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행복해 서연아, 이 말밖엔 해줄 게 없네
조지훈 作 사모라는 시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기쁨 아니면 슬픔..중략..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승민도 그랬지만 과연 그 시절을 지나면서 그런 애절한 경험 한번쯤 겪어보지 못한 수컷이
얼마나 있으랴.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그런 female이 있었던 것도 같다.
아니면 말고.
어쨌든 영화를 보는 내내 내 기억이 움직였다. 그것도 아주 바쁘게.
애틋하고 아련하고 눈물겹게 두 시간이 지나갔다.
사랑했던 그녀,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젊은 날의 그 한사람.
하지만 이젠 남은 건 기억뿐이고 그나마 그 기억과 나 사이엔 조금씩 틈이 벌어져
손을 뻗어도 이젠 닿지 않을 거리, 저만치 비켜서있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런 기억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기억엔 나이가 없다.
세월이 흘러 틈도 생기고 어느 부분은 변색의 기운이 감돌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라는 지점에 내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말이다.
승민을 찾아오기까지 서연이 지나왔던 시간들은
내가 몰라도 좋았을 시간이었으리라.
서연은 나를 잊지 않았다. 나를 찾아온 그 마음은 그러나 어떤 마음이었을까.
단순 리멤버는 아니었을 터.
술에 취해 '에이 c8 jot같애'를 연발하는 서연의 등 뒤엔
정말 c8 jot같은 시간이 아직도 덕지덕지 붙어
그 jot같은 시간은 종료되지 않은 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내 뇌를 흔든다.
정말 그랬다면 서연에게 사과하고 싶다.
"미안해 서연아, 내가 널 못 알아봐서."
병든 아버지,
이혼녀의 삶,
더는 나아갈 곳도 없어보이는 세상에서
서연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제주도 해안을 배경으로 기억의 습작이 스크린을 채울 때,
난 정말 슬펐어.. 그 순간 서연이 되었거든.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기쁨 아니면 슬픔이라지만
여자에게 있어 남자는?
응?
여자에게 남자는 무엇이냐고.
답하라, 조지훈.
스크린에선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난 서연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기억 속의 무엇이든 난 완전하길 바라니까.
지나친 욕심일지라도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니까.
정말 이 말밖엔 해줄 게 없어서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행복해 서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