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 : 다시는 현실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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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 : 다시는 현실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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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본 시리즈를 꼼꼼히 복습하고 극장으로 달려간 본 성애자는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좋긴 한데.....뭔가 좀 아쉬워", 웅성거리던 소문은 사실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화제의 주인공은 제이슨 본도 맷 데이먼도 아니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그녀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다. (적어도 영화 정모 남성 회원들은 그랬다. ㅋㅋ)

 

 

 프로는 말이 없다. 그런데 다들 말이 너무 많았다. (본 성공신화의 비결이었던) '과묵하고 순결한 몸'의 액션보다 말이 앞섰다. 제이슨 본도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도 악당 괴수 로버트 드웨이(토미 리 존스)도 특히나 저격수(뱅상 카셀)도 말이 너무 많았다. 유일한 위안거리는 (그녀도 전편에 비해 말은 많았지만) 니키(줄리아 스타일스)의 여전한 존재감 정도랄까, 본을 바라보는 아련하고 슬픈 눈동자 정도랄까..... 그 묵직하고 존멋이던 전편의 트레드스톤 킬러들-클라이브 오웬(교수 역), 칼 어번(커릴 역), 조이 앤사(데쉬 역), 에드가 라미레즈(파즈 역)-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만큼 암살자 뱅상 카셀은 수다쟁이였다. 본의 정적인 로버트 드웨이 역의 토미 리 존스는 또 어떤가. 이 입만 살아있는 악당은 토미 리 존의 (어느 작품이나 초지일관, 한국 배우 계의 전설인) 심양홍급 연(ctrl + C, ctrl + V)로 더욱 빛난다.

 

 

 9년 세월은 제이슨 본을 아저씨'로 만들었으며(여전히 멋지긴 하지만?), 폴 그린그래스를 평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 무상한 세월이여! 스케일은 본의 몸집만큼 커지고 캐스팅에, 카 액션 때 박살 나는 자동차 대수(약 180대)에, 라스베가스의 밤거리 같은 영화의 스타일은 더 화려하고 더 세련돼졌지만 <제이슨 본>은본 제국의 유산 위에 세워진 공허, 동어반복의 '껍데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정점은 3편 <본 얼티메이텀>이 이미 매조지 해 찍었다. 9년 만의 컴백에 전작의 신화에 짓눌린 강박, 전작들과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채 또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몸집만 불리는 차선을 택했다. 원작이 3부로 끝이 나선가? 3부의 끝 뒤에 엉성하게 짜 맞춘 이야기들은 억지 춘향식(아버지의 죽음을 끌어들이고 에드워드 스노든 모티브를 끌어들인)이어서 아무리 액션이 화려해도 아무리 많은 차가 부서져도 영화 전체를 속 빈 강정처럼 만들어 버렸다. 예를 들면 이런 것 : 니키는 왜 뜬금없이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CIA를 해킹해서 본 아버지의 정보를 캐낸 것인가? 싸움닭이 된 본을 영화계에 복귀시키기 위해서? 응? 

 

 

 

 

 

 

 파멜라 랜디의 부재도 예상외의 큰 구멍이었다. <제이슨 본>의 구조적 결함을 야기한 가장 심각한 미스 캐스팅은 바로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누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말했다. 여배우가 너무 예뻐서 영화에 몰입이 안 돼, 라고. (미스캐스팅 2순위는 당연히 복제 연기의 대가 토미 리 존스, 3순위는 늙고 느물거리고 이미 얼굴이 팔려 신선도가 떨어지는 올드스쿨 킬러 뱅상 카셀!) 전작에서의 조안 알렌(파멜라 랜디 역)이 신의 한 수였다면, 파멜라 랜디의 그림자(혹은 다운 그레이드 버전의 복제 캐릭터)에 불과한 '헤더 리'는 장고 끝에 나온 악수(惡手)였다. 선과 악을 겸비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신(新) 캐릭터를 표방했지만, 결과는 뭔가 어설프고 스테레오 타입인 권력욕의 화신일 뿐. 파멜라 랜디와 니키라는 보조 캐릭터가 완벽했기에 슈프리머시와 얼티메이텀의 본은 완성형이 될 수 있었다. 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군도 아닌 어정쩡한 캐릭터, 특히나 전작에서의 '모성애와 직관으로 무장한 여성 전사'라는 루틴을 깨버린 이 새로운 캐릭터는 9년이라는 시간의 장벽 앞에 선 본의 귀환에 레드 카펫을 깔아주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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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는 가짜, 파멜라 랜디와 니키 파슨스는 진짜

 

 

 

 

 본 시리즈 성공 신화의 근간엔 강력한 뼈대로서의 영화적 쾌감 세 가지 : 1) 잘 짜여진 플래시 몹을 방불케 하는 군중 속 추격전(3편 워털루 역 광장 시퀀스가 최고), 2) <프렌치 커넥션>(1971)의 적자(嫡子)랄 수 있는 긴박감 터지는 자동차 추격전(우열을 가릴 수 없는 2편과 3편), 3) 한 놈이 죽어야만 끝나는, 좁은 공간 속 일대일 맞짱 액션,이 있었다. 거기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강력한 적(트레드스톤의 전사이자 동료)들이 있었다. 

