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9점] 호수(Un Lac, 2008)

영화감상평

[리뷰: 9점] 호수(Un Lac,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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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과 사운드의 그로테스크한 봉우리.

평점 ★★★★☆


스크린으로 통해 <호수>의 경관을 90분 동안 앞에 두고 그로 인해 생기는 이 낯섬의 응어리는 무엇일까. (나는 필립 그랑드리외 감독 작품을 처음 접하였다) 어떻게 표현해야 이 느낌이 그대로 표현이 될까. <호수>는 여동생에게 남매 그 이상의 애정을 가진 소년 알렉시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유아기적 모습에서 점차 성숙해가는 변화의 과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주를 카메라는 절제된 감성을 통해 담아낸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영화는 그 남매가 생활하는 감성적인 측면이나 시공간적 차원에서 각자를 하나의 소우주로 보이게 한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영화는 관객을 폭력한다. 스크린이란 사각의 틀 안의 평면적 공간을 관객을 응시할 수 밖에 없으며 영화는 그 화면 안에 담긴 정보와 정서를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관객은 무조건적으로 영화를 받아들이게 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영상언어를 통한 폭력적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아주 친절한 예술이기도 하다. 미장센이나 몽타주 등의 영역에서 영화는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해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조작의 예술이다. 영상 자체에 있어서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정보를 클로즈업 등으로 강조하거나 정서를 위해 구도나 세부적인 것들이 인위적으로 조작되기도 한다. 애초에 이러한 것은 영화가 감독의 예술임을 상기시키며 관객은 그렇게 감독이 자연스러움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한 정서의 방향과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이 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호수>는 무언가 상당히 타이트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호수>에서 사용된 형식적 측면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낯설다. 카메라는 간혹 떨리며 피사체를 분절하다시피 할 정도로 클로즈업하며, 포커스도 간혹 심하게 아웃되고 필름 자체가 가지는 거친 질감에다가 실내 장면에서는 인물이 겨우겨우 보일 정도로 어두운 장면들이 연속된다. 또한 사운드도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며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호수>는 극단적으로 실험적인 영상들이 연속됨에 따라 관객을 쉼없이 자극하는 영화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극은 통제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명확하게 짚어지지 않는 시각적 정보의 모호함은 마치 영화 스스로가 영화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기도 한데 이것은 관객에게 새로운 차원의 정신적 자유를 선사한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촬영하였다는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다보면 마치 그로테스크한 영화적인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어쩌면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영화가 사실성을 띄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관객에게 제시하기보다는 필립 그랑드리외 감독은 형식미에 대한 변주의 자세를 취함으로서 자신만의 시네마(Cinema)의 의미를 구축한다.

 

필립 그랑드리외 감독은 대답했다. "나에게 영화는 또 다른 세계이며, 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촬영한다". 이 말을 살짝 바꾸자면 <호수>는 관객에게 기존과는 다른 또 다른 미학적 세계를 선사한 것이다. 영화를 감상함으로서 그 세계에 입장한 관객이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황홀하고 색다르다. 무성영화에 대한 감각와 새로운 영상언어에 대한 감각이 어우러지는 미장센과 사운드 미학의 외로운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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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S 컷과송  
전주에 가셨군요. 감독도 방한한 듯 하고...영화 미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니 이 감독 영화를 저는 감당할 수 없을 듯 합니다.
28 godELSA  
넵. 전주가서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입니다.ㅎㅎ
S 컷과송  
벌써 다녀오셨군요. 저는 내일부터 1박 2일로 3편만 보고 올 생각입니다. 익히 알려진 익숙한 감독들이라 별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27 블루와인  
지나치게 자극시키는 영화는 선호하지 않지만, 그래도 스크린이 관객을 때려잡지 못하면,
관객이 영화로부터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하고 있게 만든다면,
그 것 또한 매력없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 낯선 영화에 대한 소개라서 엉뚱하게도 저 부부분이 제게 남아버렸나봅니다. ㅎㅎ)
28 godELSA  
그래서 영화제 때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더군요.
27 블루와인  
이 영화 적어도 제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끌리는 영화입니다. ^^
제가 영화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아주 오래전에 동숭아트홀에서 처음으로 구소련계 영화를 접하면서 였습니다.
상당히 다른 촬영법이 주는 이펙트와 그들만의 스크린으로 펼쳐보여서 보는 걸로 이해시켜주는 영화가
생소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신선하고 좋았었던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거든요.
(씨네스트의 많은 분들처럼 영화에 대한 전공을 했거나 지식은 거의 없지만,
영화에 대해 아는건 하나도 없다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냥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 영화가 주는 느낌이 그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