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점] 룸(Room, 2015)

영화감상평

[리뷰: 8점] 룸(Roo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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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기다려달라, 는 모두의 성장담.

평점 ★★★★

 

<룸>. 조금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소녀의 사건, 일명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 이 작품이 단순히 <3096일>와 같이 장르 영화의 틀에 갇혀 소녀의 극적 탈출기로 변모되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외적으로 겉핥기만 하는, 소재가 소재인만큼 캐릭터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지는 영화는 사건에 대한 형식적 소모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룸>은 그러한 극적 탈출기에는 관심이 거의 없는 듯하다. 애초에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있음에 가깝다. 그러한 탈출의 내용은 초반부 1시간 안에 생각보다 간단히 마무리된다. 게다가 반인륜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표현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고 관객의 분개를 살만한 묘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는 인물들을 가학적으로 몰고 가지도 않고 오히려 절제된 시선으로 인물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포착해낸다.

 

이 영화는 ‘잭’의 당돌한 내래이션으로 시작한다. 목소리만 들어보면 좁디 좁은 방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그만의 세계가 확고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캐릭터를 소개하고 자신만의 인식 체계로 방 안을 설명하는 내용이 주가 되어 있는데, 여기서 관객은 사건의 전말을 눈치챌 수 있다. 바로 납치 감금의 현장이다. 아무리 보아도 반윤리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당돌함은 영화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카메라로 하여금 ‘잭’의 동화적인 세계관을 ‘룸’이라는 공간에 투영시키며 한 아이의 내면적 세계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의 순수함을 바탕으로 한 공간의 재해석을 불러오는데 이는 사건 자체의 중량감을 희석할 뿐더러 아이의 내적 세계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룸’이라는 공간 자체가 상당히 누추하고 사람이 살기 어려울 법한 공간이다. 3.5m x 3.5m의 공간에다가 여기저기 녹슬고 곰팡이 슨 흔적, 게다가 쥐까지 나타나는 정말 더러운 공간이다. 그것이 ‘잭’에게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건 상당히 피폐해진 내면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건의 사실성을 구현하는 데 있어 세심한 디테일을 가진 미술은 공간 내부의 긴장감을 가미하는 요소지만 더불어 은유적이고 탐미적인 의미까지도 놓치지 않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웃 포커스와 클로즈업의 활용도 독특한 공간감을 구축하며 동시에 ‘잭’의 내면에 더욱 다가서는 아름다운 미장센이다.

 

‘잭’이라는 캐릭터에게 더 다가가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역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브리 라슨보다 훨씬 더 눈이 가는 배우였다. 자신의 세계에 사는 순수한 아름다움부터 성숙해 나가는 과정까지 캐릭터의 눈빛과 몸짓에 모두 담아내는 자질을 보였다. 그렇게 연출과 연기가 만들어낸 감정의 결은 상당히 깊다. 상당히 사실적인 연기를 해낸, 이 영화의 가장 큰 공은 ‘제이콥 트렘블레이’다.

 

이 영화에서 굳이 막을 나누자면 ‘조이’와 ‘잭’이 ‘룸’을 탈출하는 시퀀스를 기점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의 변화에 따라 1부와 2부로 나눠지는데 2부는 1부에 비하면 익숙한 공간과 장소다. 보통 영화라면 결말을 매듭지었을 내용을 <룸>은 반대로 길게 늘어뜰여 놓는다. 1부와 달리 스릴러적 요소는 전혀 없는데 ‘왜?’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구조적 의미에 중심을 두고 본다면 1부는 ‘잭’이 내적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내용, 2부는 ‘잭’이 외적 세계를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어쩌면 한 아이의 세계관이 확장되어 가는 전개를 띄고 있는데 영화는 한 번도 본 적없는 세계에 들어서는 낯섬과 두려움,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포착한다.

 

그것이 온전히 치유되는 데에 있어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작품 내에 인위적인 사건이나 충격을 넣지 않는다. 되려 관찰할 뿐이다. 극 중 대사 “치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영화는 인물 가까이서 주변 사건들을 지켜보고 치유의 과정을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게다가 관객에게마저 그 기다림에 동참해 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섬세한 디테일의 구현과 시간의 경과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편집의 리듬마저도 오락적인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 상당히 절제된 면모를 보인다.

 

물론 후반부 50분이 건조하게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그것을 납득시킨다.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와 비슷한 맥락으로 관객이 아니라 먼저 피해자를 배려하는 자세의 또다른 영화적 완성이 아닐까 싶다. 트라우마를 이겨낸 소녀 또는 어머니의 순수한 애정과 성장만으로 이 영화는 인간적인 희망을 품게 한다.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전작 <프랭크(2014)>에서 존중과 이해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인물을 두고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프랭크>와 <룸>은 그 지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프랭크>가 이해의 자세를 그렸다면 <룸>에서는 성장과 인내의 자세까지 그려내며 한발짝 더 나아간 자세를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풍부한 이해도를 보인 이 감독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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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4 소맥  
아직 안 보았는데 한번 볼까나 글 잘 보았어요
1 NoopDogg  
정말 귀여웠지요 제이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