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점] 이웃집 야마다군(となりの山田くん, 1999)

영화감상평

[리뷰: 8점] 이웃집 야마다군(となりの山田くん,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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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밑그림에다가 스케치한 여백의 풍경화.

평점 ★★★★

 

<이웃집 야마다군>. 영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만 호명되는 ‘일상물’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 아니메 TV시리즈에서 일상물은 SF나 판타지 장르와 접목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일상물’이라고 함은 소소한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하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별개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을 통칭하며 사용된다. 극적인 사건이 개입되지 않고 일상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장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화계에서 모티브를 얻을 수 있다. ‘일상물’은 전체적으로 뚜렷한 갈등 없이 흘러가는 내러티브 안에서 사건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이는 마치 영화의 사실주의 영화에서 주로 보이는 형식을 많이 차용한 모습이다. 그런 류의 감독으로는 대표적으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있다. 서양 영화이론에서 벗어나 일본 특유의 리얼리즘 미학을 구축한 그의 영화는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일본의 홈드라마 형식을 표방하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도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게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영화들은 소시민의 일상을 주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 야마다군>도 그 오즈 야스지로의 지대한 영향이 보인다. 이 작품을 이뤄내는 정서는 보편성에 기인하고 있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일본의 중산층의 평범한 한 가족이지만 하지만 주요 캐릭터로서 큰 의무가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그 가족의 일상 안에 담겨진 소소한 감정의 순간들을 관찰하고 포착할 뿐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한편의 ‘쇼민게끼’(근대 소시민을 소재로한 코미디)를 만든다. 어쩌면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지는 않는다. 영화가 하나의 드라마가 아니라 단막극을 엮어놓은 형식인데 알고 보니 순차적으로 나열되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강조되지 않는다. 오즈 야스지로가 시간의 흐름에서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웃집 야마다군>에서는 이 영화에서 시간이란 추상적인 존재감이 없다. 대신 ‘현재’라는 범위가 모호하고도 명확한 단어로 이 영화는 정의된다. 하나의 시간을 잘게 나누어 다양한 주제에 따라 사건을 퍼즐처럼 초단편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여기서 관객의 지적 경험을 되새겨보아야한다.

 

우리가 일상을 기억하는 기준은 바로 ‘사건’이다. 기억을 헤어보면 한 주제에 연관된 사건의 연쇄성을 두고 우리는 기억한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생기는 아득한 시간적 간격은 축약되거나 쉽사리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이웃집 야마다군>이 일상을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상상의 파편, 기억의 파편, 시간의 파편을 모아서 하나의 전시장처럼 죽 늘여놓는데 그것이 모여 소소한 정서를 만들어내며, 말 그대로 ‘일상’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영화에 있어서 관객의 존재감이 어떤 캐릭터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웃집’이라는 타이틀도 관객이라는 주체가 있어야 완성되듯이, 실제로 영화를 보는 동한 관객은 전지적 시점으로서 이웃 가정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온다. 여기서 영화는 관찰의 자세로서 관객의 내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을 상기해야 한다.

 

대신 관객과 캐릭터들 사이의 간격은 좁다. 당연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내에서 벌어지는 신변잡기적 사건들은 관객과 영화의 심리적 간격을 대폭 줄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익숙하다고 친숙하다는 의미이며, 즉 보편성이다. 이것은 인물들의 보편성과도 연관이 크다. 그렇게 캐릭터는 관객에게 동화되며 ‘일상’이란 개념도 더욱 증폭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림체다. 지브리가 가지고 있었던 애니메이션 기술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그림체는 다소 투박하다. 아이(노노코)가 등장하여 자신의 가족을 설명하는 첫 시퀀스에 이어서도 이 영화 장면 대부분은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그림체로 진행된다. 곡선과 색만으로 이루러진 이 그림체는 정겹지만 어쩌면 기교가 없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이 영화의 영상미를 구축한다. 디테일이 없는 그림체의 바깥의 여백은 관객의 상상으로 가득 채워질 수 밖에 없다. 영화는 그 여백을 관객 스스로가 채워넣게 한다. 관객 각자마다 다른 경험과 기억을 비추어보아 채워지는 그 여백은 관객마다 자신만의 일상 세계로 통하게 만든다. 즉, 여백으로 그려낸 풍경화다. 역시나 이것도 보편성에 기인하여 작용할 것이다. 이것이 애니메이션의 영화적 여백의 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이끌어냈던 탐구도 없고 그것을 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체현시키는데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몇몇 에피소드 뒤에는 일상의 모습을 반영한 시적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그 구절들은 유머스러우면서도 상당히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이 영화는 바로 그것이 ‘일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적이고 소소하고 유머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족이라는 집단으로서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완전한 일상을 만들고 영화로 완성된다.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일상에 축복을 내리는 하나의 방식으로 읽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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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2 럽레터  
분명 재밌고 잘만든 작품이긴 한데.... 두 번 보기는 꺼려지는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