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점] 주토피아(Zootopia, 2015)

영화감상평

[리뷰: 7점] 주토피아(Zootopi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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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주에게서 벗어나 민중에게로 향하는 디즈니식 사회적 동화.

평점 ★★★☆

 

<주토피아>. <겨울왕국>에 대해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용의는 있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겨울왕국>은 엘사 여왕과 안나 공주의 자매 이야기다. 그 사이의 우정의 감성적 측면은 동의하지만 엘사와 안나는 동시에 왕족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왕국을 통치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인물들이다. 하지만 엘사의 능력이 폭주해버리고 아렌델이 눈보라에 잠겼을 때, 그 해결을 위한 인물의 태도는 상당히 소극적이다. 여왕이 설산으로 도망가버리는 동안 아렌델의 국민들은 추위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과연 그것이 둘의 우정의 회복만으로 해결되어 버리는 간단한 일인가?

 

얼핏 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은 ‘부르주아’와 연관이 깊은 작품들이 더러 있다. 디즈니의 명작으로 기억되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신데렐라><잠자는 숲속의 공주><인어 공주><미녀와 야수><라이온 킹><라푼젤><겨울왕국>이 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작품을 계속 볼 수록 무의식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동화적 메시지 외에도 영화에서는 ‘부(富)’가 사건의 보상 결과의 부속에 대부분 포함되며, 시련을 이겨낸다고 해도 사회의 지위 계급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렇게 캐릭터가 다시 되찾은 부르주아의 지위는 결국 관료제에 대한 옹호로 비춰지기도 한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국민과 부르주아가 거의 통합된, 아주 평화로운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관료제로서 아주 이상적인 획일화 된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 적이 있다.

 

물론 그에 대항해서 나온 것이 <라따뚜이>나 <주먹왕 랄프> 같은 작품일 것이다. 부르주아의 시선과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시선에 맞춰져 있는 기존의 문법에서 탈피하여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 반성하는 디즈니식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 궤도 위에 <주토피아>가 얹어졌다. 어쩌면 <주토피아>가 디즈니가 지향하는 사회상을 직접적으로 나타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라따뚜이>보다 훨씬 다양한 캐릭터가 있고, <주먹왕 랄프>보다 훨씬 구체적인 사회상의 묘사는 디즈니가 본격적으로 만든 사회적 영화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영화의 제목인 ‘Zootopia(주토피아)’는 동물원(Zoo)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다. 그런데 왜 동물일까? 동화적인 요소를 빼고 생각해보면 동물들은 인간과 비슷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동물 같지가 않다. 하지만 동물 캐릭터가 편견을 대입시키기에는 한없이 좋은 대상이다. 토끼는 연약하고 여우는 교활하며 사자는 용맹하다는 그런 보편적인 생각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편견을 깨려고 한다. 토끼가 경찰관이 된다는 설정에서부터 (통상적 관념에서 벗어나)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아마 이 작품은 그러한 관객의 고정 관념을 자극하기 위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도시 자체가 동물들이 이루어낸 도시이자 ‘투모로우랜드’를 연상케 하는 미래형 최첨단 도시다. 인간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교류를 완전히 배제한 세계관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얽혀 사는 와중에 각각의 동물에 맞는 다양한 기후가 제공되고, 다양한 크기의 이용수단이 제공되며, 다양한 크기의 음식도 제공된다. 디테일한 설정도 놓치지 않고 모두를 배려하는 사회, 소위 말해서 종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집단이다.

 

하지만 ‘주토피아’는 영화에서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도시 이미지를 겉으로 내뱉지만 여전히 이른바 동물 차별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토끼 홉스가 태생적인 이유로 ‘유리 장벽’에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사회에 내포되어 있는 차별의 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우화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동시에 이 영화에는 잘 찾아보면 여러 ‘패러디’가 존재한다. 내가 찾은 것만 살펴보면 <겨울왕국>과 <대부>가 그 대상이 되어있다. <겨울왕국>은 자막만으로 보아서는 잘 알 수가 없다. “노래만 부른다고 꿈이 성취되진 않아”라는 대사 다음에 ‘포기해’란 의미로 원어로 'Let it go'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겨울왕국’이 가지고 있는 유아적 판타지를 거부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 측면에서 <주토피아>는 기존의 디즈니 클래식 자체를 거부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의 ‘관료제’로부터의 회피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대부>는 아마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더 노골적으로 패러디된다. 설마 그 엄숙하고 위엄있고 위대한 이미지로까지 비추어졌던 ‘비토 꼴레오네’가 설마 아주 자그마한 쥐로 보여진 것은 개인적으로 기이한 패러디였다. 그리고 거대한 북극곰 사이에서 쥐가 마피아의 보스를 하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 작품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관객의 고정 관념을 철저하게 깨부순다.

 

물론 패러디 이외에도 여러 캐릭터에 대한 비꼬기가 존재한다. 범죄영화의 서사를 따르지만 그에 대입되는 캐릭터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연약해 보이는’ 토끼가 경찰관이 되고 ‘교활해 보이는’ 여우가 조력자가 되며, 그리고 알고 보니 ‘용맹해 보이는’ 사자는 진짜 악당이 아니었으며 ‘순해 보이는’ 양이 진짜 악당이다. 이것은 외모 지상주의를 저격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관객이 ‘저 캐릭터가 악당일 것이다, 아니다’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한 것도 어쩌면 단순히 캐릭터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문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미래이지만 동시에 ‘주토피아’라는 도시를 통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담고 있다. 점점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동시에 생기는 인종 간의 차별 문제 뿐만 아니라 (‘홉스’가 암컷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생기는 성 차별 문제까지도 아우른다. 그리고 국가 원수, 경찰, 민중들, 히피들, 범죄 조직 등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을 폭넓게 다루면서 미국이란 사회가 돌아하는 체계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왕 같은 국가 원수나 부르주아가 아니라 민중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디즈니의 변화다. <주토피아>는 캐릭터의 설정만 벗어놓고 보면 하나의 사회극을 만드는데 편견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이해적인 세상을 지향한다. 그 세상에 여왕이나 공주는 없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벗어나 유토피아의 미래로 향하기 위한 디즈니 방식으로 드러낸 다짐이 아닐까. 본격적인 사회극으로 디즈니 방식으로 이 영화는 성공이다. 그 외에도 뛰어난 기술력과 재치 있는 유머뿐만 아니더라도 점차 미래로 발돋움하는 디즈니를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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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0 사라만두  
엘사님 글은 항상 깊이가 있네요.
읽는 내내 묘한 웃음이 입니다 ㅎㅎ
좋은 관점의 색다른 접근, 인식의 다양화를 위한 저변의 확대
개인적 자질로 일회성 잭팟을 노리는 다양성 영화만 기대치 말고
체질개선으로 `볼 거리`를 무조건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치는 요즘
맥을 같이 하는 글에서 힘을 받습니다.
해원님과 함께 요즘 시네스트를 먹여 살리시는데,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