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한국영화의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영화감상평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영화의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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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는 제작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많은 관심을 끌던 영화였다.
처음에 100억에서 시작된 제작비는 조금씩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고
쉬리의 강제규 감독이 강제규필름의 사활을 걸고 제작에 들어가는 만큼이나
영화사 자체에서도 열의와 성의가 아주 가득 들어간 작품이었다. 물론 어느정도의
대작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누구나 했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본
태극기 휘날리며는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강제규 감독의 흥행성이 첨가된 연출력,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마력.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결코 전쟁에 관해 정면으로
맞서는 영화는 아니다. 전쟁을 통해서 비뚤어지는 인간의 모습이나 해체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는 내고 있지만, 전쟁을 통한 일반인들의 간접적인 고통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아마도 대부분 자신들을 '서민' 혹은 '중산층'으로 여기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더 쉽게 영화에 다가가게 하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제규 감독의 전작인 '쉬리'를 잠시 살펴보자. 쉬리를 가장 단순하고 간단하게 정의하면
멜러영화다. 물론 이런 단순한 정의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미리 말하건데
아주 단순한 정리다. 하지만 '쉬리'의 경우, 남북의 이념적인 문제를 한바탕 바탕에
깔아놓고 있다. 영화를 '전개'하는 힘은 남북문제였지만, 영화를 '마무리'하는 힘은 결국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는 가슴아픈 설정이 아니었던가? 이런 것이 연출의
흥행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주제나 배경은
결국 그것 자체로의 배경이 될 뿐이다. 남북의 이념대립이 결국 배경이었고, 주제가 사랑이듯
한국전쟁은 결국 배경일 뿐이고 주제는 형제애다. 그것도 일반적인 형제의 형제애. 하지만
'쉬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은 그들의 형제애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전개를
펼쳐준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강제규 감독이 강우석 감독보다 연출적으로는
더 흥행성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플래쉬 백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설정을 두면서, 동시대의 감정으로 아우르는 기술이나, 극중의 '조윤희'처럼 200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전쟁을 교과서로만 접한 우리세대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기법에 관객의 대부분인
20대의 젊은층은 자연스럽게 한국전에 한쪽 발을 들이밀고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아마도 '타이타닉'의 도입부와 연관해서 생각해봐도 좋을 듯 하다) 플래쉬백도 그렇지만,
강제규 감독의 감정증폭작용은 전체적인 시퀀스가 아닌, 컷 개념으로 증폭 곡선을 그려내고
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서도 감동이 느껴지지만, 감동해야 할 부분에서는
놓치지않고 음향이나 음악을 통해서 그 감정의 높낮이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고 있다.
흥행성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교활함이다. 관객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연출자는 극의 흐름을
관객의 입맛에 맞출 줄 아는 최고의 요리사인 셈이다.

영화의 완성도를 이룩한 최고의 기술스텝, well made를 향하여..
아마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장 객관적이고 대중적인 발전은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기술적인 완성도를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되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 처럼 우리나라 공인 최고의 기술 스텝이 의기투합하여 뭉친 일은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니깐 말이다. 일전에 '리베라 메'에서 특수효과와 CG,
특수분장 등의 특수기술을 위한 스텝들이 모인 일이 있기는 했지만, 기술 스텝 전체가
베스트로 꾸며진 일은 아마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Well Made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사실 역사를 고증하는 영화나 볼꺼리에 신경을 써야하는 영화에서는 자연스러움이
관건이 된다. CG나 특수효과, 특수분장 등의 파트들은 전쟁씬이라는 대규모의 시퀀스
전체를 책임지고 있지만, 미술이라던지 의상과 소품 등의 파트들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영화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완성도를 뒷받침해주는 절대적인 역할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들어나지도 않는, 하지만 잘못하는 옥의 티라는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하는
기술 스텝들의 노고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더욱 휘날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약간 구체적인 언급을 해보자. 일단 CG를 맡은 강종익 실장은 ILM출신으로 우리나라
CG에서는 가장 기술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전투기 씬에서는 약간의
미흡함이 보이기도 했다. 정도안 정두홍 콤비는 특수효과와 스턴트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 스텝이다. 거의 같이 작업을 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시도와 축척된 노하우를 보여준다.
특수분장의 신재호 실장도 '리베라 메'와 '텔미 썸씽' 등으로 이미 그 실력을 입증했고
미술의 심보경이나 의상의 이자영 팀장 등도 시대물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촬영? 촬영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바로 홍경표가 맡았으니 말이다.
모든 스텝들을 하나하나 열거해서 모든 업적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영화의 완성도에 관한한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그 설명이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한국전쟁이라는 장대한 배경에 스며들어간 일반인의 형제애.
50년대의 한국전쟁이 어떠했을까?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지식들은 기록이나
학교에서 어줍잖게 알려준 대표사실들이 전부일테지만, 정말이지 전쟁이라는 엄청난 재앙 속에
평범했던 가족이 해체되고, 관심도 없던 이념의 희생이 되고 했던 평범한 우리의 조상들,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사는 과연 어디에서 들어 볼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그들의
평범했던 역사는 그 어디에도 기술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전쟁의 고통'이라는 짧은 말로
대다수의 민중의 역사는 일단락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관심사는 전쟁의 전면이
아닌 후면의 민중들의 고통에 촛점이 맞춰졌으며, 특히나 형제애라는(아버지가 없는) 인륜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어려운 시절을 겪어보지 못하고 자라온 세대에게서 형제애가 요동칠
사건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동생의 장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뒷바라지를 한다는
것은 요즘 시대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일테니깐... 하지만 적어도 80년대 초반을 살아온
세대라면, 동생들을 위해서 상고를 나와서 일찍 취업을 하는 누나의 경우나,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못내고 공사판을 전전해야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겪었을 것이다.
최소한 나의 경우도 그런 아픈 기억의 끝자락을 잡고 살아온 세대니깐 말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형제애는 그야말로 맹목적이다. 그리고 그들을 끊임없이 그런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동생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전쟁광이
되어가는 형의 모습에는 형제애의 극한도 있지만 갈등의 시작도 내포되어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형제의 모습은 당시의 우리 민중의 어려운 삶과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발악이 내포되어
보여지는 잔혹한 역사가 아니겠는가?

