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토] 일탈적 감독의 문제작

영화감상평

[고하토] 일탈적 감독의 문제작

G 이덕형 0 15786 76
<고하토>(1999)는 일본의 대표적 거장 감독중 하나인 오시마 나기사의 가장 최근작입니다. 그는 <사랑과 희망의 거리>(1959)로 데뷔한 이후 항상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오며 문제적 작품들을 만들어왔죠. 그런 그가 침팬지와 외교관 부인과의 이상야릇한 사랑을 모티브로 한 <막스, 내 사랑>(1986) 이후 13년 만에 동성애를 다룬, 더욱이 그 동성애자가 일본의 대표적인 표상중 하나인 사무라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고하토>를 발표한 것은 ‘역시 그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왜? 오시마 나기사 인가


001718m3.jpg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처음 접한 것은 1976년 작 <감각의 제국>이었습니다.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자극적인 영상과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 영화가 왜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국내에는 만들어진지 무려 24년이 지난 2000년에 개봉하게 된 이유를 알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리지널 필름이 아닌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위질이 되어버린 필름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포르노그래피와는 다른 묵직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느꼈던 그 느낌이 감독인 오시마 나기사라는 ‘거장’이 주는 카리스마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 보았던 <감각의 제국>이나 후에 보았던 <열정의 제국>(1978)이 범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들에 매력을 느껴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 대해서 알아가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 두 작품에서 보여준 성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죠. 유년기에 전쟁을 겪고 학생시절 사회운동에 몰두했던 그였기에 그의 초창기 영화들은 하나같이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와 권력에 대해서 통렬한 쓴소리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대쪽같은 가치관은 일본 메이저 시스템에 발목을 잡히고 우익과 좌익의 대립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발산되기 시작했던 것이었죠. 일본 영화계의 최대 전성기라고 일컬어지는 50년대 후반에 데뷔해,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해 침체기에 접어든 60년대를 메이저가 아닌 독립 영화사로 옮기면서까지(직접 영화사를 설립) 맹렬하게 당 사회에 충돌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반골 기질이 다소 무뎌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당 사회의 이면을 현실적으로 그려 주목을 받았던 기존 작품에 비한다면 칸 영화제에서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열정의 제국>이나 <감각의 제국>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에 살고 있는 남녀의 욕망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세계의 변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신선조‘인가


016166m4.jpg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신선조’에 대한 매력을 느껴 영화의 소재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인 <신선조혈풍록>에 끌려 이들에 대한 내용을 영화화하게 되었다는 것은 원작에서 느껴지는 줄거리의 흡인력도 한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신선조 자체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족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막부 말 근대화에 반기를 든 사무라이들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렸던 신선조는 강한 마초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남성들의 집단이었죠. 신선조를 구성하고 있는 단원들의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무인들이 아닌 낭인과 부랑자, 혹은 무사가 되고 싶은 농민이나 상인으로 이루어져 궁색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출신성분에서 비롯된 콤플렉스 때문인지 그들은 철저한 규율(고하토)의 테두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끊임없이 전투(유신지사에 대한 테러도 포함)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체성은 저물어가는 막부시대에 마지막 남은 사무라이라는 자부심과 ‘진정한 남자’라는 자승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선조는 격변의 시기에 홀연히 나타나 역사의 흐름을 단기로 바꾸어 놓으려 했던 드라마틱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 오시마 나기사 감독도 신선조의 이런 면에 동의한 것은 아닐까요.



<고하토>, 어떤 영화인가


016166m7.jpg1865년 교토. 그곳을 본거지로 한 신선조는 새로운 단원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 한창입니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단 두 명. 출신배경이 상당한 [카노 소자부로- 마츠다 류헤이]와 [타시로 효조- 아사노 타다노부]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이들 사이에는 묘한 기운이 싹틉니다. 그 이유는 [카노]가 너무나 빼어난 미남이었던 것이었죠. 그의 미모는 신선조 내에서 화제가 됩니다. 특히 동료인 [타시로]는 [카노]의 이불 속으로 파고 들곤 하죠. 그러던 중 신선조 내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부장인 [히지카타- 키타노 타케시]는 총장 [콘도 이사미-최양일]의 명령을 받고 사건의 예의주시합니다.


<고하토>의 줄거리는 [카노]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과 그들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게 바로 포인트이자 전부입니다. [카노]가 열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신선조에 입단하는 과정과 그에게 꽂히는 뭇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과 갈등해소가 이 작품의 대략적인 얼개입니다.


016166m1.jpg흥미로운 것은 감독이 신선조라는 실험군을 택했음에도 그 집단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이성에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역사 속의 신선조가 아닙니다. 전란이 끊이지 않는(영화 속에서는 유신지사들과의 갈등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곳에서 죽음과 삶의 모호한 경계를 딛고 서있는 정념으로 가득찬 마초들의 집단이었던 것이죠. 감독은 [카노]를 통해서 한 집단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보여주려 합니다. 그것이 신선조의 해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카노]의 눈빛과 손짓 하나에 적의를 쉽게 버리는 그들의 모습은 꽤나 당황스럽습니다. 이러한 장면들로 인해 ‘동성애’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인 만큼동성애가 별난 사람들의 특별한 취향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아마도 이것이 감독의 노림수가 아닌가 합니다.



다르게 보기


00431327_2.jpg일본의 한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고하토>를 통해 일본 영화의 세대교체를 말하고 있다’ 구요. 그런 의미에서 아끼는 후배감독(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두 명을 주요 배역에 캐스팅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선조 총장 [콘도 이사미]역에 한국계 일본인 최양일과 2인자 [히지카타 도시죠]역에 키타노 타케시를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보면 <고하토>는 단순한 ‘동성애 영화’ 내지는 ‘퀴어 영화’의 단계를 뛰어 넘습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본 영화계를 신선조라는 틀에 매치를 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912년에 이미 ‘니카츠’사의 건립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스튜디오 시스템은 1950년대에 절정을 맞이합니다. 도호, 도에이, 신도호, 쇼치쿠, 다이에이 등 5개의 메이저 영화사가 잇달아 설립되면서 일본 영화계는 6대 메이저 시대를 맞이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던 것이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이 시기는 일본 영화의 황금기였는데요. 이 시기에 작가주의 감독들이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뱉어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등이 이때 활동하던 감독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일본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전해져 들어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세대라면 오시마 나기사는 이후 60~70년대를 풍미하긴 했지만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듯이 TV로 인해 영화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어가던 시기에 활동했던 감독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뉴 웨이브의 선봉장 역할을 했지만 그는 분명 앞서 간 선배들에 비해서 어려운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는 것은 (그것이 자초한 일일지라도..) 자명해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하토>는 앞서간 감독을 막부의 전성기에 활동했던 쇼군 내지는 무사들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신선조의 창시자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감독들로 신선조의 수뇌부를 구성해 보임으로써 상징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히지카타]역의 키타노 타케시, [콘도]역의 사이 요이치(최양일)가 그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고하토>는 일본 영화와 함께 걸어온 그의 인생을 정리해보는 비망록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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