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배우놀음이 빚어 낸 명작

영화감상평

곡성, 배우놀음이 빚어 낸 명작

3 안일범 9 1896 2

조금 더 일찍 쓰려 했다. 그런데 참고 또 참았다. 한줄이라도 쓰다가 작품에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생각 뿐이었다. 5월 11일 개봉했고 이제 2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작품은 힘을 받는다.

다만 IPTV등으로 발매됐기에 그나마 한 줄 쓰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가 됐다 싶어 글을 남긴다.

 

곡성은 나홍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이 감독은 황해, 추격자 등으로 스릴러물의 반열에 오른듯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던 감독이다. 특유의 무채색 톤 위에 대비되는 핏빛 그림자. 그리고 그 사이에 동적인 카메라워크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 잡는다.

 

곡성에서도 그가 쌓아올린 스릴러물들의 연출 방식은 그대로 차용된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스릴러가 범인과의 추격과 끝없는 사투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곡성 역시 그런 기본 틀을 유지 한 채 시나리오를 쌓아 나간다.

 

지금까지 그의 영화에 비해 이번 영화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바로 캐스팅이다. 그는 '사람의 캐릭터성'을 교묘히 이용해 이 영화를 '설계'해 버렸다.

 

수 많은 변수 속에서도 그저 순수함을 잃지 않았어야 했던 주인공, 거기에 한 번 꼭지가 돌면 미쳐버리는 캐릭터는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이가 몇 없다.

김윤석, 마동석, 곽도원 정도가 주로 하마평에 오를만한 인물. 다만 마동석이 워낙 순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또, 김윤석은 추격자 냄새를 풍긴다는 비난을 받는다는 점에서, 광기를 보유한 곽도원 캐스팅은 첫 단추를 훌륭히 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는 늘 그랬듯. 신기에 가까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표독스럽고 날카로웠던 연기 스펙트럼 대신 순진한 동네 아저씨 역할을 기가막히게 소화해 낸다.

 

광기에 물든 연기를 하다가도 병원문을 탁 여는 순간 코끝을 타고 흐르는 그 눈물은, (그리고 그 각도를 캐치해 내보낸 감독은) 칭송 받아야 마땅하다.

 

주인공이 잡혔으니 이제 주연 차례다. 순진하게 물불안가리고 달릴 주인공을 꿰어낼 사람들. 당연히 베테랑이고,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어야 하고, 말에 힘을 가진 캐릭터여야 했다.

 

쿠니무라 준 캐스팅은 그야 말로 흥미로운 구도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연기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연기력 하나 만큼은, 그리고 그 스펙트럼 하나 만큼은 일본 최고라 불러도 좋을만한 인물 아닌가. 누구든 그를 영화에 쓰고 싶어할 것임은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 자리에 반드시 쿠니무라 준일 필요는 없다. 유해진과 같은 배우를 대입해봐도.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하필 쿠니무라 준이어야 했을까. 물론 전형적인 한일 반감 조성에 '쪽바리를 처단하자'는 감성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공적으로 쓰일 캐릭터로는 그가 딱일듯 하다. 그런데 관객들은 한가지 의문점을 품는다. 과연 이 천재 감독이 평범하게 '쪽바리를 죽이자'라는 코드로 쿠니무라 준을 뽑았을까?

 

세번째 캐스팅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캐스팅은 무당 일광역을 맡은 황정민. 지금까지 서글서글한 캐릭터 연기로 그는 국민 호감 캐릭터가 됐다. 워낙 뛰어난 연기인데다가 순진남에 마음따뜻한 형사 역을 주로 맡았던 그에게 무당 역은 새로운 도전이었을터다. 그야 말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의 몸짓에서 '틀을 깨어 버리고 싶은 혼신의 연기 욕심'이 한눈에 보인다. 온 몸을 던져가며 미친듯이 뛰고 달리고 소리지르는 그가 멋져 보이기만 한다.

 

이번에도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그는 영락없는 영웅이다. 때 아닌 실수를 저지르는 그의 모습 조차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에서 몇번은 봤던 장면 아닌가. 그리고 그가 가진 이미지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소녀, 김환희 양의 연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순진한 시골 소녀의 표정에서 부터 악에 표독스러운 연기까지, 그녀가 보여준 연기 스펙트럼은 황정민의 무당 연기와의 정면 승부에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절정에 달해야 할 순간에, 서로가 한발자국씩 물러 서는 모습을 보였다는게 안타까울 뿐. 아마도 황정민은 소녀를 위해, 환희양은 황정민을 위한 배려를 보인게 아닐까.

 

기가 막힌 배우 놀음 이었다.

 

사족. 사각형 안에 담긴 곡성의 자연과, 그 자연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캐릭터 동선. 해를 두고 배경을 담아내는 씬, 미세하게 떨리는 카메라웍. 촬영팀들도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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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26 naiman  
감상평 잘봤습니다...배우들이 다 매력있더군요, ^^
15 리얼까미  
좋은 감상평 잘 봤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마이너리티한 의견, 극소수? 아니 저만의 생각을 피력해 보면 곽도원이란 배우의 연기력과 스펙트럼에는 토를 달지 않지만 극중 역할과는 뭔가 맞지않는다는 이질적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게 투영되는 곽도원의 이미지는 도회적, 인텔리겐챠, 압도적, 주도면밀..이런 느낌이라서 주인공의 신분과 처한 환경에 쉽게 동화되지 않더군요 .. ^^;;
5 Mikey  
읽다보니 무슨 칼럼 같아요. 직접 지금 쓰신거에요?
34 진트  
글 잘 읽었습니다
3 안일범  
네 그냥 한번 써봤습니다. 일하다가 생각나서 쭉 썼는데 역시 비문에 복문이 가득하네요

추카추카 6 Lucky Point!

23 자막맨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카추카 13 Lucky Point!

26 D295  
곡성에 대한 평이 너무 좋아 무척 궁금하긴 한데.... 개인적으로 황해나 추격자가 너무 소름돋고 끔찍하여 망설여지네요... 제 취향은 아닐듯..
1 체리베릴  
잘 봤습니다  ;)
10 두아이  
언제나 그렇지만 대중 영화, 돈 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작품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극명히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누구보다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분들이 절절히 아쉬워할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