관객들로 하여금 쉽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형식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져도 좋겠다.

 

그럼에도 캐리 그란트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장면은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에 대한 설명에서도 말했듯이 그가 집 안 혹은 실험실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즉, 그는 자신만이 가지는 쾌감으로서의 사회성이 제대로 있는지 의문인 남성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다시 한번 중년 남성임에도 부인 외에도 어떠한 자녀도 보이지 않는 불임도 한 몫을 한다.

기실 스크루볼 코메디는 아기라는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 장르는 어른들의 아기 놀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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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캐리 그란트는 결국 어떠한 실험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하는 과학자에 머문다는 점은

라스트 숏에서 마치 대사로 주제를 설파하는 후진 문법처럼 말로 정리하고자 할 때

혹스가 다다른 본편의 결코 내밀하지 못한 우스개는 다름 아닌 마음의 작용에 있음과 합치된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성공한 과학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유물론이 아닌 유심론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위 장면에서 원숭이는 이것저것 아마도 조련사가 훈련한대로 물약을 섞으면서 재미있어하듯

과정으로서의 혼합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은 유물적인 것이 아니라 유심적인 것에 있다는 전환이다.

여기서 변신이란 분명히 유심적인 것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스는 육체적인 한계와 이탈에 대해서보다는

젊음이라는 마음의 활력이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야할 이상적인 시간이라는 초라한 결론은

오히려 이전의 남성들의 죽음에 대한 강박이 본편에서는 젊음에 대한 퇴행으로 하강하지 않았나라는 의심이 들게한다.

 

중요성을 부여하기에는 다소 미약하지만,

늙은 남성 침팬지의 옷을 입은 젊은 여성 침팬지 에스더가 젊음을 되찾는 시약을 만들었다는 설절은

동물의 도움을 받아 변신하는 인간이라는 기본 테제 이외에 젊은 여성이라는 은밀한 성적 의미도 잔존한다.

하지만, 본편은 중년 부부의 사랑이라는 안전한 장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이것을 가능한 은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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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26살의 마릴린 먼로는 예상 외로 선배인 라티 헤이워드나 캐서린 헵번같은 늘씬한 여신 이미지가 아닌

그저 통통한 얼굴에 키작고 귀여우며 보호받아야할 여성 이미지로서 본편에서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캐리 그란트에게 매혹되어 잇으나, 정호가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은채

그와 데이트를 기꺼이 즐기는 사장의 여비서로 출연하는데, 주목할 점은 그녀가 백치미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스스로 이 점을 알기라도 하듯이 연신 걸음걸이에 리듬을 넣으면서 자신을 어필하려 애쓴다.

이전에 누구에게나 알려진 "이브의 모든 것"이나 "아스팔트 정글"보다는 확실히 많은 대사를 소화하지만,

그녀는 유먕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부터 두뇌가 비어있는 듯한 여성으로 남성에게 통용된다.

완전히 마릴린 먼로의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바쳐진 위 장면은 아예 남성들의 시선 자체를 극 내부에 삽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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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프레드 아스테어와의 뮤지컬 영광 시대를 이끌었던 진저 로저스는 50년대 이후 정극에 몰두하는데,

이 작품 당시 그녀도 이제 40대 여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캐리 그란트와 진저 로저스의 지난 항로를 회상한다면 영화 자체는 또다른 회복과 염원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다.

 

본편에 등장하는 두 여성배우인 진저 로저스와 마릴린 먼로는 혹스 영화속에서 특징적인 여성 역할과는 달리

그저 남성에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면서 퇴행하거나 백치로 남는 존재로 다루어진다.

원숭이가 만든 시약을 우연히 마신 부부가 유아기로 퇴행하여 서로에게 장난을 걸고 티격태격하는  에피소드를

마릴린 먼로와 캐리 그란트의 데이트 이후에 진저 로저스의 변신 그리고 두 사람 모두의 변신으로 3단계로

나누어서 제시하는데, 각 단계는 충분히 희극적이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그리 무거워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일 분이지, 현재와 미래를 흡수한 과거로의 성찰이 담긴 여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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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단게의 에피소드 중 그나마 가장 실소를 금할 수 없게하는 지점은

캐리 그란트가 어린 시절부터의 연적으로 설정되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아메리카 원주민이 머리 가죽 벗기는 것을

실제로는 그의 머리 자체를 모호크족의 헤어 스타일로 변신시키는 일종의 백인 남성에의 복수를 가장할 때이다.

여기에 원주민 분장을 한 백인 꼬마들이 동원된다는 점에서 다소 반 역사적일 수 있는 지점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단지 소년기로의 퇴행 자체가 그리 생산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못함을 드러내는 희비극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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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시약을 만들었음을 발견하는 것은 캐리 그란트가 아니라 그의 조수역을 맡은 대머리 사내이다.

그를 위 장면에서 나무에 묶여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남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지만,

캐리 그란트는 여기서 전혀 전문가스럽지 못한 캐릭터로 등장하여 끝까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내일 뿐이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동원되는 것은 다소 놀랍게도 아기인데,

혹스는 작정하고 관객에게 왜 이 다정한 부부에게 아기가 존재하지 않는지를 묻게함으로서

이 장르의 훈훈한 사랑의 이면은 기실 불임이라는 잔혹한 동화와 맞물려있음을 고백한다.

즉, 이들 사이에 오가는 스크루볼 코메디의 말들은 어쩌면 철저히 닥쳐올 상처를 가리기 위한 방패인 것이다.

 

마지막 정리는 수미쌍관으로서 다시 무도회에 가려는 부부의 대화로 이어지는데,

그들은 결국 아름다운 키스로 사랑이 담긴 젊음으로 관객에게 확인받을 수는 있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엔딩 처리된다.

그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는 극 중에서 시약이 있는 실험실에서거나 그것을 마신 채로의 외출일 때 뿐이다.

집 안에서만 가능한 사랑의 확인 그리고 외출 금지라는 족쇄는

이 경쾌한 젊음으로의 변신 상황극을 쉽사리 한여름밤의 꿈 정도로 한계짓게 만든다.

 

 

"몽키 비즈니스"는 퇴행성 젊음병이라는 진단서가 배부되어도 좋을 가난한 관념의 소산이면서

결국 그 젊음이 도착한 장소에 아기를 배치시킴으로서 오히려 출산의 부재를 암시하는 실험실의 불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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