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로봇] 대중성을 얻고, 개성을 잃다

영화감상평

[아이,로봇] 대중성을 얻고, 개성을 잃다

G 이덕형 3 12354 64
로봇에 대하여

현재 로봇공학에 있어서 최전방에 있는 일본의 신개발품을 촬영한 동영상을 본적이 있는가. 인터넷 유명 싸이트 게시판에 떠돌고 있는 그 동영상에서 드러나는 경지는 가히 놀랍다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될 정도다. 무한궤도를 달고 카메라가 부착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움직이던 로봇을 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로봇이 직립보행을 하고 군무(群舞)까지 추고 있는 지경이다. 배터리를 등에 맨 채 잽싸진 않지만 사람만큼이나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정녕 저것이 볼트와 너트로 조립된 기계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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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로봇의 기원은 어디일까. 일본의 로봇들이 보여주는 외양의 부드러운 곡선은 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인 <철완 아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뿌리는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의 카렐 차펙은 그의 희곡 에서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다. 체코말로 노동의 의미를 가진 ‘robota’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정치적 은유의 성격이 강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조인간 즉 로봇들은 인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받지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감정을 부여받지 못해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 격무에 시달리다 몸의 일부분이 마모되거나 고장나게 되면 폐품처리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로봇은 스스로를 발달시켜 지배층인 인간을 멸망시킨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러한 로봇의 이미지는 노동사회에 있어 기계처럼 일에만 몰두하기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써 풍자의 일환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로봇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혹자는 로봇이 흥미와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삼류 SF 소설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면서 애초에 가지고 있던 고결한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작 아시모프에 의해 로봇이 발전할 수 있는 청사진이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현대 로봇공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로봇공학 3원칙’이 처음 태어나게 된 계기가 그의 작품 <아이로봇>이었고, 그가 쓴 4편의 로봇시리즈는 로봇에 대해 보다 다양한 접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봇의 미래를 소설로 몸소 보여주고 있는 그를 기려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로봇에 일본 공학자들은 ‘아시모’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I, ROBOT


앞에서 지나칠 정도로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내가 영화 <아이로봇>을 본 이유이자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재미삼아 SF소설을 즐겨 읽고, 어릴 적 프라모델 로봇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스스로 꽤 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 <아이로봇>은 어떤 영화인가.


018563m3.jpg서기 2035년, 미래는 고도로 발전된 기계문명으로 인해 로봇이 인간과 공존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로봇의 존재는 ‘로봇 3원칙’이 프로그래밍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 이 원칙으로 인간은 로봇으로부터 안전과 편의를 동시에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봇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래닝 박사]의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시카고 경찰인 [스프너- 윌 스미스]형사가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로봇에 대한 인간의 맹신에 항상 불만을 품고 있던 [스프너]는 [래닝 박사]의 죽음에 그가 창조한 로봇이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의심을 갖게 되고 로봇 심리학자인 [캘빈- 브리짓 모나한]박사의 도움을 받아 진실로 점점 다가간다.


일단 내용적인 면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래닝 박사]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기위해 고군분투하던 천덕꾸러기 형사가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발견하고 이에 맞선다는 기둥 줄거리와 이러한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여러 장치들의 매듭이 꽤나 견고하게 이어져 있다. 우선 음모의 열쇠를 쥔 채 죽은 [래닝 박사]와 사건을 맡게 된 [스프너]사이의 관계는 [스프너]가 로봇을 경멸하고 불신하게 된 원인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단지 3개의 항으로 이루어진 로봇 3원칙을 맹신하던 사람들이 피조물로부터의 반격을 당하면서 오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다가선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 [스프너]와 [캘빈]의 로맨스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를 두드러지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 중에 하나가 다양한 관객층을 흡입하기 위해 뜬 기름과도 같은 로맨스를 삽입하여 주제를 흐리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 먹고도 속이 거북해지는 이런 소화불량을 이 영화는 잘 예방하고 있다.


018563m1.jpg그리고 <아이로봇>의 볼거리로 역시 CG와 [윌 스미스]의 반가운 모습을 빼놓을 수 없다. SF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화려한 액션이 이번에도 CG의 힘을 빌어 구현되고 있다. [스프너]와 로봇 [써니]의 첫 대면과 터널 안에서 [스프너]를 향해 달려드는 로봇들의 위용은 분명 놓칠 수 없는 재미를 준다. 여기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카메라는 액션의 긴박감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다. 또 [윌 스미스]의 연기는 어떤가. 그는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익살 가득한 표정을 배제하고 어두운 과거로 인해 현실에 분노하는 형사를 연기한다. 재치있는 캐릭터가 아닌 탓에 장기를 살릴 수 없어 차, 포를 떼고 장기를 두는 형국이지만 <인디펜던스 데이>, <맨인블랙>에서 외계인과 맞서던 배짱과 <나쁜 녀석들> 등에서 보여준 갖가지 액션으로 내공이 충실히 쌓여있는 탓에 그는 이 역할을 무난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로봇>이 보기 좋은 떡인 것은 분명하지만 먹기 좋은 떡인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일단 이 영화는 SF의 정형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이 SF소설의 고전인 아시모프의 소설에 기대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나물의 그 밥’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선 앞서 발표된 다른 SF영화들의 장점을 차용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스프너] 형사를 괴롭히는 로봇의 파괴적인 모습은 <터미네이터>를, 로봇의 부드럽고 다이내믹한 액션을 극대화 시켜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매트릭스>와 닮아 있다. 이런 기시감이 SF라는 장르 영화에 등장하는 특징적인 도상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뒷북’이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게 하진 못한다.



<아키>


http://cyworld.nate.com/empty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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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G VOCA  
  정말 재미있고 훌륭한 리뷰였습니다
 
 자주 좀 올려주세요^^
G 김형준  
  다음에도 부탁드립니다
G 정재근  
  좋은 글인듯....담에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