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점] 동주(2015)

영화감상평

[리뷰: 7점] 동주(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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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끄럼을 알기에 떳떳한 청아함.

평점 ★★★☆

 

<동주>. 영화를 보기 전에 제목을 소리내어 여러 번 읽어보았다. 동주, 동주, 동주. 얼마나 친숙한가. 그 부드러운 발음이 얼마나 서정적인가. 소리 내면서 울려지는 발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떤 면에서는 이미 제목만으로 압도한다. 요즘에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시인 윤동주의 이름 석자를 그대로 스크린에 육화시킨 것만으로 <동주>는 생생한 체험이다. 내가 시험 준비로 시어 하나하나 책에 줄쳐가면서 엄격하게 달달 외우기만 했던 시가 시인의 생애에 대입되니 그렇게 서정적인 시일줄은 몰랐다. 그것을 못 알아봤던 내가 정말로 죄송스러웠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떠오른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쉽게 씌여진 시>에서. 윤동주는 문학 천재였다. 문학에 대한 강렬한 열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 하에서 일본에 충성하며 천재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민족의 고통과 설움을 같이 자신의 방식으로 같이하려 했다. 문학에 대한 자신의 고통과 주권을 위한 민중의 고통이 같기를 원하면서 그는 시를 썼다. 그런 면에서 <쉽게 씌여진 시>가 그의 인생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렇게 창작에 대한 질긴 고민으로 무장한 이 젊은 시인을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이준익 감독도 창작의 끈을 붙들어맨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흑백필름을 선택한 것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축을 이루는 흑백 이미지들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전혀 도전되지 않았던 영상미학으로 관객을 이끈다. 하지만 흑백은 대중들에게 낯설다. 게다가 필름은 노이즈도 있어서 선명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에 역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필름으로 촬영한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그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인물은 만약 화질이 쨍한 컬러 디지털로 촬영되었더라면 윤동주와 송몽규의 인물에 구현에 있어서 시대를 표방한 인위적인 구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필름의 질감도 사실적으로 보이는 효과를 내며 흑백 이미지들은 일제 강점기의 시대의 공기를 포착하는 서정적이고 우아한 영상미를 뽐낸다. 그렇게 창조된 역사라는 공간에서 인물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흑백을 사용하였다고 해도 왜 굳이 필름을 사용하였는가? 디지털 컬러로 촬영한 다음에 흑백으로 변환하면 간단할 것을, 왜 손이 많이 가는 필름을 사용하였느냐는 말이다. 그 의도가 궁금했다. 어쩌면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손쉽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윤동주 시인의 철학과 기묘한 접점을 가진다. 창작의 질긴 고민 끝에 진정한 예술이 나온다고 믿었던 그의 인생관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동주>는 <쉽게 씌여진 시>가 기술적인 모티브일 수도 있다.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만 부분부분 사실 기록과 다르다. 이건 영화 시작 부분의 자막에서도 암시된다. 극 내에서 극화된 요소가 여러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위적인 설정이 몇몇 눈에 보이긴 한다. 하지만 영화는 시나리오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기교를 부리지는 않는다. 되려 정공법으로 승부하며 장면 사이에 윤활유가 되는 것은 바로 윤동주 시인의 시(時)다. 영상 안에 보여지는 인물의 감정과 상응하고 내래이션으로 읊어지는 시 구절들은 인물의 감정에 더욱 다가서게 만드는 서정적인 효과를 가미한다. 이러한 극 중 장치는 시의 감성과 운율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이준익 감독의 내공을 증명하는 듯 하며 이러한 계산은 절제되고 느린 호흡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성의 정수다.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움'을 알기에 이러한 청아함이 우러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소원><사도><동주>에 이어 심금을 울리는 이준익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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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S 줄리아노  
십여년전 어떤 모임에서 80세가 넘은 미당(서정주)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동주보다 2살 많은 그는 그렇게 소름끼치는 많은 친일헌시와 모병시를 쓰고도
문학계 최고의 지위에서 천수를 누리고 그렇게도 당당해 보이더이다.(그자리에서도 무슨 훈장을 수여하더군요...)
사망시까지 절대 반성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던 그의 당당함(?)이나 그의 개인적 가치관을 언급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시인으로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순수성을 모두 저버린 그의 단어들의 나열은 무엇이고, 그의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훈장들은 무엇이며
그 앞에서 박수치고 열광하는 사람들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가 아닌 우리 자신들에 대해 울화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더이다.
제 마음속 저주대로 그는 그 해를 못넘겼지만, 그는 동주를 만나 무슨 얘길 했을까요?
이광수, 주요한, 김동인, 유치진, 김춘수, 김동환, 정지용, 모윤숙, 노천명... 우리의 교과서를 화려하게 뒤덮었던 그들,
숫자가 너무 많아 우리의 동주는 그곳에서도 다굴당하고 있는게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