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Elle, 2016)

영화감상평

엘르 (Ell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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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간혹 그들의 자유분방함에 당혹스러울때가 있었습니다.

사랑과 이별 질투 욕망등 갖가지 인간의 감정이 제가 익히 알고있는 그것과 사뭇 다른 결로 표현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죠.

 

영화 '엘르 (Elle, 2016)'의 주인공 미쉘(이자벨 위뻬르)은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게임회사의 사장이고 이혼한 남편과 친구처럼 지내며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안나의 남편과 불륜중입니다. 영화 초반의 충격적인 강간직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깨진 물건들을 청소하고 목욕을 하고는 일상으로 돌아가지요. 자립할 능력이 부족한 아들의 아이를 가진 까칠한 예비 며느리가 마음에 안들지만 쿨하게 집 구하는데 돈을 보태주는가 하면 강간범의 문자메시지에도 당황하지않고 후추스프레이와 손도끼를 쇼핑하는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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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미쉘이란 캐릭터는 강간씬에서의 비명을 제외하고는 항상 차분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쿨한 분위기와 표정을 유지합니다. 사실 캐릭터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어떻게 저럴수가 있나 하는 의아함이 든것도 사실인데 이내 더 충격적인 과거가 드러남에따라 의아함은 호기심으로 바뀝니다. 관객인 제 입장에서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영화상에서는 상당히 차분하게 과거를 서술하지요.

 

미쉘의 친아버지는 수십년전 어느날 뚜렷한 이유없이 아이들을 포함한 이웃을 대량살해한 살인범이자 종신형으로 수감된 상태였습니다. 범행날 아버지가 옷가지를 태우는 현장에서 찍힌 어린시절의 미쉘의 사진이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그녀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어왔지요. 하지만 당혹스러울만치 의연하게, 마치 타인의 사건인듯 아버지의 존재를 무시하며 살아왔고, 살아갑니다.

 

그녀가 만드는 게임의 폭력성과 플래시백되다 난데없이 강간범을 재떨이로 무참히 짓이기는-살짝 관객의 뒤통수를치는- 미쉘의 상상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일상적인 표정뒤에 감춰진 어떤 광기를 짐작하게 합니다. 혼자서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며 단서를 추적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큰일이 날것같아 조마조마하게 화면속의 그녀를 좇아가던 찰라 그녀안에 감춰진 광기는 성적인 일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이웃집 남자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며 자위하는 그녀를 보자면 충격적인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상하리만치 쉽게 극복한 인물이 아닌, 되려 억눌린 욕망에 차라리 인간적인-이해해볼만한 인물로 거리가 좁혀지게됩니다.

 

하지만 이 거리는 강간범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부터 다시 멀어집니다. 두번째 강간시도에서 강간범의 손에 상해를 입히고 마스크를 벗겨 이웃집 남자임을 확인했지만 그녀는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가지고 놉니다.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선 성관계를 할 수 없는 이웃집 남자-강간범과 의도적인 밀당을 하다 결국엔 이를 목격한 아들이 남자를 죽이면서 사건은 일단락 됩니다. 경찰앞에서 천연덕 스럽게 이웃집 남자를 의심하지 못했다는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에 의해 그동안 찾지않았던 아버지를 면회갔다가 딸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감옥에서 자살한 아버지의 시신에 "내가 오는것 만으로 당신을 죽였다"고 속삭이는 그녀를 보면서 이유가 밝혀지지않은 아버지의 범행에 그녀가 모종의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까지 했습니다만 그렇게 까지 해석하면 너무 나가는 거겠지요...

 

"신앙이 있으니 괜찮다"며 미소짓는 강간범의 아내-이웃집 여자의 "잠시나마 당신이 남편에게 필요한것을 줄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라는 말에 잠시나마 인간적인 표정-찰나의 당혹감을 보인 미쉘을 소시오패스로 보는건 너무 잔인한 거라 결론지었습니다. 이웃집 여자처럼 기이한 형태로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남편과 바람핀 친구에게 다시 돌아온 안나를 보고 프랑스인들의 쿨한 자유로움에 다시한번 감탄한것은 덤이구요.

 

스스로의 욕망에 함몰된 자기파괴적인 '피아니스트'의 그녀만큼 연민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자벨 위뻬르의 연기와 매력에 흠뻑빠져버린 영화였습니다. 니콜 키드먼/다이안 레인/줄리안 무어/케이트 블란쳇/케이트 윈슬렛/마리옹 꼬띠아르/샤론 스톤 등 쟁쟁한 여우들이 스크립트만 보고 거절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지요. 한동한 잊고 있었던 폴 버호벤 감독의 더 섬세해지고 깊어진 연출에 반가움도 컸구요. 이자벨 위뻬르 여사님은 60이 넘은 나이에도...여전히 매혹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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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anks to pl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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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mments
36 GuyPearce  
할님께서... 장문의 게시물을... 수고하셨습니다~^^
34 HAL12  
36 GuyPearce  
할님~!!! 저 짤은 제게 야유하려구... 구한 짤이잖아요~
약올리는 거구만... 뭘 하트를 날리시지~ㅋㅋㅋㅋㅋㅋㅋ
34 HAL12  
비뚤어진 마음은 사랑으로...
36 GuyPearce  
S 컷과송  
폴 베호벤이 회춘하시려는 조짐이 역력합니다. 신작을 바로 보셨군요...
34 HAL12  
뭔가 거장의 냄새가 솔솔~
34 yong643  
좋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34 HAL12  
감사합니다...
34 진트  
잘 읽고 갑니다 

  이 글을 보고나니  영화에 대한  흥미가  더  생기는거같네요
34 HAL12  
캐릭터만 좇아가도 영화가 금방 끝나버린 흥미로운 영화였어요~
29 만리향  
글쎄요... 프랑스 영활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 초반 흥미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겠더군요
사실, 생각도 못한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호기심에 끝까지 봤읍니다만.....
영화가 끝나고는 참으로 허무하기 그지 없더군요
괜히 화가 나기까지..... 이런 결말 볼려고 2시간이나 넘게 참고 봤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모든 사건의 시작은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넣고... 그 끝은 흐지부지로 끝나버리고
그네들의 생각과 사고를 이해하고자 했지만 나로서는....  참 그게 힘들더군요

어제 봤는데... 참으로 아까운 일요일 보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읍니다 ㅎ^

추카추카 25 Lucky Point!

34 HAL12  
초반의 사건이 쑥~하고 들어오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사건 직후 미쉘의 대처를 보면서 온 신경이 캐릭터에 집중되었어요. 도대체 왜? 어떻게 저럴수가...하는 답을 찾기위해 그녀를 좇느라 다른건 신경쓸 여유도 없었지요. 영화가 끝나고 보니 미쉘은 강간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어디서도 주도권을 놓친 적이 없는 가해자로 보이더군요.  사실 강간사건은 미쉘에게 있어서도 이 영화안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아닌듯 합니다.아버지의 범죄처럼 자신과는 선을 긋고 친구 남편과의 불륜처럼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작은 도구로 보였습니다.

전 아들에게 의도적으로 범인을 제거할 빌미를 준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아버지의 범죄와의 연관성까지 의심했지만 그런 소시오패스는 아닌걸로 결론냈죠. 캐릭터의 이해까지는 못했지만 반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어요.

그나저나 아까운 일요일에 허무하게 보셨다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