단순화된 갈등구조는 감동을 낳을 수는 있지만, 그 단순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아쉬운 것은 이 영화의 감동이 어쩔 수 없이 형제의 갈등과 그들의 감정에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만은 놓고 볼 때는 매우 단순한 진행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형제간의 사랑과 갈등, 전쟁이 낳은 삐뚤어진
인격체의 광기와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영화의 모든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이런 형제간에 느끼는 감정들이라는 것이 약간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쉬리'에서의 남녀간의 사랑은 그나마도 모든 사람들이, 아니
거창하게 모든 인류가 공감할만한 소재였던 것에 반해서, 형제애라는 것은 일반적이기
보다는 어느정도는 특별한(적어도 형제가 있어야 공감이 가는) 설정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이야기를 따라가며 간접적으로 그들의 상황에 같이 놓일 수는 있을 지언정,
그것이 모든 사람의 당연한 감정에 자연스럽게 귀결되기는 힘들지 않았나 싶다.

인물들의 역할은 캐릭터일 뿐이가? 아니면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 자체인가?
캐스팅에 관해서 말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한 것 같다. 장동건과 원빈이라는 꽃미남의
대표주자들이 험하디 험한 전쟁영화에 캐스팅이 된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일임에 분명했지만, 막상 결과가 말해주는 그들의 활약은 나름대로 합격점을 줄만하다.
장동건은 이제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9편의 영화 경력이 말해주듯
이제 연기에 관해서 어느정도의 흡입력과 발산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를
내포하고 있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일이었을텐데 말이다. 게다가 광기에
어린 전쟁광의 광기는 관객들의 인정을 받아낼 만한 훌륭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제는 원빈이다. 문제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너무하다면,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일단 원빈이 전쟁영화에 맞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발성이다. 총탄과 폭약이
난무하고 사방에서 음향효과가 엄습해오는 극장에서 원빈의 발성은 그 역할에 모자람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쉬움을 낳는 배우가 있다면 이은주를
꼽을 수 있겠다. 자신의 역량을 반도 못 보여준 채로 영화의 캐릭터 속에 뭍혀버렸다.
물론 그당시의 여성상을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할만한 배우는 이은주가 아니어도 무슨 상관이냔 말이지.
아쉬움말고 제대로 씹어보고 싶은 배우는 바로 공형진이다. 영화에는
그 영화마다의 이미지와 성격이 있기 마련인데, 공형진처럼 언제나 한결같은 배우는
아무런 영화에도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모든 영화에서 자신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면, 영화가 배우에게 맞춰야하는 꼴이니 주객전도의 대표주자가 아니겠는가?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전형적인 공형진의 이미지가 태극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건 코믹하고 장난스러운 인물이 필요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게 공형진은 아니었어야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극기 휘날리며는 배우가
눈에 잘 들어오는 영화가 아님에는 분명하다. 물론 형제애라는 커다란 구조를 안고는
있지만, 동기 부여와 전개를 이끌어내는 전쟁이라는 장대한 배경은 영화에서 인물이
가져야할 부담을 어느정도는 상쇄시켜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어느정도의 흥행스코어를 기록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단순히
흥행성적으로 영화를 논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현재 우리영화의 흐름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분명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00억이
넘어가는 대작 영화들의 제작이 결국 영화의 '산업'적인 측면을 이끔이 당연한
일이 될 것이고,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장르에 대한 욕심도 부채질하게 된 것이다.
내추럴 시티가 한국형 SF에 새로운 가능성을 재시했지만 흥행참패로 그 여세를
몰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튜브가 정통 헐리웃 액션영화를 표방했지만, 역시나
흥행참패로 헐리웃을 모방하지 말자라는 질책을 들은 것과는 달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내려는 제법 현실적인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http://www.cyworld.com/z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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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mario  
  강제규영화는 '으냉나무침대'와 '쉐리'를 봤습니다만 연출이 shit스러운건 참을수 있었으나 두 영화전체를 아우르는 '암생각없음'정서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거부감이 느껴지더라구요.  이냥반 영화가 장사가 잘 되긴 하지만서도  낑궈진 감동코드나 역사코드가 공허해 보이는건 제눙깔에 색안경이 낑궈져있기 때문이겠지요. :)
1 제르  
  각자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글쎄요.. 강제규 감독의 연출력이 그렇게 안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장사가 잘 된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는 얘기겠죠. 대중이 엄한 사람의 영화를 3번이나 계속 많이 봐줄 리는 없으니...)
1 hanjh  
  제르님은 너그러우시네요. 특수효과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김빠지는 스토리에 항상 따로 노는 장동건 연기, 군더더기 많은 편집등 산만한 영화였습니다..  이전영화들 보다는 많이 성장한건 사실인것 같습니다. 국내에서야 이만한 시도도 많치 않으니 흥행은 합니다만 쌈박한 신진들이 제대로 기를 못펴는게 한국 영화시장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