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설국열차

영화감상평

달려라 설국열차

1 중탄산나트륨 4 1723 2

더러운 3등칸, 아니 무등칸. 무존재. 비존재. 아니 그 이하들의 칸, 꼬리칸.

꼬리칸에서 시작된 영화 설국열차.

 

사실 시작은 좀 아쉽다.

사람들이 왜 설국열차를 타야만했는지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었더라면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 좀더 많은 도움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렇더라도 꼬리칸의 사연이 중간에라도 좀 나와줬다면 했는데

결국 대사로 넘어가버린 데다 그것마저도 충분치 못했다.

 

꼬리칸으로 달려드는 비존재, 천한 것(?)들의 절규가 영화의 시작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무튼 달린다, 설국열차.

 

합성프로틴에 질리고 무장한 병력들 틈에서 노란 가운같은 걸 걸치고 나타난 여인에게

생떼같은 아이들이 납치되는 지옥을 겪는 것도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그들 틈에서

강력한 반기의 기운이 감돈다.

 

열차 제국 리더 윌포드는 누구에게나 제 자리란 게 있는 건데

그걸 이탈하면 무질서가 초래되고 그 무질서는 그걸 초래한 사람들에게

죽음과 불행이라는 결과로 돌아갈뿐이라고 역설하며 제 자리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윌포드에 반기를 든 꼬리칸 피플들에게 그 말은 전의를 자극하는 '로고스'일뿐이다.

모두 다 죽이자, 엎어버리자, 우리도 인간이다!!

 

한때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기존 질서와 체계로는 도저히 현실이 요구하는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현실을 리셋,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필요한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혁명은 리셋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역설적으로 좀더 현실에 충실하게 됐다.

사람의 정신이 미완성이면 리셋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다.

혁명의 혁명을 해도, 수십만 아니 수백만명이 죽어도

사람의 정신이 미완성, 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현실의 혁명은 성공할지라도

리셋은 실패할 거란 걸 알아버린 탓이다.

 

탐욕,

인간 내면에 끈덕지게 붙어있는 본성,

그 탐욕이라는 본성을 이성의 힘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될 때까지

이 현실에서 더 끈덕지게 떼어내지 못한다면

혁명은 피만 먹고 자신은 아무 것도 내놓지 않으려 할 것이 자명하다.

 

진짜 문제는 차별, 압박, 강요된 고통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세계 속에 이미 있다는 걸 빨리 깨달을 수록

현실은 더 빠르게 달라질 거고 그럴 때 혁명은 필요한 솔루션,

리셋은 가능한 동작이 될 거다.

 

열차의 중단이

열차밖에도 살아있는 생물이 있다는 걸 가르쳐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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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26 naiman  
잘 읽었습니다....
28 악바리의웃음  
내두 잘 읽었습니다....
23 자막맨  
잘 읽었습니다..
1 sldrl123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