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 トトロ)

영화감상평

[평]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 トトロ)

28 율Elsa 13 2538 3

상처를 쓰다듬는 포근한 손길이 만져지는, 물아일체의 판타지 걸작.

평점 ★★★★★

 

1.

<이웃집 토토로>. 지난 한 주 동안(201671일 기준) 극장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프랑코포니아>2주 전 목요일에 보고 극장을 나온 후 딱히 극장에 걸린 영화들에는 마음이 전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영화를 보게 됐다. 제작년도는 뒤죽박죽으로, 아무 영화나 골라서 보기 일쑤였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사형수 탈출하다>,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비틀즈 : 하드 데이즈 나이트> 등 여러 걸작들도 보게 되었는데 현 극장 영화들보다 훨씬 좋았다. 굳이 극장에 이것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를 보러 가야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별뜻 없다. 단지 <이웃집 토토로>가 지난 한 주동안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에 대해서는 내가 언급할 것이 전혀 없다. 나는 지브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데다가 처음으로 접한 때가 2년 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재개봉하였을 때 극장에서 뒤늦게 본 때이다. 그 뒤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접했고,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코쿠리코 언덕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 그리고 지브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추억의 마니> 등을 긴 시간에 걸쳐 차례로 접했다. 매우 뒤늦게 지브리를 겨우 접했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지브리의 황혼기를 주로 마주했다. 그래서 지브리가 지금 이렇게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 볼 용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지브리 필모그래피의 역주행이었지만 나로서는 지브리 청년기와의 대면이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이의 묘>, <이웃집 야마다군>에 이어서 무엇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면. 새로웠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왓챠라는 영화 평점 사이트에 점수를 꼭 매긴다. 거기선 내가 평점을 매겨 놓은 영화들을 분석해서 나의 선호장르를 알려주는데 애니메이션 장르가 기록에서 220편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맞다. 난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장편 애니메이션 중에선 별 5개를 준 작품이 없었다. (나는 평점을 줄 땐 관대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만큼 애니메이션에서는 완벽한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더불어 나는 그러한 영화의 불완전성을 좋아한다. 일부러 걸작을 피해다닐 때도 있다.) 하지만 <이웃집 토토로>는 별 5개를 당당하게 매겨주었다. 기존에 보아왔던 애니메이션들보다 이렇게 더 큰 울림을 선사했던 이런 걸작이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2.

<이웃집 토토로>는 동화 같다. 자매와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숲속에서 어울리고 지내는 행복 동화.

 

2, 30대라면 토토로라고 하면 익숙한 캐릭터일 것이다. 물론 이 영화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두 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본편은 1988년에 제작되었지만 그때 바로바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98년에 일본 문화 개방 조치가 되었고 그때부터 여러 일본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었는데 그래서 <이웃집 토토로>도 국내 개봉날짜가 2001년으로 명시되어 있다. 잘 찾아보면 제작연도에 비해 뒤늦게 2000년대에 국내 개봉한 일본영화가 숱하게 있다.

 

<이웃집 토토로>는 지브리 스튜디오와 더불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이다. ‘지브리를 말한다면 토토로라는 캐릭터는 빠질 수 없는 이유가 어쩌면 로고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브랜드로서의 차별성로 지브리를 각인시킨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 차별성은 심오하다. 기존 애니메이션계에서 디즈니가 주를 이룬 계열이었지만 서양적인 관점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이웃집 토토로>는 동양적인 관점을 표방한다. 서양의 동화 같은 판타지가 자연 속의 선과 악의 끊임없는 대립을 강조한다면 동양은 자연 속의 조화를 강조한다. ‘사츠키메이토토로와 만나서 친구가 되는 대목에서 물아일체를 표방하기도 한다. <이웃집 토토로>도 어떻게 보면 예전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일상극에다가 판타지를 가미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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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체적으로 큰 자본과 결합된 시네아스트는 현재 몇 없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런 부류의 시네아스트로 평가받는 감독이었다. 왜 그럴까? <이웃집 토토로>를 표본으로 삼아도 그러한 질문에 대답을 할 여지가 마련된다. 일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타켓 관객층이 넓다. 아이들의 동심적인 세계를 직접적으로 창조하고 서정적인 작화를 통해 보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번에 훔쳐간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특수한 캐릭터가 단단히 한몫을 하는데 곰을 캐릭커쳐한 토토로만 하더라도 캐릭터의 여러 특징과 특성, 행동 패턴을 재치 있게 설정함으로서 한층 더 놀라운 매력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그것들이 아이들의 전유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동심의 세계를 넓게 확장해보이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캐릭터의 힘일 것이다.

