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식 문화침략의 서곡, Apocalypto - 스포일러

영화감상평

헐리우드식 문화침략의 서곡, Apocalypto - 스포일러

1 제법무아 7 11367 87
Apocalypto,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 과연 무엇이기에 새로운 시작일까?

헐리우드는 요즘 들어 확실히 소재가 없어 허덕이고 있다. 그런 영화계에 미국의 역사는 기껏해야 서부 개척사와 오지랖 넓게 세계 각지에서 벌린 전쟁의 역사 빼면, 그다지 말해 줄 것이 없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고, 한 번쯤은 누군가에 말해봄직한 명제, 역사는 돌고 돌며, 계속된다는 그 말을 미국만큼은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극동의 작은 나라인 한국도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거리로 삼건만, 세계의 패권을 자랑하는 미국은 아쉽게도 그 역사가 매우 빈곤하다. 그렇기에 남의 것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시점에 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시각으로 남의 역사를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객관적일 것이고, 어쩌면 섣부르고, 그다지 반갑지 않은 개입일 수도 있을 것이다. 멜 깁슨은 유독, 남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헐리우드식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브레이브 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고 아포칼립토. 언젠가 멜 깁슨은 이순신 장군을 재평가 하려고 들지도 모르겠다.

남미 본토, 마야문명의 후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내부적으로는 몰락해 간다지만 그래도 제국인데, 그런 제국의 장군쯤 되 보이는 권력자조차 작은 부족의 한 사내를 이기지 못하고, 아들을 잃고, 부하도 잃고, 자신도 개죽음을 당한다. 논란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메타포로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아무리 큰 제국일지라도, 안과 밖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권력은 어김없이 몰락하고 만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말이다. 결국 긴 세기동안 꽃피웠던 마야문명은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받아, 허망하고도 허무하게, 마치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제단, 그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져 갔으니 말이다.

어쨌든 마야제국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그들의 언어조차 내주고 만다. 그럼에도 ‘재규어 발’은 새로운 출발을 찾아 떠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재규어 발의 미래에는 그가 쫓겨야 했던 과거보다 더욱 처절한 식민의 역사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무슨 말라비틀어진 새로운 출발이 있단 말인가? 단순히 그 당시 그로서 앞날을 알지 못해 다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삶을 그리고자 했단 말인가? 어쨌든 거기에 있는 공통점, 그것은 커다란 손으로도 잡을 수 없는 소소하고 소박한 한 가정의 새로운 출발에 영화의 포커스가 맞춰졌다는 것이다. 그 결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와는 그다지 무관해 보이는 소시민들의 삶, 그것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영화의 스케일에 비해서서 조금 가볍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이것은 너무도 미국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야 문명에 대해서는 그 오랜 역사와 찬란했던 문명에 비해 남아있는 유산이 매우 적다. 그래서 고증이 어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 대륙을 몇 세기에 걸쳐 지배했던 문명에 대한 예의 치고는 너무도 버릇없고 옹졸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미국 땅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를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 미국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끔찍한 의식이 실제로 치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파괴의 범주 안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현대인의 보편타당한 서구적 시각일 뿐이다. 역사란 그렇게 단순하게 뚝 떼어 평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식인종에 대한 그들의 시각, 마야문명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문명조차도 선진과 후진으로 가르고자 하는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서구의 시각으로 보자면 마야문명이나 아프리카의 식인종들은 선교의 대상이고, 구원의 대상일 뿐이다. 상대의 문명을 이해하고, 조화하려는 것이 아닌, 야만적이고 낙후된 것으로 자기네 식으로 결정하고 판단한 후, 지배하고 교화해야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땅에 십자가를 꽂아야 속이 시원한 것이다. 마야문명이 무너진 것처럼, 마젤란이 필리핀에 처음 들어와 제일 먼저 십자가부터 세운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선진 문물이며, 선진 종교의 역사인 서구의 중세, 그 암흑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이 태워 죽인 수많은 이교도들은 누구이고, 그들이 일으킨 수많은 종교적 침략은 무엇을 의미하며, 지금도 멈추지 못하는 이슬람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무엇인가? 21세기에 들어서도 해소하지 못하는 흑백의 갈등은 무엇이며,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이라크 전쟁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아직도, 후진된, 너무도 낙후된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들의 고집만 피우려는 것인가? 만약 일본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재조명하며, 이순신장군의 계교에 빠져 죽은 수많은 일본 사람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어떠할까?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역사 왜곡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2차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을, 한 병사를 살리고자 했던, 전쟁을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한 중대의 영웅담으로 그린 밴드 오브 브라더스만 해도 이해해 줄 여지가 있다. 어쨌든 그들은 참전했고,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그들 나름대로의 얘깃거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기도 전의 고대사에 대한 너무도 분별없는, 그래서 옹졸할 수밖에 없는 아포칼립토는 이해해주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들의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짧은 역사만으로 장구한 세월을 숨쉬어온 역사를 단 두 시간짜리 영화에 우겨 넣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야 문명은 길게 잡아 기원전 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만 이천년 전부터 인디언들은 이미 그 땅의 주인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시각으로 볼 때, 서구인은 아직 손님에 불과하다. 그들은 아직 유아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한 겸손함을 갖추지 못한 채, 서구의 구미 맞추기 일변도로 전개되는 재구성은 결국 새로울 것 없는 헐리우드식 개그일 뿐이며,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이라크에서 죽어갔던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한 모욕일 뿐이고, 그들의 피에 섞여 있는 침략의지에 대한 치졸한 변명일 뿐이다.

