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리뷰]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 2007)
<맨 프럼 어스>
리처드 쉥크만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상당히 흥미를 잡아끄는 영화입니다.
원시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 1만 4천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발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뼈대를 구축하고도 그것을 여러 방면으로 확장시키는 각본의 솜씨가 탁월합니다.
이 영화의 표면적 구상은 미니멀합니다. 인물 몇 명과 집 한 채가 다입니다.
특별한 공간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진행되는 동안 사건이 발생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단지 한명의 발언자와 방청객들로 영화는 상상력을 우직하게 이끌어나갑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연극성에 ‘시간’을 끌어들입니다.
여기서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캐릭터와 연동되면서 광범위해지는데
이것이 <맨 프럼 어스>만의 독특한 추상적 세계관을 이루는 근간이 됩니다. 그 시간은 역사라고도 표현되죠.
따라서 이 영화는 대사가 시간화되는, 시간적인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겠어요.
이 영화의 추상적 세계관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영화 내에서 언급되다시피 주요한 사건들은 교과서에 언급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고
그 역사라는 기본적 토대를 절대 벗어나지 않고 있죠.
하지만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그러한 사건들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맨 프럼 어스>는 역사의 개념을 이분합니다.
기록과 물증이 존재하며 거시적인 시선의 ‘공공(公共)의 역사‘와
증명이 힘들며 미시적인 시선을 가진 ’개인의 역사‘로 나눕니다.
영화는 ‘공공의 역사’ 사이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긴 공백을 (시쳇말로) 공략해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를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본다면 역사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목들인데 그 지점들을
1만 4천년을 살아오면서 공백이 없는 남자의 삶(개인의 역사)의 지점들을 따와서 역사의 인과관계를 메워나갑니다.
그런데 영화가 최대한 사실에 근거하면서 허구적 가설을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그 가설을 받쳐주는 근거들이 상당히 논리정연합니다.
통상적인 역사적 사실을 비꼬고 뒤집어버리는 데 있어 허구인 공상 과학적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역사적 사건들이 점차 들어맞는 지점들은 나름대로의 지적인 충격을 안겨주기도 하죠.
충분히 도발적이면서도 설득력을 가진 이 허구적 가설을 펼쳐나가는 논쟁은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상당한 몰입도를 일구어냅니다.
이 허무맹랑한 가설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물증의 유무에 있습니다.
남자의 주장에는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이 과연 (영화 안의 세계에서)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인물들도 그의 논리정연함에 황당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반신반의하며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죠.
실제로 그가 1만 4천년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경험을 겪었는지도 확실한 물증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모호한 지점에 영화는 그 지점을 명확히 합니다. ‘물증이 없다는 것’
이것은 모호함을 명확히 하는 것이죠.
심증만으로 이루어진 그의 증언에 대한 신뢰는 결국 타인에게로 맡겨집니다.
그의 이야기를 믿는 것은 순전히 이야기를 듣는 인물, 그리고 관객의 몫이죠.
그래서 관객도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영화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주장에 대한 논리정연함은 관객을 끝까지 설득시키고 있으며 관객의 두뇌에 독창적 세계관을 빼곡하게 구축하죠.
상상력 자체보다는 사실과 상상을 연결짓는 논리와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이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