 

 

 아이슬란드 시위대 시퀀스는 현란했지만(역시, <블러디 선데이, 2002>를 연출한 감독답다) 맥이 빠져있었고, 장갑차로 무식하게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카 체이싱 시퀀스는 흥이 안 났다. 뱅상 카셀과의 연기 합에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2% 부족했으며, 전편의 킬러들-교수, 커릴, 데쉬, 파즈-에 비해 너무 세련되고 너무 노쇠했다. 전편의 킬러들은 (본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초점 잃은 눈동자로 로봇처럼 맹목적 살인기계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들은 감정이 없었고 쿨-했기에 멋졌다. (난 본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어, 이게 내 일이야....스타일) 그러나 <제이슨 본>의 무명 씨 킬러 뱅상 카셀에겐 (인간의) 감정이 있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 늘 화가 난 상태였고, 본을 '반역자'라 부르며 으르렁거렸다. 개인적 복수심에 불타는 킬러는 확실히 본 시리즈의 콘셉트가 아니다. '잃어버린 기억과 자아를 찾는 스파이'란 캐릭터는 이미 3편 <본 얼티메이텀>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제이슨 본>은 완벽한 사족이며 이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시리즈였다. 그렇다. 강렬한 애정은 증오가 되는 법. 

 

 

 

 

 한 번도 자신에게 사랑을 준 적 없는 제이슨 본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던진 니키의 깊고도 슬픈 얼굴만 강렬했다. 니키 파슨스가 죽고 나자 영화는 갈피를 잃었다. 희대의 엔딩곡이자 본 시리즈의 인장이라 할 수 있는 'Extreme Ways'는 의미 없는 장면에 의미 없이 소비되었고,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어색한 표정 연기만큼이나 시리즈 중 가장 후진 엔딩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전작들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잔근육이 탄탄하게 아름다웠던 세 개의 몸이었다면, 9년 만의 복귀작은 프로틴 잔뜩 먹고 벌크-업 한 근육 덩어리 보디빌더 같았다. 비대해지고 한결 둔해진. 배신당한 애정을 진하게 담아 표현하자면, <제이슨 본>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생아'이고 '다시는 현실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첫사랑' 같은 영화다. 역시나 첫사랑은 꽃다운 스물의 빛나던 청춘으로 기억 속에 봉인해 놓는 것이 정답이다. 첫사랑을 현실로 소환하는 순간 아름다웠던 몸뚱이는 시간 속에 산화되고 만다. 나이를 먹으며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은 영화라고? 그런 건 록키 빌보아와 실버스타 스탤론 정도에게 맡겨 두자. 반가웠지만 그래도 안타까웠던, <비포 선셋>(2002)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비포 미드나잇>(2013)에선 꽤나 서글펐던, <비포 선라이즈>(1995)의 두 연인 제시'와 셀린'을 스크린이 아니라 실제로 보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팠다. 

 

 

 연정을 품은 설렘으로 만나러 갔던 <제이슨 본>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인 로마 같았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슬픈 껍데기......

 

 

 

 

 

 나는 제이슨 본을 얼티메이텀의 검푸른 바닷속에 묻어두고 극장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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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나 해맑은 맷 데이먼과 알리시아 비칸데르

 

- 이제 마흔다섯의 중년이 된 맷 데이먼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 <테이큰>의 리암 니슨과 함께 중년 액션배우 3대 천왕에 등극했다. (물론, 내 기준입니다만...)

 

- 본을 지키기 위해 니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함께 영화를 본 영화 클럽 동호인은 니키가 일찍 죽어서 속이 다 시원했다고. ㅋㅋㅋ

 

-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본 시리즈보다 007 시리즈의 본드 걸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 <왕좌의 게임> 시즌 6가 원작의 부재(아직도 쓰고 있다고, 응?)로 난항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작 소설이 3부로 끝나는 바람에 <제이슨 본>이 이렇게 엉망이 된 건 아닐까?

