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하워드 혹스 4 - 무법자

S 컷과송 0 59 0 0

아래 글은 2011년 6월에 쓴 것을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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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그를 14번 만날 수 있었다.

​하워드 혹스는 1896년 5월에 출생하여 1977년 12월에 사망했다.

 

4. 무법자 The Outlaw (1943) :  웨스턴의 ‘고하토’ 그리고 오직 제인 러셀을 위한 한 컷

 

영화 포털에서 검색되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는 모두 47편이지만,

그 중 6편은 'uncredited'이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하워드 혹스는 모든 할리우드 장르의 달인으로서

당시의 동료 감독이 연출하기 어렵거나 사정이 생겨서 현장에 못 나올 경우에

대신 나가서 해당 시퀀스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여 본편을 빛나게 한 능력자였다.

하지만, 아래 작품과 같이 제작자의 입김에 의해 연출 중간에 손을 뗀 사례도 있다.

 

본편 "무법자"는 하워드 혹스가 2주를 촬영했으나, 이후 제작자 하워드 휴즈가 직접 연출했다.

이 경우 본편을 하워드 혹스의 영화 계보 안에 넣어야하는 가는 애매한 면이 있거니와

전체적인 얼개가 하워드 혹스의 웨스턴 안에 넣기에는 다소 조각이 어긋나는 부분도 보인다.

제작자 하워드 휴즈는 이미 마틴 스콜세즈의 "에비에이터(2004)"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본편 안에서 하워드 휴즈의 손길은 하워드 혹스의 원본 안에서 자신이 상상하는

여성의 섹스어필에 대한 과잉을 당대의 검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영했다는 점에서  크개 드러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인 러셀"이라는 여배우에 대한 초점화된 카메라의 눈길에서 보인다.

3명의 남자 총잡이 악당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카메라는 요소 공간에 제인 러셀을 위한 시간을 부여한다.

가령, 클로즈업을 넘어서서 제인 러셀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성적인 암시를 상상 너머로 안내하는 식이다.

 

영화의 기본 구조는 기존의 하워드 혹스적 세계 안에서 활동하는데,

무법자 총잡이 3인이라는 전문가 집단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죽음 충동을 과시하며

그들 간에 흐르는 부자 - 동성애 관계를 섹시한 여성을 방패막이 기호로 사용하여 은폐시키는 틀 안에서

형식적으로 스크루볼 코메디 장르식 속임수의 물레방아를 밟아서 관객을 다소 매혹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러셀이라는 모호한 성적 위치가 혹스적 세계로 귀가하기에는 만만찮은 장벽이 되기도 한다.

 

오시마 나기사의 유작이 될 여지가 보이는 "고하토(1999)"가

거의 60여년전에 웨스턴이라는 공간안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주는 영화 "무법자"에서

실제로 위반(OUT)되는 법(Law)는 표면적으로는 사내들간의 의리이지만,

아주 얇게 덮여진 한꺼풀을 벗겨보면 그 즉시 남성 동성애 집단 간의 분열이 드러난다.

 

"고하토"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들이닥친 사무라이 집단 내부의 동성애의 상흔을 솟아올린다면

"무법자"는 단 세명의 사내를 통해서 서부극 신화의 무법자들의 게이 성향을 나즈막히 고백함으로서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으례 그러했듯이 건국 신화 자체를 남성 집단의 우월한 취향으로 보수화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여성이나 그 외 타자의 위치들은 거의 소비성 기호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히어로 무비가 그러하듯이 웨스턴 역시 건국 신화라는 지위 아래서 남성 집단을 상승시키는데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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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웨스턴이 지시하는 실제 공간은 19세기 중후반의 북아메리카의 서부 지역일 것이다.

무법자, 보안관, 순회 판사, 아메리칸 원주민, 기병대, 타운, 술집 여종업원과 차분한 농부의 아낙 등등은

황량한 사막과 먼지더미가 굴러가는 마을, 역마차와 기차, 소규모 전쟁과 일대일 대결로 미화된다.