 

대부분의 주류 애니메이션은 캐릭터 영화다. <이웃집 토토로>도 어떻게 보면 토토로의 캐릭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토토로가 주연으로 내세워지는 영화는 아니다. “이웃집이라는 타자화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떻게 보면 조연이나 적어도 엑스트라에 가깝다. 그렇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왜 토토로에게 그렇게 강한 존재감을 부여했을까? <이웃집 토토로>는 판타지가 주류가 되는 영화도 아니다. 단지 극 내의 자매의 시선으로 보여지고 관객이 동화되는 것이지 멀리 떨어져서 보면 큰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판타지가 사건에 비중 있게 개입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자매인 사츠키메이가 시골에 이사를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은 오래되어 나무 기둥이 무너질 것 같고 먼지투성이이며 강풍에 지붕이 날아갈 정도로 낡았다. 더군다나 시골 소년 칸타는 그 집을 보고 도깨비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츠키메이에게는 새로운 놀이터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것이 재미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진난만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러한 아이들의 성격을 마쿠로 쿠로스케를 통하여 한번 더 분명하게 정의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나왔던 마쿠로 쿠로스케는 우리말로 하면 검댕 도깨비정도 된다. 이 매우 작은 도깨비들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먼지로 보이며,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집에 사람이 이사를 오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전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한 것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 되지는 않으며 되려 친근한 존재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기서 인간의 세계와는 또 다른 구성원들의 세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자매들 뿐이다(아버지나 옆집 소년 칸타의 할머니도 어렸을 때 '마쿠로 쿠로스케'를 보았다고도 말한다) 토토로도 마찬가지다. ‘토토로는 영화에서 판타지의 대표로서 드러나는 숲의 정령이다. 인간 메이는 녹나무의 구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자고 있는 토토로를 보게 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도 하는 이 과정은 현실과 환상이 본격적으로 만나는 첫 지점이다. 그전까진 환상의 세계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거나(마쿠로 쿠로스케), 인간을 피해 달아나는(작은 토토로) 등 인간의 세계와 조우를 하는 것이 금기시된 것처럼 보여진다.

 

메이는 토토로 위에서 호기심에 즐겁게 장난을 치지만 잠이 깬 토토로는 자신의 몸 위에 있는 메이를 말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러다가 메이는 토토로의 위에서 같이 잠을 청한다. 이러한 자연의 정령과 인간의 영적인 만남은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영화는 자매의 시선을 통하여 판타지와의 이웃 같은공생을 추구한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시골이라는 지역적 특징에서도 암시하듯이 사츠키와 메이는 현실과 판타지, 두 세계의 접점에서 머문다. 하지만 그 둘의 세계는 충돌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인간과 나무가 친구였다는 아버지 쿠사카베의 말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연대를 들여다본다. 순수한 인간의 영혼으로 자연을 만나고 어울리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철학적 의미까지 도달해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토토로와 자매가 팽이를 타고 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바람이 된 장면은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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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츠키메이가 시골로 이사오게 된 것은 어머니가 퇴원하고 요양할 곳을 마련하게 위함이었다. 서로서로를 아껴주며 행복으로 매일이 가득 찬 가족이지만 자매의 마음 한켠에는 가족의 분리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부모와 아이의 애착관계에서 오는 근원적인 감정이다. 사실 영화의 현실 안에서는 크나큰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조금의 불균형만으로도 사건의 여파가 예민하게 작동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화에 아버지에게 우산을 가져다드리기 위해 자매가 버스 정류장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아이의 상처가 어떻게 위로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밤비가 내리는 숲 속에서 아주 간소한 버스 정류장 앞에 자매는 가로등 앞에 서 있다. 주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잘 없고 어둠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메이는 그 동안 보여왔던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줄 모른 채 아버지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의존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과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공간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지점이다.

