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6점] 무간도(無間道, 2002)

영화감상평

[리뷰: 6점] 무간도(無間道, 2002)

28 godELSA 3 2041 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악의 혼란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의 격동의 무간지옥.

평점 ★★★


<무간도>. 한국영화사에서 1980~90년대는 홍콩 느와르의 황금시기였다. 대표적으로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를 필두로 남성미와 비장미로 무장한 갱스터 느와르 장르가 한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명도 한국에서 생겨났다고 할 정도니 매니아층이 돋보적인 것은 확실하다. 쌍권총과 선글라스, 주윤발은 그 장르의 아이콘이 되었고 지금의 20대에게도 그것들은 익숙하다. 하지만 비슷한 레퍼토리로 반복되는 아류작이 생산되는 탓에 홍콩 느와르의 인기는 점차 추락했다. 그렇기에 <무간도>가 가지는 영화사적 의미가 크다. 홍콩 느와르의 재기. 기존과는 완전히 차별화되고 신선한 설정으로 무장한 이 작품은 장르 역사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레퍼토리를 제시했다. 아마 장르를 세분화한다면 ‘홍콩 네오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명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로 리메이크되었으며 박정훈 감독의 <신세계>의 모티브가 된 것도 유명하다. 제작된 지 14년이 흐른 동안에도 끊임없이 회자되어 왔으며 이제는 클래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련된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작품성을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스토리 안에서 상징과 각개 요소의 연결 지점은 어색하고 그로 인해 캐릭터들의 고뇌를 효과적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캐릭터가 갖는 무게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아쉬운 면이 존재한다. 플래시백과 슬로우 모션, 음악의 활용도 과해서 깔끔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나도 영화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동의한다. 과연 어떤 패러다임을 새롭게 답아냈는지 상징들과 맥락을 연결시켜 보는 것도 흥미롭다.

   

< 무간도>는 갱스터 장르 영화답게 두 집단이 있고 서로 대치되고 대립되는 구조를 띄고 있다. 갱스터와 경찰, 그 두 집단이 서로에게 스파이를 심어둠으로서 법적 시스템을 사이에 두고 눈치싸움을 한다. 한 집단이 이길 경우에는 상대의 집단은 파괴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무간도>의 세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정정당당함을 바래서는 안 된다. 영화가 초반부에 관객에게 스파이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쌍권총을 들고 1대 다수로 벌어지는 전면전을 기대하지는 말라는 관객을 향한 선언으로 보인다. 단지 캐릭터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교묘하게 서로를 갉아먹을 궁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냉정한, 현실과 욕망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느와르의 세계다.

 

그렇게 흥미로운 설정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스파이물은 관객을 서스펜스에 몰입하게 만든다. 갱스터 두목 한침의 무리들의 코카인 거래를 빌미로 경찰이 갱스터를 일망타진하려는 초반부 시퀀스는 단연코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경찰과 갱스터의 대립 구도 안에 정교한 리듬으로 계산된 교차편집, 양 집단에 자리잡은 스파이들의 암시적인 충돌 지점, 반전에 반전을 낳는 사건들을 빼곡하게 구성했다. 그리고 극적 정보를 관객에게 조금씩 공개하면서 서스펜스 효과를 점진적으로 고조시킨다. 느와르를 서스펜스의 장르적 배합이 극대화된 장면이기도 하다.

 

위의 사건은 영화 내에서 아주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파이를 심어둔 것을 눈치 채게 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스파이들은 잠입해 있는 집단의 정보를 빼내야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 누구인지 알아내야 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해진다. 경찰과 갱스터의 넓은 개념은 한 개인으로 상징된다. 진영인과 유건명의 심리적 대립. 그렇게 시선이 좁혀지면서 영화는 캐릭터의 격동과 양면성에 집중하게 된다.

 

배신. 느와르 장르에서는 아주 치명적인 장치다. 선과 악이 이분된 영화에 있어서는 극적 반전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영화적인 충격으로 볼 수도 있다.(특히나 서스펜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무간도>에서는 배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황 국장이 죽은 이후 유건명이 조직에 대한 고뇌를 느끼게 되고 게다가 조직으로부터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황 국장에 대한 복수로 진영인과 힘을 합쳐 조직을 파괴하기로 마음먹는다. 배신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금전적, 명예적 이유는 아니다. 물리적 이유의 자극보다는 내적으로 발생되는 감정의 충돌. 이 자연스러운 배신은 극적으로 가미되기보다는 일종의 심리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유건명 캐릭터는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이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국장이나 한침, 진영인 캐릭터와 차별점을 갖는 이유다. 선과 악이 분명한 평면적인 캐릭터들과 유건명은 보는 시선에 따라 선과 악으로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아니,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유건명만이 최후에 살아남는다. 즉 승자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씁쓸한 외로움과 죄스러움이 남아있다. 여기서 영화는 그 캐릭터를 표상으로 두고 선을 위한 악행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지 질문한다. 그 대답은 관객마다 다를 것이다.

 

영화는 불교 세계관의 ‘무간지옥’을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그 단어는 그 지옥에 떨어진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며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살벌하게 다가오는 지옥이다. 죽어서 가상의 삶의 영원성이 부여되면서 영혼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영적인 생과 사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지옥이다. 이것은 마치 갱스터 느와르 영화 같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런 디제시스. <무간도>도 그렇다. 하지만 생사는 선과 악에 대한 이분 없이 복잡하게 영화에 침투한다. 아마 이 영화가 현실성을 취득한 것도 그 부분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어진 세상은 허상이다. 유건명만이 살아남고 황 국장, 한침, 진영인이 무감각하게 죽은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의리보다 합리적인 이성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그 세상을 살아남는 개인들은 선과 악이 분명치 않으며 권선징악도 없다. 그 현실은 냉정하고 각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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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S 줄리아노  
오! 스꼬르쎄쎄가 디카프리오와 맥 데이먼과 함께
완전 망쳐먹은 디파티드... (아직도 IMDb 8.5 라는게 믿어지지 않는 ㅠㅠ)
하지만, 무간도 2, 3 역시 똑같은 실수를 재생산한다....
28 godELSA  
디파티드는 그 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ㅎㅎ
22 박해원  
전 3편이 젤 괜찮았던 거 같아요. 악당의 일관성이 징그러우리만치 적나라하고 사실적이어서...
반면 디파티드는 맥거핀인지 인과관계 결여인지 좀 의아하고 모호한 부분도 있었고 결말도 처절하도록 정의 구현하기 바빠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