위 나열된 단어에서 실질적으로 남성 집단을 가장 굳건히 하는 요소는 권총 대결인데,

이는 마치 유럽 귀족들 사이의 대결을 웨스턴이라는 신화로 옮겨와 미국을 대등 차별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재밌는 것은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대결은 흔히 명예와 사랑 등의 이유로 간담과 정확도에서 승부가 가려진다면

웨스턴의 그것은 불법을 응징하는 정의의 권력이라는 이름일 경우가 다수로서 빠르기가 정확도를 능가할 때가 많다.

19세기 유럽의 발전을 20세기의 미국이 이미 따라잡았음을 문화적으로 자부하려는 의중이 다분하다.

 

영화는 어색하게도 서로 공간을 달리하는 영화 사상 수차례 작품화된 서부의 무법자 3인을 같이 다룬다.

"OK 목장의 결투(1957)"에서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와 같이 활약했던 도박사 총잡이 닥 할러데이를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 Billy The Kid(1973)" 원제 속 두 남자 주인공과 같이 위치시킨다.

이러한 기이한 혼합에 대해서 하워드 휴즈의 기행을 유추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영화 사상 유명한 인물들을 한 곳에 모이도록 하는 진지한 패러디극으로의 가치까지는 인정할만하다.

게다가, 본편은 닥 할러데이와 빌리 더 키드를 동성애적 유사 부자 관계로 엮어주지 않는가말이다.

 

오프닝의 위 시퀀스에서 꽃미남 청년 총잡이의 등장으로

빌리 더 키드의 역할을 완전히 신인인 잭 부어텔(당시 26살)이 데뷔한다.

그의 외모는 명백히 양성애적 우월한 미모를 과시하는데,

실제 영화 속 조연의 입을 통해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고하토"에서 꽃미남 사무라이로 신인 마츠다 류헤이가 당시 16세로 데뷔한 충격이 바로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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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히 말하자면, 세 명의 남성 총잡이가 주인공인 본편은 실제로는 오직 제인 러셀을 위한 작품이다.

하워드 휴즈의 수많은 로맨스의 대상 중 하나였던 제인 러셀은 아직도 잠재적으로 보수화된 종교 사회 분위기 안에서

분출되는 성적 이미지를 D컵이라는 거대 가슴을 무기로 영화 자체를 완전히 망각할만한 매력을 보인다.

연기 자체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어설픈 동선들이 답답하지만,

카메라는 적극적으로 오직 제인 러셀의 아메리카 비너스적인 육체를 향유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위 시퀀스는 영화 시네마천국의 라스트 시퀀스였던 '키세스'의 두번째 편집 숏에서 등장하는 장면으로

제인 러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이후 점점 더 확대시키며 그녀의 관능적인 눈과 입술로 관객을 덮친다.

영화에서 단 두 곳의 정점을 꼽자면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숏은 오래동안 할리우드 남성 시선권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제인 폰다의 "바바렐라(1968)"의 유명한 오프닝과 쌍벽을 이룬다고 하겠다.

하기사, 할리우드가 여성을 남성의 시선 아래 놀잇감으로 버려둔 환락이 한두가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 곳곳에 그녀는 남자 주인공을 앞서서 말을 달리거나 혼자 무기력하게 묶이거나

매력적인 남성에게 순식간에 무너지는 캐릭터로 일관함으로서 일종의 보상 매체로서 기능한다.

 

올해 3월 1일에 89세를 일기로 영면한 제인 러셀은 당시 20살로 여주인공으로 바로 데뷔하였고,

하워드 휴즈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카메라의 성상품화된 시선을 적극적으로 자신을 담아내었다.

엄청난 가슴의 공세와 이어지는 검열 문제로 영화는 1941년에 제작되었으나 1943년에 개봉되었으나,

이후 그녀는 리타 헤이워즈와 더불어 2차 대전 군장병의 브로마이드 사진의 우상으로 기억되는 핀업걸이 되고.