 

그러던 와중에 사츠키는 토토로를 만난다. 토토로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는 분명하진 않아도 그 우연성은 절묘하다. 토토로는 우산 대신 머리에 나뭇잎을 쓰고 있는데 사츠키는 아버지에게 주려고 했던 우산을 빌려준다. 그리고 우산에 흥미를 보인 토토로는 도토리를 건네주며 고양이 버스를 타고 가버린다. 비는 그치고 바로 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불안감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우산을 펴는 소리에 놀라고 빗방울 소리에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토토로는 아이들과 많이 닮아있는데 관객에게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일깨우고 자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사소한 행복을 긍정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자매가 다시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 삶을 다시 긍정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도토리를 심어 싹이 난 것을 보고 자매는 행복하게 뛰논다)

 

또, 한 예시가 있다. 자매는 엄마가 퇴원할 날을 기다리던 자매는 병원에서 전보가 오자 불안해한다. 엄마의 퇴원이 늦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매는 크게 낙심하는데 특히 메이는 싫어라고 소리치며 운다. 다시 근원적인 불안감에 빠진 자매는 이번에는 서로 갈등까지 한다. 메이는 애착관계의 상징인 옥수수를 들고 엄마를 찾아 가겠다며 막무가내로 길을 떠나 길을 잃고, 사츠키는 메이를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팔방 찾아나선다. 연못에서 신발 한 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격렬한 불안감을 느끼고 확인하러 가는 대목에서 그러한 심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그 신발은 다행히 메이의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은 ‘토토로’다. 토토로를 찾아가 고양이버스를 타게 된 사츠키는 메이를 다시 찾으며 자매의 불안감을 알게 된 고양이버스는 불안의 근원을 해소해주기 위해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가족의 완전함을 확인하고 메이는 옥수수를 부모님 모르게 건네고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영화 크레딧에는 어머니가 퇴원하고 자매의 가족이 온전하게 만나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사실 자매가 불안해했던 사건은 별 것 아니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겨우 감기에 걸린 것뿐이었으며 퇴원이 미뤄질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내재된 불안은 자매만의 노력이나 관계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극적인 해소는 토토로와 상처에 대한 근원적인 공감과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을 사람들도 사츠키와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하지만 능력 밖의 문제였을 뿐, 근본적으로는 해결을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타자와의 공감과 소통이 있었기에 불안감은 해소되었으며 그렇게 다시 영화는 삶을 긍정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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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웃집 토토로>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려내며 동심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하지만 온전한 판타지로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삶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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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mments
28 율Elsa  
본 게시판이 글이 길어서 그런가 옮겨도 자꾸 짤리네요. 어차피 그 후의 마무리하는 글이어서 댓글에다 옮깁니다.

"하지만 온전한 판타지로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삶의 문제까지 아우른다. 분명 아이들의 시선의 높이로 그려지고 있지만서도 그 뒤에는 심오한 철학적인 의미가 바탕이 되어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토토로의 소박한 행복의 삶과 자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긍정하며 소통과 내면적 상처의 치유의 문제까지 내비친다. 더 나아가 삶을 긍정하는 자세가 너무나 매력적이기도 한 이 영화가 성숙한 걸작으로도 보여지는 이유다."

