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점]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 2013)

영화감상평

[리뷰: 8점]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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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필름, 영화)에게 안녕을 고하다.

평점 ★★★★

 

<언어와의 작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 가지 다짐해둔 것이 있다. “내가 보이는 그대로만을 받아들일 것”. <언어와의 작별>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는 등 여러 곳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인데, 나는 지금까지 볼 엄두를 못냈다. 왜냐면 한글자막이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영어가 안 되는 시네필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겪어보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싶은데 언어가 안 되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니! 참 슬프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도 자막을 찾아보았지만 결국에는 영어 자막으로 보았고 역시나 난해하긴 마찬가지. <언어와의 작별> 안에서는 수많은 내레이션이 자리잡고 있지만 감상 도중에 대부분 뜻을 모르고 넘긴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것은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이미지들만 봐도 스토리가 존재하는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해석이 가능한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그래서 마음 편하게 그냥 보이는 그대로 보았다. 분석의 자세보다는 순수한 시네필의 자세로서, 이 영화를 수용했다. 그래서 글도 좀 느슨하게 쓰려 한다.

 

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의 작품은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만 보았을 뿐이다. 그 작품과 <언어와의 작별>이 공개되기까지 사이의 기간은 50년이 넘는다. 그 감독의 작품관을 이해하는데 있어 50년의 텀은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생각보다 <언어와의 작별>은 <네 멋대로 해라>와 비슷한 영화인 듯 느껴진다.

 

<언어와의 작별>은 이미지의 영화라고 설명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상당히 독특하다. 실제로 연출된 장면인지 아니면 실제 기록 영상인지도 모르는 영상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컬러인 영상도 있으며 흑백인 영상도 있는데, 심지어 화질도 고화질과 저화질을 왔다갔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70분의 런닝타임이 지나고 보면 상당히 어지럽다. 게다가 이 영화는 3D다. 실제로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3D 안경을 쓴 관객들이 두통을 호소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운드의 영화라고 설명해도 적절하기도 하다. 일관성은 찾아볼 수 없이 여러 방면으로 튀는 사운드와 음악들. 사운드라 하는 것은 보통 영상 안에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언어와의 작별>에서 사운드의 역할은 익숙한 이미지들을 낯설게 보이게 한다. 이것은 관객의 어지러움을 더욱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쯤되면 장 뤽 고다르의 의도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언어와의 작별>은 다양한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그래서 영상 포맷도 다양하고 초당 프레임 수도 영상마다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필름은 없다. 오로지 디지털로만 이 영화는 촬영되었고 디지털 영상으로만 이 영화는 편집되었다. 게다가 최첨단 영화 기술인 3D까지도 이 영화에 동원되었다. 기술적으로 급진적인 영화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시대를 나타내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대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는 디지털 시대다. 이 시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유튜브다. 유튜브에는 온갖 디지털 영상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그 영상들은 범람 중이다. 영화도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하였고 무수한 영화가 탄생되고 있는 시점이다. 어쩌면 <언어와의 작별>은 영상 정보가 넘쳐나는 현 디지털 시대의 단면을 직접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닐까. 무질서한 시대상을 포착하는 어지러움은 시대의 체험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와는 다르다. 아마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미디어 아트 장르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영화를 구조적으로 해부해서 고다르 감독 자신만의 방식으로 급진적으로 만든 이 영화는 마치 50년 전의 <네 멋대로 해라>의 디지털 버전을 보는 듯하다. <네 멋대로 해라>를 공개하였을 때 고다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스로를 에세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의 형태로 에세이를 쓰며 에세이의 형태로 소설을 쓴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쓸 때처럼 나는 지금도 비평가이다. 그때는 글로 비평을 썼지만 지금은 영화로 쓴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에게는 영화는 비평의 연장이었으며 그 결과 영화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실험하는 <네 멋대로 해라>가 탄생했다. 아마 <언어와의 작별>도 영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어 가는 시점에서 그가 여전히 기존 영화 문법에서 탈피하려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영화'를 잇는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언어와의 작별>은 영화의 과거로부터 안녕을 고하는, 그 자체로 뛰어난 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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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27 블루와인  
어찌하다 알아먹는 언어로 된 자막을 찾을 수 있었기에 봤던 영화입니다. 난해하기 이를데 없었던 영화였고,
그야말로 80-90년대 구소련 지역에서 제작되었던, 흔히 동숭아트홀.. 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상영되었었던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그다지 자막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했었고,
모든 시선이 어딘지 흑백처리된 것 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도, (분명 칼라처리된 부분이 그렇게 보였다는 이야기^^ ) 역시
그 당시의 영화를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그저 제게는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던, 추억을 끌어올려주었던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