 

-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보긴 열심히 봤는데, 계속되는 액션 신이 주는 피로감은 전작들에 비해 더 컸다. 잘 짜인 특별한 이야기 없이 액션의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는 할리우드 (공갈빵) 스타일은 역시 공허감, 배부르게 실컷 먹은 것 같은데도 뭔가 헛헛한 공복감 같은 뒷맛을 남길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2014)만큼 엉망은 아니었지만?)

 

-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나름 아름답다. 그러나 가장 빛날 때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 특별한 기억이 평범한 추억이 되어 돌아와 몹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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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omments
26 naiman  
전 재미있게 봤는데....기대가 너무 크셨나봐요.
12 스눞  
그러게요. 첫사랑에 대한 애증입니다. ㅋㅋ 전 사실 극장 가기 전 1-3부 복습까지 하면서 열과 성을 다해 본을 영접하러 간 본 성애자거든요. ㅋㅋ
26 naiman  
그럴수 있죠...사람마다 다 시각이 제각각이니가요..ㅎㅎ
12 스눞  
재밌게 보셨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ㅎ 어짜피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기에....
저 역시 재미 없진 않않는데, 기대가 너무 컸기에 슬펐던 것 같습니다. ㅎ
10 막된장  
역시 연작 시리즈는 3편을 넘기기 어렵다는 정설을 깨긴 힘든가봅니다.
주말에 보려고 계획했었는데... 그냥 실망하기 싫어지는걸요 ㅎ
12 스눞  
주말에 본을 만나고 오셨나 모르겠습니다. ㅎㅎ
그래도 또 그게 옛정이란 게 있어서 안 보고 참기는 힘드실 듯 합니다. ㅋ

그러게요. 1-3편 모두 훌륭한 시리즈가 어디 흔하던가요.
1,2,3편만으로도 본 시리즈는 영화사에 남을 겁니다.
10 막된장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요일에 시골에서 농사 지시는 사촌형님 내외가 오셔서 못봤답니다^^.
주중 평일에 부하직원들 꼬드겨서 볼까싶은데 말입니다.
사실, 제이슨 본 시리즈 소설을 고등학교때 읽고 완전 재밌어서 미치는줄 알았던 적이 있습니다 (표현이 이상한가..)!!
원작과는 많이 다르지만 영화 3부작도 무척 재밌게 봤고 블루레이로 소장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왠지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슴이 폭폭 하려고 합니다 ㅎㅎ
29 써니04™  
그래도 첫 사랑하고 잘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확률이 희박하지만요 ㅎㅎ
12 스눞  
ㅋㅋ 그러게요. 그런 드문 경우도 있긴 하지요.
그치만 제이슨 본과의 사랑은....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 합니다. ㅎㅎㅎ
47 iratemotor  
극장서 볼지 말지 고민 중이라, 본문은 휘리릭 스킵하고 제목만 보니... ㅎㅎ
저도 1편 봤을 때가 제일 짜릿하고 짠했답니다. 2,3편보단
영화 보고 나서 다시 올게요. 기대감 낮추고 봐야 할 듯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최신작 감상평 빨리 올려주셔서
12 스눞  
차라리 본 시리즈를 보지 않고 완전 리부트 된 상태(물론, 제 뇌가요 ㅋㅋ)에서 봤다면 재밌게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 본 시리즈를 안 본 관객들(즉, 제이슨 본이 처음인 관객들)은 재밌게 봤다는 총평이 많습니다.

영화, 재미나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ㅎㅎ 다른 이의 감상평은 어차피 참고용이니까요. ㅎ
4 유니한  
감상평에 완전 공감.
개봉날에 회사 휴가내고 봤는데....
기대가 너무 컷나? 
실망하고 나옴.
그러나 전 편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재미 잇을 듯.
12 스눞  
그러게요. 그 말씀에 공감합니다.
오히려 전작들 안 보고 바로 <제이슨 본>을 처음 접한 관객이라면
재미나게 봤을 듯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ㅎ
34 하루24  
참으로 많은 분들이 호평보다는 혹평에 가까운 글들을 남겨 주시는것 같아요..

뭔가 빠진듯한 아쉬움이라고들 하데요...

전작들이 워낙 빼어나서(?) 그런가 봅니다...

잘 만들었다면...지금쯤...관객동원수 1위를 달리고 있을텐데...

뭔가 아쉬움이 남네요.....
12 스눞  
혹평이라기 보다는 아쉬움이랄까, 배신감이랄까 하는 복잡한 감정인 것 같습니다. ㅋ 본 시리즈 자체에 대한 애정이 워낙 강하니까요.
네네, 모든 것은 전작들 탓입니다. 그런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 자기가 만든 것들인데요. ㅎㅎㅎ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