분명히 훌륭하고 긴박감 넘치는 액션이다. 숱하게 많은 액션 영화를 보아 왔지만, 그 모든 전작에 비해 빼어났으면 빼어났지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하던 액션의 결말을 본 솔직한 심정은 소태 씹은 기분이다. 함선을 타고 온 선교사가 쥐고 있던 십자가를 보는 순간, 우려했던 야심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우리는 친구의 부모가 싸우고 이혼한 과거를 함부로 들추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하더라도 함부로 떠들지 않는다. 그러한 과거를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하다면, 천하에 몹쓸 놈인 것이다. 오히려 친구를 위로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이웃국가의 역사를, 현대의 시각으로 보기에 그것이 야만적일지라도 이렇게 난도질하는 것은 크나큰 실례라는 생각이 든다.

아포칼립토에 새로운 출발은 없다. 오히려 제3세계 국가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헐리우드의 새로운 침략만이 있을 뿐이다. 일천한 자신의 역사를 다 파먹어 고갈된, 그래서 황량한 밑바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기업가들의 타문명에 대한 무례하고도 미천한 선전포고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그들은 영화라는 들기 좋은 변명 아래, 타국의 역사를 서구의 구미에 맞게 포장해 상품화하고 있다. 아주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게 포장할 것이 분명하다. 아포칼립토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고, 언젠가 그들의 오만함은 변방의 작은 국가들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매체의 힘과 관객의 환호 속에 다양한 목소리는 파묻히고 말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교과서나, 중국의 방침은 우리의 피를 끓게 한다. 이미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 그것을 정당화 하고, 새로운 수단으로 삼으려 할 때마다, 우리는 참을 수도, 그렇다고 마땅히 해소할 수도 없는 분노를 느낀다. 우리가 한 영화의 재미에만 빠져 박수를 칠 때, 그 역사의 후손들은 우리와 똑같은 비애와 우수에 빠져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봐서는 안 될 영화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적으로 볼 때, 그 기교만큼은 정말로 대단하다. 너무도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교만으로 영화를 판단하지는 않음을 말하고 싶다. 그들의 국력과 재력도 언젠가는 무너질 역사의 흐름일 뿐이다. 흥망성쇠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국의 경박함은 반드시 비판되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야의 후손, 잉카의 끔찍한 의식을 미국 역시 수많은 약소국에서 펼쳐왔다.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의식의 제물이 되기를 강요해 왔다. 총과 칼로 그래왔고, 이제는 문화와 경제로 거듭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미국 땅에 살던 수많은 인디언들의 새로운 출발, 그 출발은 어떻게 됐는지를 말이다. 십자가와 함께 새로 시작한 출발이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으며, 그들의 역사는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환호하고, 앞으로 개봉 후, 환호할 우리 영화 팬들에게 묻고 싶다. 일제 이후,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나 역시 그 영화 팬의 한사람으로서 대답해야한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돌 뿐이라고. 우리 역사에 행해지는 왜곡에 분노하며, 동시에 지구 반대쪽에서 행해지는 왜곡에 대해서 환호하는 이율배반적인 자세로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약소국으로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허무,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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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 올릴 때, 비문도 보이고, 첨삭을 해야할 곳도 보였습니다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하고 잤습니다. 오늘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접속하니 생전 처음으로 쪽지라는 것이 와 있더군요. 시네스트의 주인장이신 재희님께서 시네스트 칼럼으로 복사하셨다는 내용의 쪽지였습니다. 그래서 수정할까 말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럴만큼 대단한 내용의 글은 아니라서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개인적인 주장일 뿐인지라..)

우선 1차적인 의미의 변화는 없습니다. 어색한 문장 몇개를 바로잡고, 흐름상 문제가 되는 몇 문장은 삭제 했으며, 보완되어야 할 부분은 추가했습니다. 후반의 결론부를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 썼습니다. 주관적인 견해도 명백히 하기 위해, 보완했습니다.

