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점]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15)

영화감상평

[리뷰: 7점]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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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의 직관과 비유만으로 만들어낸 현란함과 노련함.

평점 ★★★☆


<스티브 잡스>. 도대체 잡스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으면 할리우드는 두 번이나 걸쳐서 전기영화를 만들었을까. 결론적으로 두 번의 흥행 실패는 그것이 순전히 할리우드의 착각이었음을 증명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 두꺼운 스티브 잡스의 전기문을 다 읽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외심은 눈곱만치도 가지고 있지 않은 터라 대니 보일 감독이나 애런 소킨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어떤 인물이었고, 그 성격으로 인해 어떤 업적을 성취했으며, 그의 삶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도 식상한 소리로 들렸다.

 

기존의 스티브 잡스의 전기영화,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의 <잡스>(2013)가 그 식상한 소리를 해댔다. 이 영화는 전기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따와서 인물의 삶과 업적, 고난을 나열시켰다. 상당히 정석적인 영화였지만 동시에 혁신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대중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재해석이나 새로운 관점도 겸비하지 않은 채 사실 있는 그대로 나열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했다. 물론 찬양적인 교훈이나 메시지는 나쁘진 않다고 쳐도, 화법이 너무 평이했다. 전기영화의 정석적 틀이 구멍으로 작용한 예였다.

 

그런데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는 화법부터가 다르다. 일단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잡스>가 전기문에 대한 간접화법이라면 이것은 애런 소킨의 직접화법에 가깝다. 사실을 ‘재현’하기보다는 그것을 기반으로 허구의 상황을 만들어서 실제 인물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전기 영화에 있어서 실제와 연관성을 떼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 ‘실제’는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영화는 실제 인물의 생애에서 세 번의 순간만을 가져온다. 모두 제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직전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며 그 상황 안에 인물과 연관된 상황은 논픽션을 기반으로 픽션으로 짜여진다.

 

그래서 영화는 실제 인물의 업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차용된 발표는 잡스 생애에 있어서 아마 큰 분기점이 되었던 프레젠테이션일 수도 있어보이나, 대니 보일 감독은 그 발표회들의 직전의 상황만을 묘사하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기존의 전기영화와는 궤를 달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니 보일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잡스를 공적인 인물이 아니라 사적으로 보이기 위해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음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지고 프로그래머와 다투는 모습이나, 아이의 친부(親父)권을 가지고 아내와 다투는 모습 등 기업인으로서 사소한 갈등을 포착하는 데에 주력한다.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 뒤에 숨겨진 개인사를 실시간으로 표현함으로서, 실제 스티브 잡스의 신념과 성격을 빼곡하게 그려낸다. 즉, 인물 자체를 그려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적인 갈등을 포착함으로서 관객과 인물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그럼으로서 영화는 세 개의 막으로 나눠진 실제 삶의 순간에 그의 변화를 담아내며 인간적인 삶의 태도를 명시해낸다.

 

여기서 실시간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래시백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시간으로 사건이 제시된다. 이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출 중 하나다. 거기다가 제한된 수의 주요 캐릭터와 한정된 공간들, 세 개의 프레젠테이션을 기준으로 나눠진 세 개의 막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연상케 한다. 그 러닝타임을 채우는 것은 바로 ‘대사’다. <스티브 잡스>에서는 배우들이 시종일관 말을 하고 대화가 이어진다. 게다가 대화의 리듬도 빠르다. 하지만 이것은 산만하다기보다는 그 자체만으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상당히 가볍게 진행되는 일상적인 대화를 소화할 뿐만 아니라 극적인 긴장감을 구축하며 인물의 인간 관계에 대한 직관까지 겸비하고 있는데, 이 현란한 극작술이 이 영화의 깊은 인상을 만드는 근간이다. 그래서 애론 소킨이 이 영화를 인상파적 초상화라고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애런 소킨의 노련함이 가장 눈에 띄지만 대니 보일 감독의 연극 같은 스타일의 연출이나 실제 인물과 영접한 듯한 배우의 명연기도 훌륭하다. 전기영화의 틀을 벗어나서 전기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 후기) 영화에서 40분이 실제 40분인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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