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

영화감상평

[리뷰]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

28 율Elsa 8 2519 0

 

지독한 염세에서 발견한 신적 구원. 현란하고 우아하고 거룩한 묵시록!

평점 ★★★★★

 

뒤늦게 찾아온 작품이다. 2006년에 제작되었지만 국내 스크린 개봉은 10년만에 하게 되었다. 2006년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의 부진을 신경 쓴 이유인지 한국에선 DVD시장으로 바로 직행했다. 하지만 전 세계 영화팬들로부터 SF영화의 전설 중 하나라는 호칭을 부여받게 되었고 평론가들도 동시에 열광했다. 그것이 이번 (재개봉이 아닌) 개봉의 의의일 것이다. 이런 걸작으로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것과 국내 영화팬들에게 스크린으로 영접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스크린으로 보지는 못하였지만, 국내 개봉을 해 준 배급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2027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디스토피아를 구축하기 위한 형식적인 틀일 뿐 시간적 배경이 런닝타임 내내 부각되진 않는다. 공간적 배경도 마찬가지다. '런던'이란 공간도 혼란스러운 세계 정서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일 뿐이며 그 이상의 의미 역시 지니지 않는다.(왜 하필 런던인가에 대한 질문에선 이렇게 답변할 수 있다. 본 영화의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 P. D. 제임스는 영국의 여류 작가였다.) 이러한 시간성과 공간성의 부재는 끊임 없이 작품에 '현재성'을 부여한다. 또는 시간을 초월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10년 전과 현재(2016년)의 국제적인 현황과 정세가 똑같지는 않지만 <칠드런 오브 맨>은 사회성을 겸비한 작품으로서 '현재'에도 똑같이 관객에게 영향을 준다. (덧붙여서 원작 소설이 1992년에 쓰여졌다는 것을 감안하다면 더욱 놀랍다.) 아니면 국제 정세의 변화가 미세한 것인지는 몰라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과 원작의 문제 의식은 국제적 폐부를 수면으로 끌어내 관객의 살과 맞닿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현재성을 기반으로 현실성을 구축한다. 사실 '현실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의 카메라 워크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수많은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상징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이것이 어느 익숙한 클리셰로 머물지 않는 것은 상당히 도발적인 비전과 신성을 탁월하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이 일궈낸 기술적 성취에 대해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특정 위기 장면마다 컷을 분할하지 않고 최대한 컷을 하나로 줄이면서 현장감을 높이려 했다. 이미 12분의 롱테이크 장면은 유명한 대표적 예다. 이 너무나도 놀라운 장면에 녹아든 탐미는 양식적이지만 그것이 과장된 수사로는 보이진 않는다. 스펙터클을 내비치려기보다는 캐릭터의 시선을 관객에게 대변함으로서 그 안에 캐릭터의 드라마를 온전히 녹아낸다. 이런 현장감과 드라마의 조합은 스펙터클과 만나서 시너지를 내게 되는데 이는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영화가 캐릭터에 이입할 수밖에 없게 되는 입체성을 갖는 이유다. 그렇게 신성도 거부감 없이 납득이 되는 절박함과 진실성을 구축한다. 사운드도 빼먹으면 당연히 아쉽겠지만 상당한 리얼리티를 구축한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시각적인 면에서도 <칠드런 오브 맨>은 '현실'과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 미래를 형식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시의 풍경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 리콜>처럼 미래가 탈현실의 풍경으로 머물기보다는 <칠드런 오브 맨>은 현재와 밀접한 풍경에 머물기를 택한다. 영화가 제작된 년도와 영화 내부의 시간 사이에 20년이라는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영화가 제작된 년도, 즉 현재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는 세계 최연소 인간이 19살에 사망했다는 뉴스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2027년이라는 시간과 '최연소 인간'이 태어난 년도를 유추해보면 2006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지금 현재로부터 일어날 수도 있는 설정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영화가 시사하고자 하는 점이 현재의 문제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사회 계급에 따른 차별, 그리고 이민자 문제와 자본주의적 문제까지 아우르며 국가적 차원의 윤리적 문제를 끌어내보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영화는 그러한 '현재의 현실'을 디스토피아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제작되는 순간 그리고 관객이 영화를 접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 작용하는 '현재의 현실성'은 시간을 초월하고 아우르며 지금 이 시간과 세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통찰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 디스토피아라는 것이다. 불임(不妊)이라는 상상적 전제가 붙어있긴 하지만 그것은 문제를 끌어내려는 심지일 뿐이다.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들은 많았지만 아직까지는 와닿지 않은 과학 기술의 이야기를 다루거나 외계인의 침공, 세계 3차대전이나 자원 분쟁 등의 국제 갈등으로 인해 봉건제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회귀하게 된 인간들의 사회를 주로 다루어왔다.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작용한 상상으로 부터 시작된 작품들이다. 하지만 <칠드런 오브 맨>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현 위치에서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어떻게 과거에서 현재, 미래까지 대를 이어서 행복을 추구하며 생존할 수 있었을까. 본능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만나 생물학적으로 탄생한 태아를 잉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여성의 임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잉태되었고 태어났다. 그렇게 동시에 인간은 가족을 꾸리면서 삶의 유의미함을 발견하며 안정을 취한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불임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면? 당연히 인류는 시간이 지나며 멸종할 수 밖에 없다. 거기서 삶의 안정은 파괴된다. 왜냐하면 삶은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인 회의를 통하여 무의미하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꽉꽉 메우고 있는 정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에 대해 체념하고 회의적이며 더 나아가 자기파괴적이고 염세적이다. 테러가 비일비재하고 무차별적 폭력이 성행하고 있으며 자살약까지 공공연히 판매되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죽음에 무감각하다. 마치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냉정한 이성과 파괴적인 절망에 빠져 있는 런던의 풍경은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대변한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살펴보면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찾을 수가 있는데 '불임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처벌'이라고 소리높여 말한다. 사실 지나가는 장면에 가깝겠지만 이 장면은 주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인류의 불임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들지도 않고 더군다나 설명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인간 프로젝트'가 소문으로 떠도는 것은 아직 인류가 불임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에 대해서 초현실을 끌고 온다고 볼 수 있다. 이성에서 진리를 찾을 수 없자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존재론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데 더군다나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재앙으로부터 인간 스스로가 구제될 수 없다는 점을 하부에 두고 이끌어낸다. 그 점 역시 흥미로운 점이다.

