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스포: 10점] 러시아 방주(Russkij kovcheg, 2002)

영화감상평

[리뷰-스포: 10점] 러시아 방주(Russkij kovche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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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서의 영화, 시간으로서의 영화, 체험으로서의 영화

평점 ★★★★★

 

 <러시아 방주>. 1948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로프>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까지 영화 전체를 하나의 숏으로 보이게 하는 영화는 몇몇 있었다. 아니면 부분적으로나마 복잡한 동선이나 많은 대사량을 한 컷에 담아낸 ‘원 테이크 원 컷’ 기법을 차용한 영화들도 많다. 또는 영화 전체를 하나의 숏으로 촬영한 영화도 있는데 <러시아 방주>가 그렇다. 구스타브 헤르난데즈 감독의 <사일런트 하우스>라는 공포영화도 영화 전체가 하나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 방주>는 그러한 촬영 기법을 영화의 메시지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미학적 성취가 높다.

 <러시아 방주>는 99분의 런닝타임을 하나의 씬으로 만들고 오롯이 하나의 숏으로 가득 채운다. 이것은 영화가 제작될 당시 필름 촬영에서 디지털 촬영으로 점차 전환되기 시작할 때의 새로운 매체에 대한 영화적 실험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기법이다. 게다가 너무나도 넓은 건물과 방들을 공간적으로 활용하고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각자마다의 여러 복잡한 동선으로 등장하는 동시에 카메라도 ‘스테디 캠’으로 꾸준히 복잡한 동선을 따라 시종일관 움직인다. 모든 것이 역동적인 가운데 이러한 ‘원 테이크’ 기법은 현실에 있는 공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듯한 사실감을 준다. 따라서 이 영화의 촬영 기법은 ‘디지털’만이 가지고 있는 영화 촬영에 대한 순수한 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발굴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1인칭 시점 숏으로 내레이션과 연결되는 가운데 사람의 눈높이에 맞게 놓여진 카메라는 영화 안의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체험적인 생동감을 준다. 촬영 현장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일관성 있게 해야만 했던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연출력을 증명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세르게이 M.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을 대표로 들 수 있는 영화사에서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남는 것이 바로 ‘몽타주 이론’이다. “두 개의 화면이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낸다”는 내용의 이론은 영화사에 있어 가장 일반화되어 있기도 하다. <러시아 방주>는 그러한 미학을 순전히 거부한 데에서 결을 달리한다. 영화는 건물의 방을 옮겨감에 따라 시공간이 바뀐다. 어떤 방은 16세기, 어떤 방은 18세기, 어떤 방은 근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공간들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원 테이크로 이어지면서 여러 시간들이 하나의 공간 안으로 압축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것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데 ‘역사’라는 시간의 하나의 소우주로 보이게 하며 그러한 효과는 마지막 장면에 더욱 의미를 발한다. 눈이 내리는 바다의 모습과 “우리는 영원히 항해할 운명이다”라는 내레이션과 상통하여 ‘역사’라는 개념으로 쌓여가는 무한한 시간 안에서의 삶의 유한성에 대해 고찰한다.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사고가 났다’는 내레이션은 (우리가 동일한 시점으로 보고 있는)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제는 과거의 인물이 된 주인공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러 세대의 삶으로 인해 그러한 역사는 이어진다는 범시공간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도출해낸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화는 촬영 기법을 영화의 메시지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미학적인 성취도가 높다. 이 영화에는 ‘몽타주’라는 것이 불필요한 것이며 연극 형식을 차용한 영화가 어느 정도의 미학까지 다다를 수 있는가를 증명한다. 게다가 CG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영화 형식의 순수성에 대한 실험으로까지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시대를 완벽히 재현한 소품과 의상, 조명은 이미지의 현실성을 높이는 동시에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체험의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개인적 후기)​ 요즘 만성피로가 생겨서 극장에 잘 안  가는데 가끔은 안 가고 이러한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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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6 이스라필  
러시아 대표 감독 중 한 명이라는데 파우스트 말고는 접하기 힘든 것 같아요
이 영화 저도 하드 속에 오래 묵혀뒀었는데 이번 주말에 한 번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