영화속의 제국은 잉카제국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마야의 후손임은 틀림이 없더군요. 그래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며, 잉카라는 용어를 한 군데에 추가했습니다. 앞으로도 문맥의 흐름이 이상하거나, 비문이 보이면 수정을 하겠지만, 전체적인 요지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게시한 게시물이라, 제가 게시한 게시자라지만, 함부로 수정하기가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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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1 강가딘  
  영화 보고 나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아~ 영화 재미있다!
두번째 멜 깁슨이 백인우월주의자였나?
고대마야문명을 처절하게 박살낸 스페인 살육자들이 상륙하는 순간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게 감독의 의도였다면 멜깁슨은 찰턴헤스턴보다 더한 인간입니다.
1 모모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되어지네요
마지막 대결이 끝난후 2명의 하급전사가 해변까지 따라오고 함선을 목격하면서 주인공의 목숨을 구하는건 감독의 의도가 확실하다고 생각되어지네요

액션이 너무 좋아서 약간은 슬픈영화..
우리도 이런식으로 영화속 사상주입하면 안되나? 한반도처럼 하지말고
1 박종현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죽이는 의식은 서구저인 관점에서 바라봤을때 잔인하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봤을때도 잔인합니다. 우리 나라가 예전에 저 짓 했어도 자랑스러운 전통이라고 하실거유? 그리고 역사가 긴 나라일수록 짧은 나라에 비해서 잘났다는 그런 어조가 풍기네요. 미국 역사가 허접하진 하지만 그렇다고 얘네들이 우리보다 못난 거 아니걸랑요. 짧은 역사 안에서 이뤄낸 것도 많았고요. 그리고 항상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를 이용한 문화 제국주의 얘기... 이건 다큐가 아니라 오락 영화이걸랑요. "고대사에 대한 너무도 분별없는, 그래서 옹졸할 수밖에 없는 아포칼립토는 이해해주기가 참으로 힘들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마야 문명에 대해서 특별히 왜곡될 만한 부분은 없어 보이네요. 도데체 뭐가 분별력 없다는 건지? 무슨 헐리우드식 하면 아주 천한 영화 업계처럼 보는 시각이 진짜 웃기네요. 조폭 영화 실컷 찍어대는 우리 영화는 그럼 고상한가...그리고 스페인 놈들 나쁜 놈들 맞고요. 약탈하러 간거죠. 얘네들 마지막 부분에 잠깐 몇 초 나왔고...카톨릭 국가였으니 당근 십자가 들고 나왔고... 그 짧은 순간에 나쁜 놈들인지 좋은 놈들인지 판단이 안되네요. 걔네들이 나쁜 놈들인거 보고 싶으시면 The Mission 보시고요.
1 mario  
  죄송하지만 영화를 발로 보신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분연히 일어서는 민초들의 저항입니다. 주인공은 이렇게 외침다.

'이 숲은 내 숲, 울아부지 이 숲에서 사냥하시었고 나 이숲에서 사냥하며 내 자식에 자식들도 이 숲에서 사냥하며 살꺼얌'
 
마지막 담담한 결말도 이후에 있을 더욱 처절한 저항을 암시하는 것이구욤. 쩝. 웬 백인우월주의에 문화침략인가요.
의식화를 향한 과도한  강박이 느껴지는 글임다.
1 임종우  
  마리오님 댓글이 까칠하군요. 저는 님이야 말로 발로 보신건 아닌지요. 물론 '이숲은 내숲이 어쩌구 저쩌구'를 반복으로 보여줌으로써 주제의식을 강화한다고 볼수도 있지만 그걸 일어서는 민초들의 저항이라고 본다면 고작 주제의식에대한 암시는 두번뿐이고 일어서는 민초들이래봐야 주인공 하나군요?
 그나마 민초들의 반항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해결해주는 장치는 '무적 스페인함대'이구요? 안그런가요? 생각을 하고 보시는건지...담담한 결말이 이후에 있을 처절한 저항이라니. 님. 님만의 세상에서 사시는듯 하군요.-_-;

갈등이 심화될수록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갈등을 해결해줄 사건이나 장치같은 것들을 기다리게 되고 그것은 곧 무적 스페인 함대를 기다리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하죠. 식민지전쟁의 선봉이 해결도구가 되어버리는게 명백한데 충분히 의심할만한 상황입니다.
1 제법무아  
  박종현님과 마리오님의 반론에 변론을 해야할 지 의문입니다. 왜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영화를 발로 본 것이며, 왜 상대를 비아냥거리고 비난해야만 합니까? 그러한 자세는 자신의 내면이 거칠고 깊지 못함을 드러내는 처사일 뿐입니다. 왜 자기 자신을 그렇게 천대해가면서 남의 글에 반론을 하셔야 했는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비판을 위해서는 상대의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하며, 동시에 그 의미에 대한 비판하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역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피아간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논쟁은 그저 무의미하고 지루한 감정 상하게 하기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세세한 변론이나 반박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스스로 중히 여기는 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 다르다고 비난하고 비웃어버리는,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사는 분이 아니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4 한상범  
  사실 이 영화 '모히칸 족의 최후(라스트 모히칸)' 같은 대서사극을 기대하고
봤습니다.  대단한 영화였죠.  이 영화보고 다소 실망한 게 사실입니다. 

주제의식, 문명의 몰락, 외세의 침략 등등 깊은 의미를  찾으려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왜 갑자기 후반부에 람보가 되는 지에 좀 실망했습니다. 저건 마야판
람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더군요. 거의 흡사한 장면들도 자주 나옵니다.

나의 숲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야문명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았을텐데 그걸 오락액션 영화처럼 만들어버리고
거기서 감동을 받기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일일이 말할 필요없이 라스트 모히칸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