 

영화의 초현실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테오(클라이브 오웬)의 지인인 한 미술수집가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피에타>를 찾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피에타/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후로 사흘 만에 부활하는 과정를 암묵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데 영화 내에서는 그런 조각상이 파괴되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더불어서 아이러니한 것이 좀 전에 영화는 재앙의 이유로 신을 끌고왔는데 여기서는 신의 부재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나? <칠드런 오브 맨>은 종교적인 상징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피에타>는 제목 그대로 신의 구원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에타>가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춤으로서 신적 구원이 사라졌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주인공이나 미술수집가나 구원(<피에타>)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이미 절망감으로 인하여 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적인 이유는 '관용으로서의 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갑자기 신이 등장한다. 흑인 매춘부 소녀 '키'에게 임신이 된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심지어 어떤 남자의 아기인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영화는 전혀 답을 주지 않는다. 영화도 모르는 것 같다. 단지 기적이라는 것이다. 아기가 없는 사회에서 아기는 인류의 미래를 상징하고 자연스레 구원과 희망을 상징한다. (테오가 키를 도와 배 'Tomorrow 호'-DVD에 수록된 자막으로는 '미래 호'로 번역되었다-를 향해 가는 여정은 미래의 구원을 향한 현재의 여정이다.) 그 희망은 비이성적인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다. 그 무엇이 신이라고 영화가 명확하게 인장을 새기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 후반부에 아기를 본 군인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성호를 긋는 장면이다. 아기를 오랜만에 또는 처음 보게 된 신비함이든 희망을 발견한다는 경외이든 간에 성호를 긋는다는 것은 신이 있음을 전제로 두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는 기적이 우연이라고 말을 하진 않는다. 여기서 영화는 신성(神聖)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왜 런던인이 아니라 매춘부 이민자였을까? 여기서 계급의 문제가 나타난다. 영화 내의 런던인들은 리민자를 배척해야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런던인'과 '이민자', 두 계급의 경계는 사실 희미하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한 공동체로 묶어놓으면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오와 키가 이민자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이민자들이 탄 버스를 타게 되는데 거기에 한 경찰이 탑승하여 강제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테오가 런던인임을 알지 못하는 더러 동시에 테오에게도 이민자들과 같은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웃긴 대목인데 여기서 영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계급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굳이 차별점을 지적하며 배척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가를 시사하고 풍자한다. 인간은 왜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본능적인 탐구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렇게 설파한다. "가난한 이민자이고 게다가 매춘부라고 해서 임신하지 못할 근거가 있나?" 어차피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 사회운동가였던 이력을 비추어봤을 때 테오의 심리는 다수를 향한 선의로 작동한다. 끝에 가서는 테오가 희생되는데 여기서 영화는 미래를 위해선 현재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불가피한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테오의 인간적인 행동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일깨워지는 대목이다. 어쩌면 그의 행동 덕분에 테오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기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더 큰 구원을 신에게 갈구하고 그것을 이뤄냈을지도 모르겠다. <칠드런 오브 맨>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마치 이 말을 신에게 대변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아직 존재한다고. 영화가 끝나고 아이들의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일 것이다.

 

- 201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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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22 박해원  
희대의 역작인데... 어찌 한국 개봉을 하지 않았을까요.
메시지가 너무 무거웠나..

추카추카 36 Lucky Point!

34 진트  
본지  좀  되서 ..  기억이  가물가물하긴한데

  영화  꽤  괜찮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27 블루와인  
저도 제목은 기억이 나는데 봤는지가 기억이 .. ...

요즘 군대는 영화 볼 시간 너무 많은거 아닙니까??
아 빡센 이기자같은데 2년 9개월도 짧다고 좋다고 했던 울막내 불쌍해라~
22 박해원  
잔인하십니다ㅠ 저도 군대에서 영화 300편쯤 봤어요ㅜ
27 블루와인  
어머나 ㅋㅋ 아따!
간만에 한번 헷갈렸구먼 예비군 아저씨~
27 블루와인  
아니 내가 헷갈린게 아니네 !!!
진짜 신기해서 그런건데. 
해원오빠는 공익 이.  아니고 ^^ 취사라고 했던가?
아 더 놀리다는 진짜 공공의 적이 되어버릴 거 같아서~~

보고 싶은 영화 많이 보고 다치지만 않고 무사히 나오길!!
난 정말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어린 나이에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
22 박해원  
저 공군 군견소대인데ㅠㅜㅜ 전부 잘못 짚으신... 잉잉징징.
형평성때문에 군말없이 가는 거지 사실상... 필수적인 경험인지 의구심이 듭니다ㅋㅋ
S 컷과송  
본편의 엔딩과 후속작 <그래비티>의 지구 귀환 장면의 성적 기호를 연결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습니다. 그의 신작에도 동일한 구조적/개인적 재앙와 구원 혹은 탈피가 반복될지 궁금하네요.

추카추카 45 Lucky 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