마릴린 먼로와 더불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서 같이 공연한 이후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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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사이의 한 여자 , 흔히들 삼각관계라고 착각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 영화 속 두 남자(닥 할러데이와 빌리 더 키드)에게는 제인 러셀은 그 자체로 거의 무존재에 가깝다.

똑똑하고 충직한 애마와 교환할 정도의 가치도 그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두 남자가 서로 차지하려는 말은 다름 아닌 남성이 가져야하는 남근 기호로서

그것은 가능하면 나누어지는 것조차 가능한 집단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부가적인 기호는 입으로 말아 피는 담배 역시도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제인 러셀과 같은 우월한 섹시함의 여성조차도 남성 동성 사회를 위협하고 붕괴시키는 기호로서 기능하기보다

그저 두 사람 사이의 우연한 공통점(같은 취향의 여성을 사귄다.)에 머무를 뿐,

그녀 자신이 두 남자에게 거세 위협을 주는 잠재적인 분열자로서 배정되지 않고

그저 남근을 가진 남자의 양성애적 동정에 자신을 내맡기는 가련한 신세에 머문다.

하지만, 역으로 보자면 그나마 제인 러셀이었기에 덜 측은해 보이고 간택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싶은 오독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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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바 있는 40년대 명조연배우인 토마스 미첼이 연기한 팻 가렛은 배신당한 게이 역할을 명백하게 연상시킨다.

영화 속 두 개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토마스 미첼-팻 가렛은 그의 파트너였던 닥 할러데이에게

단지 예전 동료로서의 의리 이상을 넘어서는 동성애적 암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사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한다.

아마 대사만큼이나 그가 권총을 다룰 수 있었다면 능히 그는 서부 최고의 총잡이가 되었을 정도이다.

게다가, 전술한 바 있듯이 토마스 미첼의 투박한 외모는 빌리 더 키드의 젊은 미모와 확연히 비교된다.  

 

물론, 닥 할러데이와 빌리 더 키드라는 두 남자 사이는 대사 "SON"에서 보여지듯이 유사 부자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붉은 강"에서 존 웨인-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오이디푸스적 신화와는 다른 단순한 동성애 심리로 읽혀지는데

이는 위 장면에서도 불 수 있듯이 이들이 최후의 대결을 마다하고 서로에게 말을 나누어 타기로 타협하면서

상처를 입은 이후 손을 맞잡은 어색한 결말에서 확인된다.

 

물론, 당시의 보수적인 분위기 안에서 이는 허가되지 않으니 닥 할러데이는 응징되어야한다.

그리고 꽃미남과 풍만녀는 방해없이 멀리 석양으로 떠나는 이성애적 종말을 갖추어야한다.

이는 불완전한 해피 엔딩이며 관객을 위한 봉사 정신에 충만한 봉합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후 모든 서부극 내의 버디 장르들은 모두 동성애적 자장에서 결코 벗어나기 힘들다.

 

닥 할러데이 역할을 맡은 영화사 초기의 명배우 중 한 명인 배우 월터 휴스턴은

아들이 감독 존 휴스턴, 손녀가 안젤리카 휴스턴으로 할리우드 영화 가문 중 하나이다.

그는 본편에서 젊은 총잡이에게 이끌리는 노년한 총잡이를 쉰에 가까운 나이로 편안히 연기한다.

 

영화가 별도로 제기하는 재미를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극히 어색하지만 스크루볼 코메디 장르가 매번 상황이 주는 서스펜스에 의지하듯이

본편 역시 웨스턴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관계의 우연과 대결의 연기 속에서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한다.

쫓고 쫓기는 설정 자체보다는 이들이 처한 역전과 재역전의 줄기들이 불필요한 잔재미에 몰두하고 있다.

 

 

"무법자"는 하워드 휴즈-제인 러셀이라는 이름 하에서 기억될 불안한 이성애의 봉합 로맨스이며

결코 동성애적 성윤리를 허용하지 못할 진정한 무법의 위치를 과신하는 코믹한 게이 응징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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