추신: 저만의 완벽한 평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생각하고 있는 건 많은데 저의 지식이나 글쓰기 실력이 따라주지 못하네요.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34 진트  
저패니메이션에  매료되는  계기가 되었던 애니네요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 .. (아  그전에  미래소년 코난도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코난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연출작이란건 한참후에 알게되었지만 ..)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란걸  처음 보게된 것도 바로 이 애니였군요  ( 1988년에 일본에서 개봉했었던 작품인데  운좋게도 1989년?인가 90년쯤인거 같은데 보게되었다는 )
어떤 백화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했었는데  친구를 꼬드겨서  마치 뭐에 홀린거처럼  그냥 무작정 봐야되겠다는 생각에  보았던
그 이후로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되었던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엔 일본영화나 애니나  합법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개봉이 안되던 시기였던걸로 아는데  토토로를 보고나서  바로  일본 애니비디오를 해적판? 으로 팔던
가게에 물어물어 찾아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입했었던게  이  토토로 랑  마크로스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였습니다
토토로도  좋았지만  마크로스 극장판을 보고선  그 당시에  그야말로  문화충격에  빠졌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나네요 
1990년도 되기도전에 시절에 이정도의 퀄리티의 극장판 애니가 존재할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않았었죠
그후로  바람계곡의나우시카 , 천공의성 라퓨타, 키키의마녀수업등등..  지브리 애니 뿐만 아니라
건담이나  마크로스 같은  그야말로  저패니메이션의  세계에 푹 빠졌었습니다
오랜만에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그냥  두서없게  ㅎㅎ ..
28 율Elsa  
역시 마니아들은 국가적으로 막아놓아도 어떤 경로로라도 보게 되는군요.ㅎㅎ
저도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서 작화가 현재에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뛰어난 게 정말 대단하더군요.
23 자막맨  
와  전문가 리뷰 올라왔네요..^^
28 율Elsa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S 컷과송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정갈하고 그윽한 글입니다. 지브리의 두 노감독이 앞으로 과연 작품을 더 발표하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왓챠는 저도 사용하는데, SNS를 하지 않아서 노트북에서만 올립니다. 우울한 cut과 유쾌한 song 이 닉네임입니다.

추카추카 17 Lucky Point!

28 율Elsa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컷과송님은 왓챠에서 유명하지 않으신가요? 저만 그렇게 알고 있나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정주행 시작하시나봐요
49 iratemotor  
글 잘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TV에서 방영한 미래소년 코난은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ㅎㅎ
28 율Elsa  
감사합니다
저는 코난이라면 명탐정 밖에 안 떠오르네요 ㅎ
23 자막맨  
맞아요.. 미래소년 코난, 빨간머리 앤..
대단했죠...
특히 앤은 배경이 아주 수채화 그림입니다..
26 naiman  
잘 봤습니다...하야오 작품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것 같아요.
10 사라만두  
어린이의 시선에서 부모의 부재는 세상 모든것이죠
이면의 것을 보려 노력한 이런 시선들 너무 좋네요
개인적으로 원령공주를 지브리 애니중 가장 재밌게 봤는데 태초의 어머니 자연의 거대함에 숙연해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지브리 애니의 모티브는 항상 근원의 부재에서 시작했던것 같네요
글 잘봤습니다!
27 블루와인  
90년도 초반에 작은 동호회에서 신촌 카페 하나 렌트해서 몰래 틀어서 봤던, 저한테는 제일 첫경험이었습니다.
일본 문화에 대한... (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일본문화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다가 러브레터를 또 그렇게 어둠의 동호회에서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도, 좀 더 현실적이, SF 같은 요소가 없이 그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선호하지만,
애니메이션에 그런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무리겠죠? 애니메이션의 맛은 그런데 있는 것일테니까요.

토토로를 보고 난 후 한참이 지나 러브레터를 보고, 그 다음에 연달아 지브리 애니를 보게 되었었는데,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키키, 붉은돼지....
주로 미야쟈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다가 느닷없이  잔딧불의 묘(다카하타 이사오감독의)를 보고 다시는 일본 애니메이션 안본다고 작정을 했던 날도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다시 센과 치히로를 누가 dvd를 선물해주는 바람에 봤네요.
물론 지브리 특유의 색채감은 어느 작품에서나 다 제대로 드러나고, 특히나 센과 치히로나 뽀로로, 키키..는 아직도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람과 또 다른 세계에 있을 법한 캐릭터와의 조합에서 보여주는 따스한 그 온기는 누구에게나 절로 미소짓게 하는 힘이 있는 듯.

그래도 전, 지브리 제일의 작품을 뽑으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센과 치히로라고 하고 싶습니다^^

근데 너무너무 의외였습니다. 엘사님이 지브리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고 시작하신 부분이^^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니 애니메이션을 꽤 많이 보셨다고 하셨더군요. 힝~ 결국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아니다, 뭐 이거더군요
 누구에게나 처음에는 다 잘 모르는 초보랍니다! 속은 느낌이라는거 아시나요? =_= )

언제나처럼 자세하면서도 쉬운 말로 풀어주는 평, 저같은 영화 문외한에게 아주 많은 도움과 정보를 준다는 사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